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LAB: PHOEBE PHILO
왜 우리는 피비 파일로를 입고 싶은가
지금까지 이런 여성 패션 디자이너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디렉터를 맡은 시절 Chloé, CELINE를 동시대의 핫한 브랜드로 만들었고, 그녀가 브랜드를 떠난 후로도 많은 이들이 그리워했다. CELINE를 떠난 직후 패션 팬들은 브랜드의 전성기를 이끈 그녀의 시기를 ‘OLD CELINE’이라고 구분 지어 부르기 시작했고, 그 시절 작업을 아카이브한 @oldceline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등장하기도 했으니.
패션에 관심 있다면 누구나 한번 쯤 들어왔을 이름, 바로 궁극의 여성복을 만드는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PHOEBE PHILO로 컴백한 그녀다.
1973년, 영국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란 피비 파일로. 파리에서 태어나 두 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십 대 시절 옷을 직접 꾸미는 것을 즐겼고, 14살에 재봉틀을 선물 받으면서 그 열정은 더욱 커졌다고.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대학을 졸업한 후 1997년, 당시 Chloé의 디자이너였던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며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다. 그 후로 Chloé와 CELINE의 디자이너로서 여성복의 역사를 새롭게 쓴다.
30대 초반인 에디터. 요즘, 확실히 전보다는 모던하고 미니멀한 실루엣에 눈길이 간다. 뭐랄까, 더 이상 옷의 힘에만 기대지 않고 싶달까. 무슨 말이냐면, 전에는 존재감이 확실한 옷에 기대곤 했다면, 이제는 내 자신의 존재감을 그대로 인정하고 옷은 그걸 잘 보조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더 흥미로운 점은 전에는 눈길도 가지 않던 페미닌한 스타일의 아이템이 예뻐보인다는 거다. 편한 스니커즈 류의 슈즈만 선호하던 나지만, 가끔은 플랫 슈즈나 힐도 신고 싶다.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왜 패션 좀 좋아한다는 언니들이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일단 사람 자체가 아이코닉하다. 그녀의 Chloé, CELINE 시절 디렉터 시절 런웨이 피날레 룩을 보시라. 미니멀하고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한끗 포인트의 세련됨이 있다.
무엇보다 그녀가 보여준 옷은 늘 ‘질문’에서 출발했다. 여성이 실제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몸을 조이는 옷 대신 무엇이 필요한지, 섹시함이 꼭 노출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런웨이의 과장된 제스처가 아니라, 현실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의 구조와 실루엣으로 제시되었다.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와 마이클 라이더(Michael Rider)가 오늘날 지적이고 현실적인 럭셔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피비 파일로가 닦아놓은 이 길 위에서다. 그녀는 여성복에서 기능, 태도, 미학이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니까.
“내가 CELINE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건 이겁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옷을 입고, 자신이 원하는 걸 입으라는 거죠. 타인을 위한 옷을 입지 마세요. 나는 남을 위해 차려입는 과정에서 무력화되거나 성적 대상화된 여자들의 이미지를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2017년, CELINE를 떠난 이후 약 5년의 공백.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PHOEBE PHILO의 론칭. 어느덧 2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영향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피비 파일로가 특별한 이유는 여성복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피비 파일로의 커리어는 Chloé에서 시작된다. 1997년, 젊은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기존의 로맨틱한 Chloé를 보다 절제되고 지적인 여성상으로 재정의했다. 장식보다는 실루엣, 트렌드보다는 태도에 집중한 접근이었다.
허나 진정한 전환점은 CELINE 시절이다. 2000년대 초,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가 잠시 CELINE에 상업적 성공을 안기긴 했지만, 그가 떠난 이후 CELINE은 다시 정체성의 공백에 빠진다. ‘누가 CELINE을 입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히 답을 하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피비 파일로를 디렉터로 임명하게 된다. 그렇게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피비 파일로는 CELINE을 ‘커리어 우먼이 입는 럭셔리’의 대명사로 각인시켰다.
특히 그녀의 CELINE 시절 컬렉션은 “이 옷을 입은 여성은 어떤 하루를 살까?”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들이 보여주던 환상 중심의 패션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었다. 피비 파일로는 늘 자신만의 길을 명확하게 제시해왔던 디자이너다.
2021년, LVMH의 투자를 받아 만든 그녀의 자체 브랜드 PHOEBE PHILO. 그리고 첫 번째 컬렉션의 이름은 A1이었다. 그 뒤로도 여타 럭셔리 하우스처럼 시즌별 컬렉션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알파벳 명명의 컬렉션을 쌓아가는 중이다.
컬렉션의 네이밍을 단순히 시즌명이 아닌 알파벳으로 전개하는 의도는 이렇다. 옷이란 단기간에 소비되는 트렌드가 아닌, 시간을 두고 쌓이는 아카이브 옷장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담은 것.
이 방식은 지금의 PHOEBE PHILO SNS 브랜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과도한 드러냄보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메시지만 간결하게 전달한다. 최근 공개된 컬렉션 D에서 피비 파일로는 내년을 향한 메시지를 던졌다.
미니멀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세련됐지만 과시하지 않는다. 이전보다 더욱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우리에게 고요한 울림을 전한다. PHOEBE PHILO가 만드는 옷은 결국 '여성이 진짜로 원하던 옷'에 가장 가까운 형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녀의 옷을 입고 싶을 것이다.
Editor: 김나영
Published by jente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