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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하러 콘서트장 갑니다

Stories: Artist Merch

Stories: Artist Merch

쇼핑하러 콘서트장 갑니다






음악은 이제 더 이상 듣는 예술에 머물지 않는다.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완성된 아티스트의 머천다이즈는 단순한 팬심을 넘어, 그들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가장 패셔너블한 방식이다. 투어 티셔츠 한 장, 한정판 후디 한 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이자 음악적 유대의 징표다. 음악과 패션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제 듣는 팬을 넘어 입는 팬으로 존재한다.





플래그십 스토어가 된 콘서트장


현재 가장 핫한 아티스트들의 머천 아이템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행사가 있다? 요즘 인스타 피드를 가득 채운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의 이야기다. 야외에 따로 마련된 아티스트 머천다이즈 부스에선 티켓팅만큼이나 뜨거운 경쟁이 치러졌다고. 헤드라이너인 레이디 가가(Lady GaGa)와 그린 데이(Green Day), 포스트 말론(Post Malone) 등은 코첼라에서만 판매하는 독점 시리즈를 선보였다.


1.jpg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제니, 리사, 그린데이(Green Day),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의 머천다이즈 ⓒcoachella.com, ⓒx.com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무려 8년 만에 내한한 콜드플레이(Coldpay)의 머천다이즈 부스 역시 성황을 이뤘다는 소식. 몇몇 아이템은 첫날부터 매진 사태를 이뤄, 구경조차 못해본 팬들의 하소연이 웹 상에 가득했다. 에디터 역시 참전했지만 보란 듯이 실패. 이쯤 되면 콘서트장으로 오픈런을 해야할 기세다.


2.jpg 친환경 잉크와 순면 100%만을 사용해 의류를 제작하는 콜드플레이 ⓒusstore.coldplay.com





20달러가 10,000달러가 되는 기적


이러한 아이템들이 그저 팬심의 반영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영국의 유명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 2년이 공백기를 깨고 복귀한 1979년 영국 넵워스 페스티벌(Knebworth Festival). 그곳에 방문했던 팬이 구매했던 단돈 20달러의 티셔츠는 수십 년이 흐른 후 1만 달러(한화로 1천 4백 만원)에 낙찰되었다.(The Gardian, 2018년 3월) 신원 미상의 호주인이 입찰하였다고 하는데, 당시엔 티셔츠로 백스테이지 입장권을 대체하는 시스템이었기에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후문.


3.jpg ⓒetsy.com


이처럼 아티스트 머천다이즈는 취향에 국한된 소비의 산물이 아닌, 대중문화의 흐름을 적극 반영하는 역사적 증거다. 그 시초는 1950년대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그는 스타 이미지를 활용한 최초의 뮤지션으로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버튼과 포스터, 셔츠 등을 발매하며 이른바 굿즈 개념을 창시했다. 뒤이어 60년대의 비틀즈(The Beatles)는 문구류부터 인형, 심지어 식기류까지 손을 뻗으며 아이템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마어마한 인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굿즈 발매는 당시 그들의 팬덤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주는 척도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4.jpg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자 판매 포스터 ⓒgottahaverockandroll.com
5.jpg 1960년에 발매된 비틀즈 그릇 ⓒrockaway.com.au





락스타가 되고 싶니?


특히 락스타들의 밴드 티셔츠는 현재의 패션 런웨이에도 강렬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롤링 스톤즈의 혀 그래픽. 1971년, 그래픽 디자이너 존 파슈(John Pasche)의 손에서 탄생한 이 그림은 힌두 여신 칼리(Kail)의 이미지에 영감을 받았으며 젊음과 반항, 해방을 상징한다.


6.jpg 그래픽 디자이너 존 파슈 ⓒnytimes.com


90년대를 대표하는 너바나(Nirvana)의 스마일리 로고 역시 빼놓을 순 없다. 허술한 낙서 같은 느낌 덕분에 펑크와 그런지의 생생한 무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단순한 디자인 때문인지 저작권에 관한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2019년,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의 브랜드 HEAVEN의 티셔츠 로고와 스마일리의 유사성이 제기되었기 때문. 마크 측은 얼굴의 눈을 나타내는 십자가를 M과 J로, 너바나라는 글자를 천국으로 대체함으로써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주장했다. 하지만 너바나 재단 측은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스마일리를 직접 디자인했고, 때문에 그 소유권 역시 재단 측에 있다고 반박했다. 허나 법원은 당사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소송 자체가 유효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7.jpg ⓒtheguardian.com


그러나 너바나의 모든 것은 여전히 패션계의 한 영역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 꼭 스마일리가 아니더라도 밴드 이름과 앨범 재킷 등이 새겨진 아이템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는 곧 너바나의 음악도 훌륭하지만 프론트 맨인 커트 코베인 자체가 독보적인 스타일 아이콘이었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8.jpg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의 너바나 사랑 ⓒpinterest


자유와 저항, 그리고 발산. 락 장르만의 고유한 매력은 흥미로운 디자인의 원천이 되었다. 언제나 독창적인 무드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라프 시몬스(Raf Simons) 역시 자신의 2003년 컬렉션에서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Unknown Pleasures 앨범 재킷에 등장한 전파 무늬를 차용했다.


9.jpg Raf simons FW03 ⓒvogue.com





입덕 전과 입덕 후


입덕 전과 입덕 후를 나누는 조건. 바로 아티스트의 머천다이즈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가 아닐까. 이는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이 어떤 취향과 문화를 지지하고 있는지까지도 세상에 드러낸다. 가끔 길거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면 내적 친밀감이 수직 상승하는 경험, 모두가 한 번 쯤 겪어보지 않았는가.


10.jpg 트래비스 스캇의 세번째 앨범 발매 기념으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협업한 By a Thread 티셔츠 ⓒcomplex.com


그래서 인지 아티스트들 역시도 아이템 제작에 점점 공을 들이는 추세다. 트래비스 스캇은 아예 머천다이즈 판매를 위해 샵을 따로 열어두었다. 나아가 특정 투어에 맞춰 제작된 티셔츠는 희소성이 있기에 더욱 가치가 높다. 2016년,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퍼포즈 월드 투어 굿즈는 Fear of God의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가 참여해 완성도를 더했다.


11.jpg ⓒhypebeast


뿐만 아니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영국 밴드 The xx의 데뷔 1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을 직접 디자인했는데, 착용자가 직접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DIY 요소까지 적용했다. 청소년기의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는 신선한 접근이다.


12.jpg 라프 시몬스만의 미감으로 가득한 The xx의 캡슐 컬렉션 ⓒdazeddigital.com


이토록 다채로운 머천다이즈의 세계. 이젠 음악이 좋아 그 뮤지션을 응원하는 것이 아닌 굿즈를 착용하기 위해 뮤지션에 입덕하는 경지에 이르고야 말았다. 뭐, 상관없다. 예쁘면 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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