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2.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 셀린 송
비와 강렬한 햇빛이 하늘의 빛을 무수히 바꿔놓았던
여름이 지나, 빈 주머니에 채워넣어야할 온기가 필요해지는 날이다.
3월과 4월이 오고 봄의 언저리가 다가올때면
벚꽃의 개화시기와 귓가를 살랑이는 노래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짧은 봄이 지나면 따뜻한 원색의 색들이 사라지고 푸른 여름이 밀려오고
아지랑이는 다른 방향의 색들을 내뿜고
곧 갈색의 계절은 그때의 비처럼 온기를 가져가고
황량한 눈의 계절이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이 영화는 끊어진 시간을 이어붙이려는 이야기를 한다.
초등학교 때 비를 맞으며 마지막을 함께 보내던 아이들은
그 시간 이후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은 마음을
비가 그친 24년 뒤의 뉴욕에서 또 다른 시간의 끝을 이어가려 한다.
어색한 번역투의 말로 두 사람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나영과 해성이 다시 만난 뉴욕의 하루들을 동행하며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다.
때가 되어야 만날 수 있는 사람.
시간이, 공간이, 감정의 결이 맞아야만 피어나는 인연.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불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나영과 해성은 인과 연이 흩어져버린 결과론적인 관계일까.
과거의 기억에 갇혀 맞지 않는 시절인연을 위태롭게 붙잡고 있던 만남은
서랍 속 기념사진의 볼품없는 찬란함일까
그런 나는 해성이 되어 시절인연을 꿈꾼다.
모든 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여백을 존중할 수 있는 관계.
함께 있음에도 각자의 고요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
요즘들어 문득 문득,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멈춘다.
자주 머뭇거리고, 갈팡질팡한다.
혹시 지금 마음을 흔드는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일까?
혹은, 어딘가의 설원이나 해질녘 풍경 속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그 인연’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래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너무 뜨겁지 않게.
정해지지 않은 수평선 같은 어느 날,
나의 삶에 조용히 들어와 앉아있을 인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