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에는 이 남자에 대해서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아보니 이 남자가 변한 건지 내가 잘못 안 건지 물음표가 생길 때가 있다. 또 남편과 나는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이렇게 안 맞을 수도 있구나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부부를 '로또'라고도 표현하지 않는가. 하나도 안 맞는다는 그 로또.
남편과 살면서 가장 놀랐을 때는 그가 화를 낼 때였다. 연애 때는 딱히 싸울 일도 별로 없었고, 내가 좀 삐치면 남편이 풀어주는 정도로 끝났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신랑이 식탁을 엎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소스라치게 놀라 급히 아이들과 친정으로 피신을 해서 밤새 울며 이혼전문변호사를 검색했다. 남편이 식탁을 뒤엎은 이유는 내가 '밥'을 안 해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우리가 이사를 한 날이었는데, 남편은 일이 바쁜지 출근을 해서 나 혼자 이삿짐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들도 데리고 와야 해서 나는 점심도 못 먹고 저녁까지 어수선한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 남편은 밥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동안 밥 차려 달라는 말 한번 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본인이 차려먹던가 밥이 없으면 다른 것으로 요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전기밥솥에 왜 '밥'이 없냐며 나에게 화를 냈고, 나는 오늘 이사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밥을 어떻게 하냐고 항변했다. 남편은 이사한 날에는 밥을 안 먹냐며 응수를 했고, 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밥 타령'을 한다고? 그렇게 언성이 높아진 남편은 급기야 앞에 있던 식탁을 뒤엎었다. 이처럼 남편은 가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점과 상황에서 갑자기 화를 낸다. 어안이 벙벙한 나는 그냥 입을 다문다.
지난 일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운전을 하고 남편은 조수석에 앉았다. 전 날 눈이 많이 와서 조심조심 운전을 하고 있었다. 뒤에 앉아있던 아이가 "엄마, 더우니까 히터 좀 꺼줘. 엄마가 차일드 락을 해놔서 난 창문을 열 수도 없단 말이야" 한동안 운전을 안 하다가 얼마 전부터 새 차를 운전하고 있던 터라, 나는 아직 차의 기능에 대해서 서툴렀다. 더욱이 운전 중이라 히터버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 누르니 옆에 있던 남편이 버럭 한다. "이걸 누르면 되잖아!"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날카롭고 짜증을 내는 그 목소리. 폭발하기 전의 남편 증세다. 뒤에 아이들도 있고 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빨간 불 신호등에 차를 세우고, "근데 차일드 락을 어떻게 풀지? 버튼이 어디에 있는 거지?" 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아이가 "엄마, 이거 아니야?" 하며 알려준다. 왠지 겸언쩍은 나는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아이콘이 이렇게 생겼을까? 하고 혼잣말을 하니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운전을 해본 거야 만 거야? 그 아이콘은 세계 어느 차량에도 똑같은 표시라고!" 순간, 나도 꼭지가 돌지만 뒤에 아이들이 있으니 초인적인 힘으로 입을 다문다.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엄마 아빠의 싸움이니까. 내가 입을 다무니 정적이 흐르고, 남편은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말을 퍼붓는다. "당신은 모르는걸 꼭 자랑처럼 당당히 이야기하더라" '........' 내가 대꾸를 하지 않으니 그도 화를 멈춘다. 오, 신이시여....
가끔 남편의 증상이 뭔가에 억눌려있다가 어떤 시점에서 확 터져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마음은 어떤 상태이길래 저런 것일까. 나에게 터놓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그래도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기고만장한 전형적인 나쁜 남자 스타일인 남편이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혼자 버럭 하고는 뒤돌아 언제 그랬냐는 듯해서, 내가 조곤조곤 설명해 주고 그럴 땐 나에게 사과를 해줘야 한다고 알려줬었다.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싶었는데, 역시 그때 가르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그다음 날, 전화를 하여 본인이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화가 난 이유를 설명했다. 그 이유가 하나도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뭐, 그의 생각과 감정이 그랬다니 그랬구나 했다. 아, 역시 우린 로또 부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