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Less is More
Stories: Less is More
편안하고, 섹시하고, 캐주얼하다
Less is More. 최근 패션계는 미니멀리즘의 유혹에 흠뻑 취해있다. 스타일링의 터줏대감인 꾸안꾸룩에서부터, 조용한 럭셔리, 그리고 드뮤어까지. 이 모두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주는 지침은 단 하나다. 과잉은 금물이라는 것. 결국 미니멀리즘은 덜어냄의 미학이다.
하지만 무조건 덜어낸다고 완성되는 건 아니다. 패션은 더욱 그렇다. 마냥 단순함만을 추구하다간 자칫하면 심심한 룩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클 테니. 그렇다면 미니멀리즘 패션에서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조화다. 최소한의 것으로 얼마만큼의 조화로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 때문에 사소한 아이템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참, 까다롭다.
하지만 우리에겐 미니멀리즘에 관련된 소중한 유물이 남아있다. 바로 90년대 패션이다. 깔끔한 라인과 흠잡을 곳 없는 테일러링, 튀지 않는 컬러감, 마지막으로 기본에 충실한 아이템들이 런웨이와 리얼웨이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90년대 후반의 Calvin Klein. 디자이너 켈빈 클라인은 Vogue와의 인터뷰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함축한다.
제 옷은 헐렁하고, 편안하고, 섹시하지만... 분위기는 항상 캐주얼합니다.
때문에 그의 쇼는 오차 하나 없는 강박적인 미니멀리즘이 아닌,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쪽에 가깝다.
Calvin Klein의 1995년 봄 런웨이는 블랙 앤 화이트를 필두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미디 길이의 스커트에 집중했다. 불필요한 레이어링이나 믹스 앤 매치는 삼가고 새틴과 레이스와 같은 소재나 넥라인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서 변주를 꾀했다.
그에 반해 같은 해 가을 컬렉션은 60년대 미니멀리즘을 계승한, 당시 우아함의 대명사로 자리했던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의 분위기를 그대로 차용한 룩을 선보였다. 컬러 역시 카멜과 그레이, 블랙 앤 화이트 등 단일톤으로 구성하여 군더더기 없는 맵시를 뽐냈다.
반면 96년과 97년의 런웨이는 파스텔톤과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등 화려한 컬러를 활용해 보다 캐주얼한 느낌을 강화시켰다. 색상이 주는 에너지틱함이 의상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던 것. 신체의 곡선을 살리면서도 불필요한 노출을 최소화하여, 페미닌한 요소를 유지함과 동시에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Calvin Klein의 강점인 테일러링은 어느 시즌에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해마다 다른 실루엣의 변화가 눈에 띄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건 각각의 아이템이 적재적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재킷은 재킷답게, 팬츠는 팬츠답게. 조금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절제미가 돋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컬렉션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원단을 특징을 철저히 이해하고 다채로운 디자인과 아이템에 적용시킨다는 데에 있다. Calvin Klein의 묘수 중 하나인 슬립 미니 드레스와 각각의 텍스처를 살린 니트웨어, 분위기의 반전을 꾀하는 레더의 사용은 미니멀리즘이 겨냥하는 조화로움의 의미를 잘 표현한 좋은 예이다. 어떤 소재끼리 만나서 합을 이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룩을 연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미니멀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를 패션에 적용해 본다면 아이템 하나하나의 역할이 그 어떤 조건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소리. 당신이 영원히 입을지도 모르는 단 하나의 피스를 위해,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들을 엄선해 보았다.
시작부터 미니멀하다. 완벽한 티셔츠를 향한 여정으로부터 출발한 THE ROW. 그들의 최신 컬렉션은 블랙을 기반으로 컬러,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품이 풍기는 테일러링까지 그동안의 미니멀리즘 패션의 역사적 행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중. 특히 최대한의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가지 스타일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레더 맛집 KHAITE 역시 절제된 감수성에 동적인 컬러와 소재를 입히는, 꽤 신선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브랜드다. 단순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어깨를 강조하거나 넥라인에 포인트를 주어 약간의 재치를 심어두는 게 장기. 다소 우울한 느낌의 컬러 팔레트는 그들의 손끝에서 오히려 전형적인 도시미로 거듭난다.
Tibi가 해석한 90년대의 미니멀리즘엔 놀랍게도 생기가 묻어난다. 불필요한 기교를 뺀 실용주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브랜드답게, 24FW는 스포티한 느낌의 룩이 대세. 하지만 언제나 소재는 최상급이다. 약간의 구김도 멋의 한 요소처럼 다가올 정도로.
JIL SANDER의 가장 큰 업적은 전문성과 세련됨 사이의 관계를 되살아나게 한 것이다. VOGUE는 JIL SANDER에게 이런 극찬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의 그들은 직선과 곡선을 가리지 않고, 때론 눈이 시릴 정도의 쨍한 컬러도 서슴없이 사용하며 도전적인 제스처를 적극 취하는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잉을 견제하는 날카로운 이성이 매번 그들의 반항을 제지한다. 이 아슬아슬한 벨런스가 근 3년간 JIL SANDER의 관전 포인트.
몇 년이 지나도 절대 당근행은 되지 않을 것 같은 LOULOU STUDIO. 그들이 최근 Loulou de Saison로 브랜드 네임을 바꾸고 새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그 명칭만 바뀌었을 뿐, 최소한의 아이템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겠다는 브랜드의 취지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새로움은 아주 약간의 차이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걸 이들을 통해 배운다.
호주를 기반으로 한 Beare Park은 2021년 산, 설립이 채 5년도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최고 품질의 원단을 직접 공급받는 것은 물론, 철마다 등장하는 트렌드 대신 단순함에 대한 본능을 믿고 옷을 제작한다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합쳐져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다. 드라마틱함과 미니멀리즘은 사실 거리가 멀지만 왠지 이 브랜드에서만큼은 이 두 무드가 합쳐져도 무방할 듯.
완전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닌,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어린 왕자를 쓴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는 완벽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모든 것이 과잉인 이 시대에서, 우린 완벽함을 이뤄내기 위해 얼마나 무수한 것들을 끌어안고 있는가.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