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RETRO ELEGANCE
TREND: RETRO ELEGANCE
우아함을 훔치는 세 가지 방법
5-60년대 상류층 레이디 룩을 향한 오마주, 레트로 엘레강스(Retro Elegance). 올해 하반기 젠테가 야심 차게 제안하는 뉴 트렌드 중 세 번째 주인공이다.
아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프닝이 아닐까 생각되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의 첫 씬. 블랙 GIVENCHY를 입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뉴욕 티파니 매장의 쇼윈도를 꿈꾸듯 바라보며 페이스트리를 먹는 장면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여느 판타지를 불현듯 깨운다.
상류층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말괄량이 아가씨. 그녀는 오직 이 한 장면으로 세기의 우아함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블랙 컷아웃 드레스와 같은 결의 롱 글러브, 말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얹은 귀여운 티아라, 올 블랙 룩에 위트를 더하는 오버사이즈 선글라스와 얼굴을 환히 밝히는 진주 네클리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텅 빈 도시의 거리를 한가롭게 거니는 그녀의 룩은 아직까지도 언급되는 패션계의 마스터피스다.
그렇다면 상상해 보자.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 여유로운 삶이 내게 도달했을 때를. 보석같은 한낮의 여유 속에서, 그 어떤 방해없이 마음껏 시간을 보내며, 충만한 하루를 만끽하는 순간을. 이 완벽한 순간을 맞이한 나는 과연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애를 써 단장해야 하는 게 아닌 오직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나를 가꾸는 숭고한 행위, 그 자체로서의 패션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마치 영화 속 오드리처럼.
이처럼 오드리를 포함한 그 시절 당대의 스타들은 확실히 지금의 스타들과는 다른 어떤 면모를 탑재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아이코닉하게 각인시킨 비결인 듯하다. 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우아함. 나는 감히 이러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 절제된 미가 서려있으면서도 존재감을 절대 지켜내는, 눈속임에 타협하는 과잉 대신 미니멀한 아이템만으로도 잠재된 화려함을 피워낼 수 있는.
레트로 엘레강스는 이런 훔칠 수 없는 우아함을 겨냥한 트렌드다. 하지만 우아함이야 말로 가장 다루기 어렵고 까다로운 덕목. 때문에 우린 과거로부터 그 힌트를 얻어보기로 한다.
진정한 우아함의 핵심은 심플함이다. 평생을 여성의 우아함을 연구했던 코코 샤넬(Coco Chanel)은 이 한 문장으로 우아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은 바로 이것. 총천연색의 빛깔로 주목을 조장하기보단 주체 본연의 빛깔을 돋보이게 하는 모노톤의 색감을 택함으로써 진정한 우아함에 한 층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CHANEL의 2024 FW 컬렉션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상. 다른 컬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대신 서로의 포인트 컬러로서 화이트와 블랙을 적극 활용하여, 오직 둘의 조화 속에서 한 벌의 충실한 아웃핏을 완성해내니까.
Alaïa의 컬러 팔레트 역시 모노톤의 향연. 하지만 슴슴한 색이라 해서 대충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는 걸 명심하자. 색의 온도에 따라 때로는 샤프하고 모던하게, 때로는 은은하고 부드럽게, 캐릭터의 첫인상까지 좌지우지하는 파워를 갖는 것이 바로 톤의 막강한 능력이다.
인간이 곡선에 매료되는 이유. 바로 인간 자체가 곡선으로 이루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실루엣이 강조된 아웃핏에서 미적 만족감을 느끼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이 부분을 잘 염두한다면 노출 없이도 얼마든지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인간의 특권이자, 우아함의 원천인 인체의 실루엣에 집중한 룩들로 독보적인 분위기를 쟁취해 보는 것이다.
올 하반기엔 특히 다채로운 네크라인의 의상들이 대거 출현했다. 쇄골이 전부 드러날 정도로 시원하게 파인 과감한 라인부터, 옷깃의 형태에 변형을 주어 소프트한 엣지를 가미한 라인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허리를 강조한 페플럼 스타일도 놓칠 수 없다. 페플럼은 웃옷이나 블라우스 등 허리 부근에 붙은 스커트 모양의 주름진 부분을 가리키는데, 이로서 체형의 밸런스를 조율할 수 있다. 다소 마른 몸에 볼륨감을 부여하거나, 약간의 착시를 주어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가능하니 말이다.
레트로 풍의 단골손님, A라인 스커트는 어떤가. 페미닌한 무드에 가장 적합한 건 물론 공식석상에서도 품위 있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올해 FW 컬렉션에 등장한 수많은 스커트들 중 VALENTINO의 블랙 미디스커트는 레트로 엘레강스 무드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정석 아이템.
심플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개성을 살린 산뜻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최적의 방법! 바로 액세서리를 적재적소에 심어두는 것이다.
특히 5-60년대의 상류층 레이디룩을 떠올리게 하는 글러브는 기능성과 장식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효자 아이템. 레트로함과 모던함의 경계를 아우르는 모습의 MIU MIU 레더 글러브는 정말 여러가지 룩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지난 몇 년 간 빅 백과 크로스 백의 등살에 떠밀려 고이 잠들어 있던 장롱 속의 미니백. 우아한 숙녀라면 거추장스러운 백들 대신 단연 이 미니백을 선택할 것이다. 앙증맞은 사이즈에 필요한 물품만 가볍게 수납하면 그만이니 부담도 없고, 빅 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감과 모양, 풍요로운 장식들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동그랗게 솟은 탑핸들을 다소곳이 손에 쥔 모습 덕에 기품력은 상승 곡선.
이번엔 슈즈의 차례. 요 근래 컬렉션에서 종종 목격되었던 키튼 스타일 힐이 이 트렌드의 종점이다. 성숙미 짙은 여인의 향기를 남기려면 아찔할 정도의 높이도 좋다. 룩의 연출은 머리부터 말 끝까지 제대로, 이 정도의 고통은 거뜬히 참아내야 한다. 한동안 스니커즈의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던 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호수에 떠 있는 한 마리 우아한 백조가 되려면 필사적으로 발장구를 쳐야 할 수밖에.
과거에서 힌트를 얻어, 이에 현대식 세련됨을 더해, 비로소 새로운 우아함으로 거듭나는 레트로 엘레강스. 하지만 이 근원엔 그와 걸맞은 애티튜드가 반드시 우선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優)의 ‘넉넉함’, 아(雅)의 ‘바르다’가 더해져 탄생한 우아의 뿌리처럼, 너그러운 여유와 올곧은 태도에서 비롯된 생각이 한 사람을 비로소 우아하게 성장케 할테니.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