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올해 여름에 볼 영화를 알고 있다.

Culture: Summer Movies

Culture: Summer Movies

나는 네가 올해 여름에 볼 영화를 알고 있다




이러다 녹아버리겠다. 공기를 점령한 역대급 더위와 무시무시한 장마를 무사히 버텨내려면, 그동안 감춰두었던 집돌이의 역량을 제대로 끌어올려야만 한다. 여기, 그런 당신을 위해 여름 영화 아홉 편을 전격! 추천한다. 제목에 이름이 들어간 뻔한 영화들은 단 한 편도 없으니 일단 믿고 읽어보시길.




여름, 사랑


아이 앰 러브(Io sono l'amore, 2009)


©film-rezensionen.de


이탈리아 출신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의 욕망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인 <아이 앰 러브>. 뒤이어 <비거 스플래쉬>와 가장 유명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모두 아련한 사랑의 순간을 담고 있지만, 이 작품은 조금 특별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륜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용납 못할 상황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엠마 역의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의 열연 덕분일까. 아들 친구와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설정과 그 여파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 그리고 결국 이를 모두 제쳐두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마는 엠마의 결정. 이 모든 불합리적 상황에도 관객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엠마를 응원하게 된다. 당신은 예외라고? 과연 그럴까. 사랑과 욕망의 모호한 경계에서, 세상엔 ‘그럴 수밖에 없는’ 나쁜 선택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nytimes.com, ©imdb.com


세상 만물을 비추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남몰래 한낮의 밀회를 즐기는 두 남녀의 애잔한 풍경은 ‘여름 같은 사랑’이라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하는 명장면이다. 또한 제83회 아카데미에서 의상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만큼 멋진 패션도 감출 수 없는 영화 속 매력 중 하나다. 이 두 가지 힌트를 음미하며 감상해 보시길.





문라이트(Moonlight, 2016)


©artofthemovies.co.uk


2017년의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 하지만 당시 호명자가 <라라랜드(La La Land)>로 수상자를 발표하는 실수를 범했고, 이런 최악의 해프닝 때문에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하지만 이 예상치 못한 이슈에도 불구하고, <문라이트>의 수상에 의심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충분히 받을만한 작품이었으니까.


영화는 흑인과 빈민, 동성애자 등 마이너 한 캐릭터들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핍박과 멸시, 마약과 폭력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들의 기구한 일상을 말이다. 하지만 "달빛 아래에서, 검은 소년들은 모두 푸르게 보인다." 세상에 깔린 짙은 어둠은 그들에겐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 모를 낙인과 같던 피부색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시간이다. 숨 막히는 차별이 태양과 함께 잦아들고, 평화와 평등의 푸른빛으로 발광하는 존재로 비로소 거듭나는 것이다.


©dazeddigital.com, ©ourculturemag.com



영화 내내 그들을 지독하게 따라붙던 무더위와 내리쬐는 뙤약볕은 마치 꽉 막힌 외부의 편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푸른 바다에서, 흔들리는 수면 위에서,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해변가에 불어오는 잔잔한 밤바람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사랑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미장센은 물론이며 스토리와 사운드트랙까지 완벽한 좀처럼 보기 드문 영화. 이 영화 안 본 눈 삽니다.





여름, 청춘


69 식스티나인 (69 Sixty Nine, 2004)


©filmaffinity.com



답 없는 꼰대들로부터 소녀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영화 <69 식스티나인> 속 주인공들의 귀여운 반란은 이런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된다. 교장 선생님의 책상에 용변 테러를 하고, 학교 전체를 봉쇄하는 것도 모자라 교실에 있던 책걸상을 빼내 운동장에 바리케이드를 쳐버리는 데다, 학교 정문에는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플래카드까지 걸어두는... 상상초월의 패기들로 가득한 투쟁이 일어난다.



©goo.ne.jp



1969년 큐슈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청춘은 물론 사람 냄새까지 풀풀 나는 영화다. 당시 고도성장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일본 사회의 극적인 장면들을 열일곱 고등학생의 치기 어린 시선을 빌려 풀어냈기에, 더욱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오직 여학생들의 시선을 받기 위해 외국 밴드의 음악을 공들여 카피하고, 정처 없는 창작욕에 불타올라 꾸질꾸질한 8미리 카메라로 열심히 영화를 찍고, 온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축제에서 신나게 놀아제끼던 시절의 이야기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라고 외치던 그 시절 히피들의 슬로건처럼 말이다.


리즈 시절 츠마부키 사토시(Tsumabuki Satoshi)의 청량한 미모와 장대비를 맞고도 끄떡없던 청춘의 여름날, 그리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일본 60년대의 키워드들. 이 모든 추억들이 발랄하게 펼쳐지는 영화, 그게 바로 <69 식스티나인>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 Chou, 2005)


©imdb.com


앞선 <69 식스티나인>이 청춘의 패기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는 180도 방향을 틀어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을 비춘다. 사랑도, 믿음도, 관계도, 삶도, 모두 서툴기만 한 소년소녀들은 오로지 서로 연결되기 위해, 나아가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결국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에게 ‘릴리 슈슈’의 노래는 답답한 세상 속 유일한 탈출구나 다름없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절망에 빠진 마음을 구원하기도, 때론 같은 고통에 빠진 이들을 조건 없이 이어 주기도,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기도 하니까. 그렇다. 릴리의 노래는 그들에겐 어쩌면 종교나 다름없다.


집단 따돌림과 폭력,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세상과 자신을 대하는 청춘들의 태도는 순수하지만 무지하고, 열정적이지만 무모하다. 그 속에서 그들을 맺어주는 유일한 매개체는 바로 릴리,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다. “살아 있는 덕분에 릴리를 만나게 되었다.”는 주인공 유이치의 독백은 그들의 삶 속의 릴리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sabukaru.online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오키나와 여행씬은 영화의 백미다. 마치 함께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날 것의 연출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지방색과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상치도 못 할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긴 하지만.






여름, 환상적인


엉클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en.wikipedia.org


태국의 거장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8번째 작품인 <엉클분미>. 감독은 이 영화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태국인 최초라는 영광적인 칭호까지 함께 얻게 된다.

영화의 내용은 난해함의 연속이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독백과 대화가 난무하며, 장소와 캐릭터도 쉴 새 없이 변하고 급작스레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모든 궁금증들이 말끔하게 해소된다. 답을 찾게 됨으로써가 아니다. 애초부터 이 영화엔 스토리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됨으로써다. 이해하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굳이 끙끙대며 개연성을 따져나갈 필요는 없으니까.


©m.imdb.com, ©film-grab.com


<엉클분미>는 관람보단 체험에 가깝고, 전달보단 표현에 집중하는 영화다. 이런 영화는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간단하다. 그냥 머리를 텅 비우고 한 장면 한 장면에 집중하면 된다. 마치 영상 매체를 이용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말이다. 영화를 만든 방식도 그렇다. 원래 설치 작품으로 제작될 영상들을 모아 영화로 합친 것이기 때문에 특이한 구조를 띌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종종 언급되는 대사도 온통 상징투성이. 전생과 영혼, 전설과 환상 등 어차피 해석될 수 없는 것들로 한가득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태국 대자연의 풍경들을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푸른 여름밤, 정글 숲들이 자아내는 황홀한 실루엣과 빈틈을 채우는 자연의 소리들. 그 속에서 가끔 등장하는 반가운 사건들을 마주하며 말이다.





비치 (The Beach, 2000)




휴양지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그리울 때마다 틀게 되는 영화, <비치>. 게다가 리즈 시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의 모습까지 함께 관람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자, 그럼 여기서 질문 들어간다. 당신 앞에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낙원섬’의 지도가 ‘뜬금없이’ 놓여있다. 하지만 이 섬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 정확한 정보는 전무한 상황.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섬에 대한 소문만 스치듯 들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이 섬을 향해 떠나겠는가?


©smh.com.au, ©film-grab.com


만약 당신의 답이 예스라면, 반드시 이 영화를 봐야 한다. 당신의 즉흥적인 선택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하니까. 허나 답이 노라고 해도, 반드시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이 영화는 단지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이 아닌, 하나의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며 또한 어떤 식으로 분열되는지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더해 다양한 인간 군상은 물론, 인간 자체의 본성이 얼마나 추악한 지까지 말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파라다이스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안에 사는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될 것이다.






여름, 서늘한


큐어 (Cure, 1997)


©themoviedb.org


봉준호 감독이 뽑은 죽기 전 꼭 봐야 할 ‘인생 영화’ 7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영화 <큐어>. 하지만 이 리스트가 공개되기 이전부터 이미 이 영화는 공포 스릴러 영화를 탐닉하는 마니아 사이에선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오던 레전드 작품이었다. 너무 유명해서 수식어가 따로 필요 없는 구로사와 기요시(Kurosawa Kiyoshi)가 연출을 맡았으며, 아마 이런 식으로 관객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영화는 다신 없을 거라 자부할 만한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보고 나면 왠지 찝찝한 영화. <큐어>는 그중에서도 단연 1등이다.


©criterion.com


내용은 도쿄에서 발생하는 연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근데 이 사건들, 막상 모아놓고 보니 참 이상하다. 살해 방식은 비슷한데 잡혀온 범인들이 전부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전과조차 없는 깨끗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이렇다 할 동기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범인들은 자신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이유조차 몰랐다.


근데, 이들 사이엔 하나 놀라운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살인을 저지르기 이전 한 남자를 만났다는 것. 담당 형사인 다카베는 이 이상한 사건에 궁금증을 품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미스터리한 남자를 쫓기 시작한다.


©criterion.com


봉준호 감독은 7편 중 한 편으로 이 영화를 꼽았지만, 나는 인생 영화 세 편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이 영화를 찬양한다.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사람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영화가 끝난 뒤엔 한참 동안 잔상과 질문들에 치여 한동안 이 영화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마찬가지고.





Other Side of the Box & SCP: OVERLORD


내겐 이상한 버릇이 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휴대폰으로 공포 영상을 보는 것이다. 요즘 중국 드라마에 푹 빠진 엄마나 본격적으로 게임에 열중하는 막내 곁에 딱 붙어서 ’심약자 주의‘라는 딱지가 붙은 영상들을 보는 게 얼마나 쫄깃하고 재밌는 일인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그중 제일은 명절날이다. 친척에 애들까지 다 모인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거드는 척하며 몰래 공포 영상을 훔쳐보는 건 정말 스릴 만점이니까. 무서운 걸 너무 좋아하는데 혼자서는 도무지 못 보겠는 쫄보라 그런 거겠지만 여하튼, 서론이 길었다. 나처럼 쫄보에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는 당신을 위해 짧은 공포 단편 두 개를 소개한다.


하나는 정체 모를 상자에서 자꾸 사람이 자라나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면 도무지 감이 안 잡히겠지만, 어쨌든 정말 획기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영화다. 제목만으로 영화의 내용을 유추하기엔 역부족이지만 15분 남짓 한 시간만 투자하면, 이 이상한 감독의 머릿속까지 궁금해질 테니 반드시 유튜브에서 검색 후 시청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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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서브컬처계의 다이아 티어, SCP 시리즈 중 OVERLORD다. 이 SCP 재단은 한 커뮤니티의 괴담 페이지에서 발전한 일종의 커뮤니티인데, 공포물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각종 초현실적 아이디어들을 올리고 공유하면서 점점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를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과 게임까지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OVERLORD는 팬메이드 무비치고 정말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거대 사이비 종교의 교주 체포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외딴곳에 있는 종교 시설로 출동한 특공대원들의 이야기인데, 몰입감과 긴장감도 대단한 데다 특히 그 마지막... 장면은 오래오래 길이길이 기억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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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가 당신들의 멜팅화를 저지하기 위한 에디터 주단단의 긴급작전이었다. 이제 팝콘과 콜라, 에어컨 리모컨이라는 무적의 무기를 들고 화면을 켜자. 조금만 참으면 이 여름도 금세 물러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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