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 단상

4. 나도 영락없는 K-부모

by 무 지 개

어린이에서 곧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 아이를 틀 안에서 키우지 않고 넓고 넓게,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부모 욕심은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땅에서 일반적인 교육과정으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부모로서의 희망과 현실의 괴리에 요즘 나는 매우 괴롭다.


결국, 수능이다. 이 모든 교육의 끝이 수능으로 귀결되는 교육의 현실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나니 힘이 빠진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울 때쯤에는 뭔가 바뀌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에 돌아와서 담임 선생님과의 첫 면담에서는 "국어, 수학도 문제이지만, 사회 과학도 문제예요"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이런 학업적인 면담은 나와 선생님 둘이 앉아서 할 일이 아니라, 공부의 주체자인 아이와 함께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야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쏙 빠져있는 상황에서 선생님과 나와 둘이 걱정하고 앉아있는 모양새가 앞으로의 험난한 K-교육을 예고해 주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한국식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를 이곳 아이들과 똑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결론은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이곳 아이들과 비슷한 실력을 갖추게 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결국 교육의 끝은 대학입시이니까. 아이에게 "너만의 타임라인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렴"이라고 말해주는 문화에서 "너 큰일 났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돼, 다른 애들 빨리 따라잡아야 해"라는 문화로 온 아이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는 마음일 것이다. 20~3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암기 위주의 경쟁입시만을 뭐라고 할 순 없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 정치, 경제의 모습을 담은 것이니까.


불필요한 학원은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마음이 요즘 촛불처럼 흔들린다. 공부의 주체자인 아이가 원할 때 학원을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은 집에서 나와 함께 문제집을 풀며 공부 습관과 태도를 잡아가고 있는데, 아이는 '왜' 이것을 집에서까지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아직까지는 약하다. 사실 초등학생 중에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명확한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하긴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반'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청소년이 되기 전부터 '내 갈 길'을 찾아놓은 아이들이 있긴 하겠다. 그 동기부여가 아이 스스로 찾은 것인지, 부모가 만들어 준 동기부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한 가지 학원을 꺼려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학원의 목표가 단순한 '점수 올리기'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많은 소비자의 니즈가 그것일 테니 학원도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점수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이가 과목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거부감이 생길까 봐 걱정이 든다. 나는 학창 시절에 수학을 싫어했다. 수포자까지는 아니었지만 수학이 어려웠고 과연 내가 넘을 수 있는 산일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수많은 기출문제를 풀어 제끼고 또 제껴도 어려웠다. 그런데 오히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수학을 접하면서 수학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수학이 풀 어제 끼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 재미를 학창 시절에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아이는 이 재미를 꼭 알았으면 좋겠으면 하는 바람에 선행을 권하지 않고 시간을 주고 있지만, "6개월이면 중등 수학까지 갈 수 있게 만들어 드려요"라는 멘트에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수능이니까.


내가 아이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성실함'이다. 내가 나의 위치에서 스스로에게 성실할 것.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을 해야지가 아니라 학생으로서 지금 너 자신에게 성실할 수 있는 수단은 공부이고, 공부를 통해서 성실함을 배우라는 것이다. 만약 예체능에 특별한 재능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성실함을 배우면 된다. 공부가 단순히 '몇 등'의 의미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앞으로 최소 6년을 해야 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공부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꼴찌를 하고 혹시 유급되는 거 아닌가 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 학교 생활은 매우 힘들 테니. 내가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 애를 쓰는 것, 이번에 잘 안 됐으면 또 도전해 보는 것 이 모든 과정이 학창 시절에는 공부이고 성실함이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더라도, 성실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인생에서 반드시 자신을 위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아이가 이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나는 기다려줘야 하겠지만, 또 기다리지 못하고 잔소리로 끝내버리는 나의 한계에 늘 좌절한다. 기다려주고 싶지만 이 사회가 정한 타임라인을 여전히 무시할 순 없으니... 그래서 K-엄마는 매 순간이 고민이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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