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 단상

5. 경제적 위기

by 무 지 개

퇴사 후 전업 맘과 프리랜서,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 사이를 오고 가고 있다. 이 중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은 전업맘인데, 초등학생 두 명을 케어하고 가사를 하는 일만으로도 사실 하루가 벅차다. 아이들이 통학 거리가 좀 있는 곳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데다가 아직 학원을 제 또래만큼 많이 다니지 않아서 엄마인 내가 케어를 해줘야 하는 부분이 꽤 많다. 물론 이제는 초등 고학년이라 돈으로 학원표 학습과 편의점 간식으로 때울 수 있겠지만, 초등학교까지는 내가 집에서 학습 습관을 잡아주고 엄마표 간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하교 후에 집에 가면 엄마가 있는 것이 좋았고, 학교에서 나름 사회생활하느라 지친 마음을 집에서 푸는 것이 좋았다. 엄마랑 시시콜콜 대화를 하지 않아도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집에 있는 것 자체가 그저 위로와 안정이 되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최근 남편이 회사에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퇴사를 결정할 정도로 심각한데, 퇴사를 먼저 해 본 사람으로서 그의 생각을 말릴 수는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이 프로젝트 끝나면 퇴사를 해야 할 것 같다"라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은 마음과 나도 현재 벌이가 없는 상황인데 가장으로서 좀 더 버텨보지 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그는 벼랑 끝에 서있을 것이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알겠다"라고 했다. 집 안 경제가 쓰나미급 위기를 맞을 위험에 처했다. 안 그래도 고물가에 올해 한국 경제도 볕 들 날이 없어 보이는데, 한창 커가는 아이 둘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위기를 맞고 나니 집에서 온전히 아이만 케어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체감했다. 전업 맘은 경제적 안정을 토대로 나의 '선택'으로 가능했던 역할이었던 것이다.(물론 나와는 다른 이유와 상황에서 전업 맘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일을 놓고 쭉 전업 맘을 하려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최소 아이들이 중학교 진학을 할 때까지는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하려고 했던 계획을 급히 수정해야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뭐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알바부터 해야 하나, 다시 회사를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로 돈을 벌어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휘저었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2024년 연말을 각자 암흑 속으로 보냈다.


"당신 새해 소망이 뭐야?"의 남편 물음에 "나는 돈 버는 거"라고 대답을 한 바로 다음날,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쉬는 동안에도 헤드헌터들에게 종종 연락이 오긴 했다. 하지만 24년도는 내가 스웨덴에서 들어오고 난 직후라 번 아웃된 심신을 먼저 챙겨야 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조직 내에서의 정치와 연관된 인간관계, 육아와 일을 균형 있게 할 수 없는 문화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에게 온 기회를 감사히 여기고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한다. 헤드헌터가 보내 준 잡 디스크립션을 보니 한번 해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스타트업에서 출발한 회사지만 나름 상장을 했고, 내가 대기업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빠른 성장을 경험해 볼 수 있을 터였다. 희망연봉을 적어달라는 헤드헌터의 요청에 퇴사 시 받았던 원천징수를 세밀하게 뜯어봤다. 그동안 한국 내에서 이직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이렇게 내 연봉을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었고, 내가 그동안 돈에 무감각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부끄러워졌다. 계산기를 이리저리 두드려서 계산을 해봤다. 40세가 넘은 경력자는 어느 회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고연봉'이라던데, 그게 맞는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연봉을 깎아서 가긴 싫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올려서 가고 싶은 마음과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괴로웠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우리 집에 찾아온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저 '잘' 헤처 나가야겠다는 마음뿐. 이런 경제적 위기가 내 인생에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역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구나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럴 때일수록 내 마음의 평화를 빌고, 생각과 마음을 단순히 해야겠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더 끈끈이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가야지. Life fails us sometime, but no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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