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우리 안의 파시즘,임지현
책을 읽다보니 나의 모교 호그와트에서의 사건이 생각났다. 누군가가 나의 학창시절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볼드모트가 돌아왔을 때의 여론’이라 말할 것이다.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던 게 아니다. 어제의 영웅, 아니 태어난 직후부터 한평생 모두의 영웅이었던 해리가 한 순간에 정신병자라고 매도되는 게 충격이었다. 해리가 심한 두통으로 쓰러져서 정신상태가 의심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마저 언론에 나오고 시민들은 해리에게 원색적인 비난 편지를 서슴지 않고 보냈다.
그는 그 때 고작 15살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었을까? 그 때 여론형성을 주도한 세대를 살펴보자. 그들의 인격형성기엔 ‘죽음을 먹는 자(이하 죽먹자)’들이 이미 등장한 상태였다. 그들은 죽먹자들을 절대악으로 설정하고 싸우며 자랐다. 볼드모트라는 절대악에 저항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연대하기 위해 마법사들은 집단적 질서의 절대화, 개인성의 균일화, 적에 대한 강한 저항을 배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죽먹자들의 집단 형성 체계와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볼드모트라는 절대악은 사라졌으나 볼드모트의 전체주의, 권위주의는 그를 대항하는 사이 마법사들 사이에 아비투스로 남게 된다. 나치 제거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동독이 미온했던 서독보다 더 크게 네오나치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과 유사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해리라는 힘없는 청소년을 맘껏 공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라면서 배운 것은 타인을 절대적 적으로 프레임화시키고 매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볼드모트라는 절대악은 사라졌으나 볼드모트의 전체주의, 권위주의는 그를 대항하는 사이 마법사들 사이에 아비투스로 남게 된다.
이러한 반쪽자리 평화는 점점 한계를 드러난다. 늑대인간, 거인, 도깨비의 인권 문제는 항상 논란이 있어왔다. 시민들은 볼드모트라는 시급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게 최우선의 문제이고 그 외의 문제는 후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문제를 축소시켜버린다. ‘가장 중요한 문제’외의 이야기들은 묵살시켜버린다. 그러나 볼드모트가 사라진 후에도 이어져 온 문제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 결과 볼드모트가 돌아왔을 때 늑대인간이나 거인이 볼드모트와 결탁하게 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이 때 나는 여성사회학자 신인령씨의 말이 생각난다. “우선과제의 잘못된 선정은 주요모순을 은폐시키고 부차적 모순을 전면 부각시키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한다. 아이들은 네 개의 기숙사로 나뉘어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을 구분한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당화한다. 해리가 불의잔에서 이름이 나왔을 때, 후플푸프의 그리핀도르를 향한 적대감, 그리고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사이의 이유없는 적대감은 단순히 사춘기 아이들 사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볼드모트는 가고 죽음을 먹는자들도 사라졌다. 호그와트 네 개 기숙사도 이제 예전처럼 나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볼드모트에 대항했던 세대, 네 개 기숙사의 경쟁이 정당화되었던 세대가 현재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다.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10년도 더 된 책이지만 읽고 느끼는바가 많았다. 특히나 김근교수님의 언어체계의 파시즘 부분이 인상깊었다. 현재 서강대 중문과 교수님이시고 언어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관심이 많다고한다. 한자에 대한 책을 쓰셨던데 언젠간 읽어볼지도....
다만 여러저자가 모여 쓴 책이다보니 아주 깊이있진않다. 우리사회 전반을 파악하고 더 알기위해 어떤책을 읽어야할까 길잡이해주는 책으로 보면 되겠다.
그 외. 강준만과 임지현의 논쟁을 찾아보면 재밌다. 참고)안티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