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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Nov 13. 2024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

Stories: Graffiti

Stories: Graffiti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






패션과 예술. 이 둘의 만남에 있어 실패란 없다. 왜냐하면 서로의 존재 이유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의상으로서, 예술은 작품으로서. 이 둘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으로부터 태어났다.




우리를 낙서라 부르지 말아요


그중에서도 그래피티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유독 명확히 드러내는 장르다. 다른 장르의 작품들이 대부분 개인의 내밀한 면을 대변하는 데 집중한다면 그래피티는 거리 한복판에,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불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작품을 완성시켜 내니 말이다. 아마 작업을 계획하는 그래피티 라이터(그래피티를 그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의 마음가짐은 마치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요원과 다름없을 것이다.


ⓒstraatmuseum.com


그렇다. 이 무모한 장르엔 단순히 그림 실력만을 가지고 판단하기엔 뭔가 부족한,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담겨있다. 또한 공공의 장소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적잖은 용기와 투지 역시 필요하다. 이에 더해 그럴듯한 명분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그저 평범한 길거리 낙서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물론 그래피티라는 단어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낙서를 뜻하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용인받기 위해선 나름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러러시아와 독일 공산당 지도자의 입맞춤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드미트리 드루벨의 위대한 형제(1990). ⓒbrooklynstreetart.com


이제는 정정당당히 스트리트 컬처의 한 분야로 인정받은 그래피티. 하지만 그래피티가 성행하기 시작한 60-70년대의 미국에선 이를 범법 행위로 보고 매우 철저히 단속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힙합 음악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가며, 점차 메인 스트림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오죽하면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라 불릴까. 힙합이나 그래피티나 그 근원엔 저항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어찌보면 마땅한 동맹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피티 스타일을 가미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앨범 커버 ⓒwhudat.de


그래피티가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마냥 아니라고만 할 수 없는 건, 이 두 아티스트의 등장 때문이다. 바로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뱅크시(Banksy). 바스키아는 그래피티 스타일을 팝 아트로 승화시킨 선구자이며, 뱅크시는 사회 풍자적이고 날카로운 주제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내고 있다. 덕분에 그래피티는 과거보단 훨씬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예술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되었다.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바스키아(위)와 올해 발견된 뱅크시의 최근 작품(아래) ⓒgagosian.com, ⓒtagesanzeiger.ch





패션과 그래피티의 황홀한 만남


패션이 단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건 이제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 그들은 옷에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건 서로가 윈윈 하는 최선의 선택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패션과 그래피티의 만남, 그 황홀한 자태를 감상해 볼 차례.





아티스트 VS 아티스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Keith Haring).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이들의 그림을 접해보았을 것이다. 대중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톱클래스로 인정받고 있음은 뭐 두말할 필요도 없고. 헌데 이들의 그림이 런웨이에서 발견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흥미로운 사건이다.


바스키아, In Italian(1983) ⓒkazoart.com
키스 해링 ⓒseegreatart.art


2018년 가을, COMME des GARÇONS은 바스키아의 그림을 담은 셔츠를 출시한다. 단순히 색채와 형태가 맘에 들어서? 아니다. 이 안엔 더 깊은 사연이 숨어있다. 바스키아는 평소 COMME des GARÇONS의 옷을 애용했다 하는데, 실제 그가 가장 즐겨 입었다는 블랙 코트 역시 COMME des GARÇONS의 것이었다고.


COMME des GARÇONS의 아우터를 착용한 바스키아(좌) ⓒvogue.com


이 사연을 전해 들은 레이 가와쿠보((Kawakubo Rei)는 1987년 쇼에 그를 모델로 세우게 되는데, 아티스트에겐 다소 무리한 요청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락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결국 COMME des GARÇONS의 셔츠에 담긴 바스키아의 그림은 미적 충만감과 동시에 아티스트를 향한 남다른 애정도 담겨있는 셈이다.


COMME des GARÇONS의 런웨이에 선 바스키아 ⓒvogue.fr
COMME des GARÇONS SHIRTS FW18 ⓒvogue.com


간결한 선과 강렬한 색, 유머러스한 표현이 장기인 키스 해링(Keith Haring) 역시 많은 디자이너들이 탐낸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의 그림엔 시대를 풍자하는 날카로운 비판 정신 역시 담겨있다. 패션계의 저항의 아이콘,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여사와 1983년 겨울 컬렉션에서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Vivienne Westwood의 1983년 컬렉션 ⓒelle.com
유명 모델인 그레이스 존스의 몸 위에 바디 페인팅 작품을 선보인 키스 해링 ⓒdangerousminds.net
Études Studio SS20, Alice + Olivia
키스 해링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JW ANDERSON SS16 ⓒvogue.com





글자에 담긴 진심


그래피티의 특징 중 하나는 유독 글자가 변형된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별칭, 활동하는 크루의 로고 등을 자유롭게 해석해 이미지화시키는 것이 대다수. 이처럼 활자의 조형미를 한껏 증폭시켜 내는 것이야말로 그래피티의 독보적인 무기다. 이 매력적인 무기를 그냥 두고 볼 수만 있겠는가. Moschino와 Dolce & Gabbana의 컬렉션에서 목격된 그래피티 스타일의 활자들은 그 어떤 무늬보다 호소력이 짙다.


Moschino FW15, Dolce & Gabbana FW22
Off-White FW19, R13 SS17
Vetements SS22, MAISON MARGIELA 90’s
RAF SIMONS FW15 ⓒdazeddigital.com, ⓒvogue.com





총천연색의 팔레트


다른 장르는 몰라도 이 그래피티만큼은 반드시 색감으로 승부를 본다. 다소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채도와 명도, 가끔은 형광빛의 컬러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그래피티만의 무드. 때문에 컬러 구성만 비슷하게 해도 동일한 분위기 연출이 가능하다.


SANKUANZ FW23 ⓒfuckingyoung.es


나아가 보색끼리 맞닿게 하거나 짙은 컬러로 윤곽선을 그려 형태를 강조하는 방식도 그래피티에선 대환영. 자칫하면 투 머치라고 느껴질지 모르나 이 장르의 매력은 바로 이거다. 과할 정도로 화려하고, 부담스러울 만큼 화사하고, 넘쳐날 정도로 많은 색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


Dior FW01 ⓒpinterest


하지만 하이패션은 이러한 과잉을 매끄럽게 승화시킨다. 마치 아이템이 하나의 캔버스가 된 것처럼 화이트나 베이지 등 무채색의 베이스를 선택하고, 적재적소의 위치에 무늬를 얹어 위트를 더한다. 또는 MAISON MARGIELA의 SS19처럼 다채로운 컬러들을 빈틈없이 메워 하나의 완결된 예술 작품처럼 둔갑시키기도 한다. 자, 어떤가. 이제 이 둘의 만남에 실패란 없다는 전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Walter Van Beirendonck SS23, MAISON MARGIELA SS19
CHANEL Cruise24, Philipp Plein SS24 ⓒvogue.com, ⓒpurseblog.com


이젠 아티스트에서 아트스타가 된 뱅크시. 그는 2018년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한화 16억에 낙찰된 자신의 작품을 액자에 숨겨둔 원격 파쇄기에 흘려 넣어버리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다행히도 절반만.


낙찰 직후 파쇄기 행이 된 뱅크시의 작품, 풍선 없는 소녀(2024) ⓒfrieze.com


대체 왜? 대중들의 궁금증에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답한다.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 과연 뱅크시 다운 대답. 이에 관객은 환호를 보냈고, 소더비 측은 “현대 미술 시장의 거래 관행을 조롱하고 예술의 파괴와 자율의 속성을 보여주려 한 기획”이라 분석했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허례허식의 단골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선 이 끈질긴 오명을 벗어내기 위한 노력 역시 지속되고 있으니. 부디 그 안에 깃든 진심이 디자이너와 고객, 나아가 둘을 잇는 패션, 이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그로서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안겨주기를. 패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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