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Margiela 300
Stories: Margiela 300
마르지엘라 옷의 가치는 정확히 얼마일까?
이번 1월, 파리 오트 쿠튀르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이벤트 중 하나인 Maison Margiela 경매. 이는 역대 Maison Margiela의 경매 중 가장 큰 규모로, 총 3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브랜드가 설립된 해인 1988년부터 1994년까지의 초기 컬렉션이 출품작의 대부분이었고, 그동안 공개된 적 없는 디자인까지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이 말은 곧 Maison Margiela의 창립자이자 리빙 레전드, 그러나 200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 뒤 현재 두문불출 중인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의 희귀작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소리. 대체 누가 이 엄청난 컬렉션을 완성해 낸 걸까?
그 주인공은 바로 마틴의 후원자였던 그라지엘라 피코치(Gragiela Piccozi)의 두 딸인 안젤라(Angela Picozzi)와 엘레나 피코치(Elena Picozzi)다. 1980년 후반, 무명이었던 마틴을 후원하며 네 번의 컬렉션을 진행토록 도왔던 어머니 그라지엘라의 영향을 받아 수 십 년 동안 고이고이 수집해 왔다고. 이에 런던의 케일리 테일러 옥션(Kerry Taylor Auctions)과 파리의 모리스 옥션(Maurice Auction)이 힘을 합하며 비로소 컬렉터의 옷장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보물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나라면, 마틴 마르지엘라의 수많은 컬렉션 중에서도 특히 화제가 되었던 90SS의 출품작인 페인트 칠이 된 화이트 블레이저에 올인하겠다. 시작가 2500-4000유로. 원고를 쓰는 현 시점에는, 얼마에 입찰될 진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이 블레이저엔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
90SS 런웨이는 전형적인 도시를 떠나 파리 교외에서 열렸던, 우리에게 익숙한 조건과 모든 것이 어긋났던 쇼였다. 낡은 천막 안에서 지정된 좌석이나 무대, 화려한 조명 하나 없이 진행되었으며 초대장은 인근에 거주하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그려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꽉 찼다. 날고 기는 패션 셀럽들이 오직 마틴의 쇼를 보기 위해 멀리서부터 손수 찾아온 것이다. 일을 도왔던 학생들도 쇼에 함께 참여했다. 이런 모두의 노력 덕분에 이제껏 볼 수 없던 자유롭고 신선한 느낌의 런웨이가 탄생한 것이다. 마틴의 열정과 패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쇼. 그 현장에 함께 있던 블레이저라니. 소유욕이 솟구치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의문이 든다. 일반적으로 경매라는 건 달리나 반 고흐, 피카소의 그림처럼 유서 깊은 명작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던가? 그에 반해 Margiela의 작품은 그저 한낱 옷일 뿐인데... 어찌하여 수많은 컬렉터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런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일까?
예술에서의 오리지널리티란 원조가 가지는 고유한 독창성을 의미한다. 이는 작품의 희소성을 담보함과 동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기술복제시대가 이 오리지널리티를 위협할 것이라 단정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예술은 독자적인 것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패션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서 출발하는 것일까? 바로 로고다. 이게 기본이다. 만약 Hermès나 CHANEL 등 럭셔리 하우스 끝판왕들의 제품에서 로고나 태그를 남김없이 삭제한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품질과 디자인, 컬러 등 다른 차별점이 있는 건 인정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품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Margiela는 달랐다. 그들은 로고에 심혈을 기울였던 타 브랜드와는 달리 오직 네 개의 흰색 스티치 만으로 이루어진, 일명 고스트 태그라고 불리는 미미한 표식만을 남겼다. 장황한 의미를 담은 상징은 커녕 전적으로 타사와의 구별만을 목적으로 새긴 단순한 흔적만을 말이다. 때로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음을 Margiela는 스스로 증명해 냈다. 이는 그동안 그들이 끈질기게 지켜왔던 익명성, 디자이너 자신부터 로고까지 철저히 감추고자 했던 특이한 행보들과 그 궤를 함께 한다.
그들을 신봉하는 두터운 매니아층 역시 다 이러한 이유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세심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을 작은 디테일을 발견해 내고, 그 은밀함을 공유하는 소수들과 소통하며, 불특정 다수와는 다른 특별한 우리로서 묶이는 일. Margiela도, Margiela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해 가고 있다.
Margiela에게 있어 옷은 일종의 실험체와 같았다. 그들은 마치 의복의 한계를 시험하듯 구성과 기능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다. 빗이나 털, 비닐 등 우리에게 익숙한 원단과는 다른 소재로 의복을 만든다거나, 재킷으로 스커트를 대신하는 등 아예 주어진 역할을 뒤바꾸어 버렸으며, 나아가 입기 위한 옷이 아닌 옷 자체를 주체로 두어 옷걸이에 걸린 옷을 사람들이 직접 손에 들고 나와 런웨이를 선보이는 기발한 쇼(98SS)도 펼쳐 보였다.
때문에 Margiela의 초기 런웨이는 20세기 초 예술의 큰 변혁을 일으킨 아방가르드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조화와 아름다움이라는 예술의 미덕에 반기를 들고,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일종의 충격 요법을 통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려 했던 그들의 신념이 현대 패션계에서 Margiela를 통해 재현된 것이다. 이런 게 옷이야? 라는 뻔한 의문 따윈 넣어두어라. 기존의 옷에 어떤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핵심이니까.
업사이클링(Upcycling)은 오늘날 패션계의 유행어인 지속 가능성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지금은 여러 패션 하우스가 업사이클링 제품의 희소성을 내세워 높은 가격에 출시하지만 과거만 해도 럭셔리는 새것, 즉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새 제품만을 추구했다. 다시 말해, 좋은 품질의 조건엔 훌륭한 원단과 제작 방식 외에도 첫 시착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기회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Margiela는 이미 90년대부터 이를 실행하고 있었다. 마틴의 열정적인 실험 욕구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업사이클링의 세계에 진입하도록 만든 것일까. 그는 어쩌면 이 장르를 실험한 최초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재직 기간 내내 그는 참으로 별난 의류들을 선보였다. 깨진 도자기로 목걸이를, 오래된 장갑으로 베스트와 가방까지 만들엏다. 상상만으론 마냥 별나기만 한 별로일 듯 하나 보시다시피 맵시가 꽤 느낌 있다.
이런 제품들은 대량 생산도 불가능한 데다 디자이너 고유의 창의력까지 더해지니 그 희소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현재 업사이클링 아트 역시 예술계의 떠오르는 장르로 각광받고 있는 걸 보면, 이 장르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무드가 분명 있다. 의외의 것이 의외의 위치에서 의외의 역할을 의외로 잘 수행해내고 있을 때. 그때 느껴지는 미묘한 쾌감 말이다. 고급스러움이 첫째 덕목이었던 하이 패션계에서 고급과는 먼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던 Margiela. 그들의 반짝이는 패기는 지금의 Margiela의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끼쳐, 비범한 발상과 재치를 겸비한 브랜드로 성장토록 했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 마지막으로 그를 향한 여러 디자이너들의 찬사는 Margiela의 영향력을 더욱 굳건히 한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Margiela의 90SS쇼를 본 후 가구 디자인에서 패션 디자인으로 방향을 틀었고,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현대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틴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 증언했다. 또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은 마틴의 디자인을 향해 모던 클래식이라는 짧지만 힘있는 소감을 남겼으며, 첫 직장이 Margiela였던 뎀나 바질리아(Demna Gvasalia)는 그곳에서 일하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렇다. 마틴 마르지엘라의 Maison Margiela는 이런 존재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