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The Antwerp Six, Now
아이코닉한 앤트워프 6의 유산과 현재
패션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집단이 있다면, 바로 앤트워프 6(Anterwerp Six)다.
이들이 혜성같이 등장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 2026년.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이 6명은 각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한 건 못 참는 에디터가 이들의 근황을 찾아봤으니, 평소 궁금했던 독자라면 끝까지 따라오시라.
벨기에의 세계 3대 패션 스쿨,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출신의 여섯 명의 디자이너,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디크 반 셰인(Dirk Van Saene), 마리나 이(Marina Yee), 디크 비켐버그(Dirk Bikkembergs).
이들은 1986년 런던의 ‘브리티시 디자이너 쇼(British Designer Show)’에서 ‘신선한 비전과 기존의 패션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아방가르드한 패션’이라는 극찬받으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사실 앤트워프 식스를 논하면 꼭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1980년 앤트워프 왕립 학교를 졸업한 그는 앤트워프 6의 일원으로 자주 오해를 받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마르지엘라는 1984년부터 86년까지 장 폴 고티에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다가, 1987년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다만 동시대에 활동했고, 멤버들과 함께 엮이기도 했기에 명예 멤버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한때 함께했던 이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앤트워프 6 중,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디자이너를 꼽자면, 드리스 반 노튼이다. 재단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잇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부탁을 뿌리치고, 1980년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1986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런칭해 활기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는 대형 럭셔리 그룹에 속하지 않은 채, 독립 디자이너로서 글로벌 유통망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한 드문 사례다. 파리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은 시즌마다 명확한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상업성을 놓치지 않았고, 이는 바이어와 소비자 모두에게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제공했다.
또한 드리스 반 노튼은 브랜드 확장에 있어서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무리한 라이선스 사업이나 과도한 로고 플레이 대신, 꽃과 자연에서 영감받은 프린트와 화려한 컬러, 시퀀, 벨벳, 자카드, 자수 등 다채로운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맥시멀리즘 패션을 선보였다. 독자적인 하나의 브랜드로서 DRIES VAN NOTEN은 자신의 언어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며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매 시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앤트워프 출신의 젊은이로서 내 꿈은 패션계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에 집중하고 싶다. 아쉽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쁘기도 하다.”고 말하며 2024년 6월 파리 패션 위크를 끝으로 은퇴한 그. 지금은 벨기에 자택에서 정원을 가꾸며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중이라고. 추가로, 그는 남편과 함께 예술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1981년에 졸업한 앤 드뮐미스터는 1985년, 사진작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남편 패트릭 로비앙(Patrick Robyn)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ANN DEMEULMEESTER를 론칭한다.
그녀의 패션은 늘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의 여백을 서정으로 채우며 전개됐다. 날카롭게 떨어지는 테일러링, 해체된 셔츠와 코트, 남성성과 여성성이 뒤섞인 실루엣은 고딕적이면서 서정적인 동시에 반항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특히 시와 음악, 문학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그녀의 컬렉션은 보헤미안 정서를 물씬 풍겼다. 파티 스미스(Patti Smith),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랭보(Arthur Rimbaud)의 텍스트를 옷에 담아냈고, 감정과 정체성을 중심에 둔 그녀의 작업은 앤트워프 6중에서도 가히 예술적으로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것.
2013년, 그녀는 “할 말은 다 했다(I have said everything I wanted to say)”라는 짧은 문장을 남기고 패션계를 떠났다. 지금은 자신의 브랜드를 새로운 디렉터에게 맡겼지만, 그녀가 남긴 브랜드의 유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그녀는 벨기에에 머물며 조각과 도자기 같은 홈웨어와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중심으로, 보다 사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2019년부터는 세락스(Serax)와 협업하여 도자기 컬렉션을 제작하고, 가구 컬렉션을 통해서는 다양한 소재의 스툴, 의자, 테이블, 콘솔, 소파 등을 선보이는 중이다.
유일하게 지금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앤트워프 6 멤버이자 디자이너.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1980년대 초반에 졸업한 월터 반 베이렌동크는 앤트워프 6 가운데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언어를 구사해온 인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전개하며, 패션을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이 세상에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다뤄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그는 런웨이를 하나의 퍼포먼스 공간으로 변모시켰고, 옷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자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입기 어려운 디자이너’로 불렸지만, 동시에 가장 시대를 정확히 반영한 디자이너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재의 그는 디자이너이자 교육자다. 오랜 시간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패션과 교수로 재직하며, 최근 퇴직했다. 그는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실험과 태도의 중요성을 전해왔다.
최근 컬렉션에서도 여전히 정치적 메시지와 유머, 불편함을 동시에 옷을 통해 전하는 중이다. 그는 은퇴하지 않았다. 그가 오래전부터 던져온 질문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앤트워프 6 중 가장 조용하게, 자신만의 세밀한 테일러링과 예술적인 프린트를 선보인 디자이너, 더크 반 셰인.
1981년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자신의 부티크를 앤트워프에서 론칭한 그는 앤트워프 6 가운데서도 가장 내향적인 디자이너라고 한다. 대규모 컬렉션이나 화려한 쇼보다는 소규모의 아티스틱한 제작 그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으니.
더크 반 사엔의 옷은 한눈에 드러나는 시그니처가 없다. 대신 가까이에서 볼수록 드러나는 손맛과 디테일, 수작업 자수와 패치워크, 회화적인 프린트가 그의 세계를 구성한다. 매 시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이전의 작업을 조금씩 변주하고 축적해 나가는 방식에 가깝달까.
상업성과 거리를 둔 그의 작업은 자연, 민속적 요소, 오래된 텍스타일과 같은 전통적인 레퍼런스를 현대적인 실루엣 안에 재배치하며, 옷이 애초에 지닌 촉감과 무게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그는 여전히 앤트워프를 기반으로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이어가며, 느린 속도의 창작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직 옷으로만 말하는 그의 패션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현재는 세라믹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월터 반 베이렌동크와 연인 관계이기도 하다. 그 또한, 월터와 함께 앤트워프 교수로 재임하다 최근 정년퇴직했다.
아무도 패션과 축구를 결합할 생각을 못 한 시절, 그걸 해낸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더크 비켐버그.
1982년 앤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브랜드 DIRK BIKKEMBERGS를 론칭해 컴뱃 부츠와 스포츠 무드를 하이 패션에 접목해 보였다. 특히 축구 선수들을 모델로 세우는 등 2000년 축구에 영감받은 ‘DIRK BIKKEMBERGS SPORTS’를 론칭하기도.
밀리터리 부츠, 레이스업 슈즈, 근육을 강조하는 실루엣, 기능성을 전제로 한 디자인은 1990년대 남성복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관능적이되 장식적이지 않고, 남성성을 숨기기보다 노출하는 방식. 이는 당시 패션계에서 보기 드문 태도였다.
그는 2005년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지방의 작은 축구 클럽 FC 포 솜 브로네를 인수하여 자신의 패션 세계를 펼칠 ‘본부’로 탈바꿈시킨 것. 당시 5부 리그에 속하던 팀은 더크 비켐버그의 아티스틱한 룩을 입고 경기에 나서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브랜드의 홍보 측면에서도 큰 효과를 거뒀다고.
2000년대 이후 브랜드는 점차 상업적 확장을 택했고, 디자이너 개인의 색채는 희석된다. 결국 그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에서 물러나며, 자신의 이름과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나 비켐버그가 남긴 미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쉬이 볼 수 있는 패션과 스포츠의 결합은 그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그의 근황은? 2011년경 브랜드를 중국 자본에 매각하고 본인은 브랜드를 떠나고 지금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앤트워프 6의 멤버로 1981년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졸업한 마리나 이 사실 가장 다루고 싶었던 인물이다. 에디터로서 글을 쓰면서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인물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되고, 새로운 감정을 겪게 되는 건 꽤 귀한 순간이다.
그녀가 작년 말 11월 1일 췌장암 투병 끝에 타계하였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적잖이 놀랐다. 실제로 알던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가슴 한편이 찡했다. 그녀의 생이 주는 서사가 감히 그런 마음을 갖게 했다. 타인에 대한 알량한 연민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이 한 개인이 자신답게 사는 것에만 오로지 단독 가치가 있다고 믿는 입장에서 그렇다.
앤트워프 6 그룹을 가장 먼저 떠났던 그녀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는 “대량 생산에 저항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진정한 예술가”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로 그랬다. '업사이클링'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마리나는 쓰레기통에서 옷을 뒤지고, 벼룩시장에서 독특한 옷감을 찾아내고, 천 조각을 이용해 만든 옷을 입고 클럽에 가곤 했으니까.
2003년 빈티지 의류를 재구성하는 ‘업사이클링’ 패션의 시초인 그녀는 2018년 현재의 브랜드 론칭했다. 당시 소규모 캡슐 컬렉션 ‘M.Y project’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업가적인 디자이너보다는 옷 하나하나 자체의 가치와 복원에 관심을 가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한 패션 디자이너였다.
서른 살이 되면 자신의 컬렉션으로 정상에 서고 싶었던 그녀는 연인이었던 마틴 마르지엘라의 컬렉션에서 자신과 닮은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디자이너가 아닌 뮤즈가 된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을 정도다. i-D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종종 질투심에 사로잡히곤 했다. 조각가나 사진 작가, 아니면 적어도 다른 어떤 직업이라도 가졌더라면 마틴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라고 말했을 정도. 마르지엘라는 사업 파트너인 제니 메이렌스(Jenny Meirens)와 함께 일하며 얻은 서포트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게 컸다.
2021년 60세가 된 마리나 이는 재기를 계획하기도 했다. SSENSE와 Dover Street Market에서 판매할 의류 라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 세계를 바탕으로 ‘마르지엘라의 전 연인’이 아닌 한 명의 아티스트로 기억되기를.
“젊고 유망한 디자이너 그룹은 여럿 있었죠. 하지만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독보적인 공생 관계였습니다. (…) 신예 디자이너 시기에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시기를 겪었지만, 동시에 서로를 격려하며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자극했죠. 미적 감각은 각기 달랐지만, 시기나 갈등 없이 서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마리나 이
각자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동시에 한 시대를 함께 풍미하며 아방가르드 패션을 이끈 엔트워프 6. 마침,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행적을 기리는 심도 있는 전시가 곧 열린다는 기쁜 소식이다. 바로 벨기에의 패션 뮤지엄 앤트워프 MoMu에서! 2026년 3월 28일부터 2027년 1월 17일까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장소와 시간이 맞는다면 놓치지 말고,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늘 생각한다. 영원한 건 없다고.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했다. 아이코닉한 이들의 행보를 보인 이들이 과거에 이룬 것, 그리고 현재의 그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누구나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고, 커리어적으로 성공하고 아니고만으로 한 사람의 생에 대해 감히 논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앤트워프 식스의 6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보며 오로지 이 겸허한 마음만이 남았다.
Editor: 김나영
Published by jente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