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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옷을 되살리는 다섯 가지 방법

Brand LAB: PROTOtypes

Brand LAB: PROTOtypes

죽은 옷을 되살리는 다섯 가지 방법




죽은 옷을 살려라.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지구의 패션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난 그들, PROTOtypes.



그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202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탄생한 PROTOtypes. 뎀나(Demna Gvasalia) 시절의 VETEMENTS에서 인연이 된 두 디자이너, 로라 베함(Laura Beham)과 캘럼 피전(Callum Pidgeon)이 설립한 브랜드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컬렉션에선 그 시절 VETEMENTS의 향기가 아련히 풍겨온다.


1.jpg 로라 베함(좌), 캘럼 피전(우) ⓒgatamagazine.com


호기심이 생겨 PROTOtypes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솟아난다. 4년 남짓 동안 진행된 그들의 행보는 이제껏 지구상의 패션계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혹시, 만약, 어쩌면,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우리의 패션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이곳으로 찾아온 미지의 존재가 아닐까.


2.jpg ⓒproto-types.ch



지령: 죽은 옷을 살려라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지구에 도착한 그들이 받은 지령은 다음과 같다. 죽은 옷들을 살려라. 어떻게? 업사이클링과 리사이클링의 방식으로. 왜 하필이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은 2024년 4월, 032C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이 포화 상태인 현재엔 더 이상 새로운 것은 나올 수 없다. 때문에 대신 우린 원래 있던 것을 가지고 오는 차용의 방식을 택한다.


기존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존중과 찬사. PROTOtypes에게 차용은 무척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3.jpg ⓒproto-types.ch


이에 덧붙여 그들은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Readymade)를 언급한다. 예술의 정의 자체를 전복시킨 뒤샹의 작품 샘(Fountain,1917)을 떠올려보라. 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평범한 남성용 소변기가 희대의 작품으로 남은 것처럼, 그들은 재고로 남거나 폐기된 옷에서 색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데에 주력한다. 새로울 순 없어도 색다를 순 있는 것. PROTOtypes의 강렬한 움직임은 이러한 신념으로부터 출발한다.

4.jpg ⓒproto-types.ch




방법 1: 현실을 인지하라


그러기 위해선 우선 패션계가 처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아트 디렉터가 될 수 있는 마당에 새 브랜드는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지속 가능성을 위한 업사이클링이라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다, 수십 개의 브랜드가 피고 지는 동안 그 몇 배나 되는 폐기물들이 창고에 대책 없이 쌓여가는, 화려한 패션계의 감춰진 속내를 말이다.


5.jpg ⓒproto-types.ch


PROTOtypes은 이러한 현실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의류 생산에 있어 대부분을 재고와 헌 옷을 이용하며, 아이템 하나하나에 그들만의 아이디어를 담아낸다. 많을수록 좋다는 그릇된 패션 철학은 그저 환상일 뿐. 그들에게 멋짐은 결코 소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방법 2: 재료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어찌 보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소재나 재료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까. 하지만 PROTOtypes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어떤 것이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바지가 꼭 바지로 다시 태어나야 할 이유는 없다. 때로는 넥타이도 훌륭한 가방과 상의로 거듭날 수 있다.


6.jpg 이 모든 걸 넥타이로 만들었다니! ⓒproto-types.ch, ⓒgatamagazine.com




방법 3: 제복을 수집하라


제복은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옷이다. 거리의 군인과 경찰관, 특정 기업의 작업복, 스포츠 유니폼들까지 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때로는 한마음으로 열광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의 마음 속 소소한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7.jpg 시리즈 5 ⓒpairsproject.com


뿐만 아니다. 제복은 트렌드와도 무관하다. 또한 디자인도 천차만별에 기능성도 다양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중에서도 축구 유니폼은 PROTOtypes이 가장 선호하는 재료다. 이는 잉글랜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캘럼의 추억에서 영감을 받은 것. 그는 어릴 때부터 축구 클럽의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에, 수많은 인파가 같은 팀을 응원했던 그 짜릿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이처럼 PROTOtypes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가져오는, 낭만적인 소통 방식을 택한다.


8.jpg 시리즈 6 ⓒproto-types.ch



방법 4: 에너지를 유지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래의 옷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 무분별한 해체와 가공보다는 원재료가 품었던 특성을 살리는 쪽을 택한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옷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9.jpg ⓒ032c.com




방법 5: DIY 하라


PROTOtypes만의 야심작. 프로토 팩(Proto Packs)은 스스로 하려는 욕구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DIY 키트다. 가구나 전자제품, 피규어만 내 힘으로 만들라는 법 있나. 이젠 패션도 내 취향대로 Do It Yourself가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10.jpg ⓒln-cc.com


이 팩은 패션에 관심은 있지만 기술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의류 제작을 위한 상세한 매뉴얼과 재봉 패턴을 제공한다. 옷장에 있는 오래된 옷을 재료 삼아 매뉴얼을 성실히 따르다 보면, 어느새 그럴듯한 작품 하나가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친절한 아이템인가! 이쯤 되면 믿겠는가. 그들은 수익 창출이나 장르를 독점하고자 하는 단순한 목표에 앞서, 진정으로 이 지구의 패션에 혁명을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11.jpg 동일한 팩이지만 어떤 재료로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proto-types.ch




실제 사례: 일곱 개의 시리즈


현재까지 7개의 시리즈를 선보이며 고객들의 호기심을 꾸준히 자극하고 있는 PROTOtypes.


12.jpg 시리즈 1-6 ⓒproto-types.ch, ⓒ032c.com


그중 작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7번째 시리즈는 PROTOtypes 역사상 최대 규모의 런웨이였다. 이번 시리즈 역시 그들의 창작욕을 꾸준히 자극했던 축구 커뮤니티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개인보다 집단의 연합을 중시하는 성향과 승리라는 공통된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소망과 열정을 내포한다. 중간중간에 더해진 인상적인 복면 디테일은 다수의 행복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론 익명성을 원하는 개인의 내밀한 욕망을 표현한 것.


13.jpg 시리즈 7 ⓒproto-types.ch


자, 이젠 인정하는가. PROTOtypes야 말로 지구의 패션에 새 바람을 일으킬 영웅이라는 것을. 그들은 쓸모없고 버려진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모두의 추억 한편에 새겨진 몰입의 경험을 탐구하며, 전형적인 패션의 행보를 거스르며, 우리를 강렬히 매료시킨다. 과연 당신은 이 치명적인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PROTOtypes의 상상은 이렇게 현실이 된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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