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새해 처음으로 완독한 도서는 ≪보부아르의 말≫과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이다. 그중 후자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작년 욘 포세에 이어 한강 선생님의 작품을 연이어 읽어내려가다가 노벨리스트의 행적을 따라가보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201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들게 된 것이다. 뭔가 아직은 깊게 분석할 시점은 아닌 것 같다만, 다소 신년의 긴장감이 감도는, 글쓰기를 매일 해야겠다는 다짐하에 훗날 다른 작품들과의 연결 지점을 다시금 떠올리기 위해 남겨본다.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는 60년대의 파리 라탱 구역에 위치한 카페 '르 콩테'와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젊은 여성 루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게 다섯 파트로 나뉘고 네 명의 화자가 파트별로 마이크를 이어잡는다. 형식은 영화 ≪헤어질 결심≫이나 단편 소설 ≪만조를 기다리며≫처럼 실마리를 쫓아가는 모양새가 짙으나, 그 속에 담고 있는 건 오히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과 엇비슷하다. 비극이지만 말이다.
바뀐 화자가 주인공과 어떤 관련이 있는 누구인지 추리해내는 재미와 힌트를 발견하는 맛이 있지만, 안달복달한 재미와 쓴 맛이 아닐 수 없다. 첫 파트만 해도 다른 화자들에 대한 힌트가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처음 읽어내려갈 때는 다른 화자들의 존재 유무조차도 알지 못하므로 여하간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완독 후에 다시 첫 번째 화자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서야 해답을 알아맞히는 것을 이루었다. 그는 약한 성질의 판소리의 소리꾼이자 희곡의 해설자였다.
사내는 그 노트를 다음날 저녁까지 자신에게 빌려주면 고맙겠노라고, 그러면 사진들에 설명글을 달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학동네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p.25
그 책은 포켓판으로 표지가 더러웠고, 강변로에서 중고로 파는 부류의 책으로, 커다란 붉은색 활자로 '잃어버린 지평들'이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같은 책, p.14
노트에 '가죽 상의를 입은 갈색 머리 남자'가 언급될 때마다 파란색 연필로 두 줄을 그어놓았다.
같은 책, p.27
멋들어진 속삭임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첫 번째 화자는 고등광산학교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학생임을 밝히지 않은 채 카페를 드나든다. 이처럼 화자의 행동과 생각과 말은 그에게 특징적인 캐릭터를 부여한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학업중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감히 그들에게 말하지 못했으며, 진정으로 그들의 그룹에 섞여들지 못했다.
같은 책, p.13 (첫 번째 화자)
나는 문제의 핵심으로 곧장 들어가기 전에 그 장소들을 알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예전에 블레망은 그런 점을 질책하며 내가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책, p.41 (두 번째 화자)
그후의 삼사 년은 대개 같은 코스, 같은 길들을 다녔지만 점점 더 멀리 갔다.
같은 책, p.80 (세 번째 화자, 주인공)
그녀가 나를 예전으로, '르 캉테' 시절로 다시 데리고 갈까봐 두려웠다.
같은 책, p.93 (세 번째 화자, 주인공)
그 동네는 나의 유년 시절, 내가 퇴학당한 중고등학교의 기숙사 그리고 가짜 학생증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도핀 가 쪽의 대학 식당을 떠올리게 했다.
같은 책, p.114 (네 번째 화자)
캉브론 광장, 세귀르와 뒤플렉스 사이의 동네, 지하철 고가로에 이르는 모든 거리들은 중립지대에 속했고, 내가 그곳에서 루키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같은 책, p.118 (네 번째 화자)
(네 번째 화자는 정말 미친 공감 중독자에 로맨티스트다.)
두 번째 화자가 이끄는 파트는 특히나 실마리를 쫓아가는 형태를 강화한다. 앞서 언급한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헤어질 결심≫과 조예은 작가님의 단편 소설 ≪만조를 기다리며≫가 스친다.
침착한 분위기는 끝이 날 때까지 여전하나, 각 파트의 성격은 같지 않다. 화자들이 맡고 있는 역할과 관찰 대상(주인공)과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리라는 직감이 일지만, 미끼가 미끼인 이유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즈덤하우스 위픽 중 《만조를 기다리며》 p.12
정해는 바다를 건너온 저 돌멩이를 반짝반짝하게 갈고 닦아서 좋은 곳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같은 책, p.74
無.
춤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죠. 실제 자신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애쓰는 소심한 사람으로 말이죠.
문학동네의 《포르토벨로의 마녀》 p.215
당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그저 웃으세요.
같은 책, p.227
가죽 상의를 입은 갈색 머리 남자는 자신의 마을 중심에 실패한 마녀를 두었다. 일상의 주체를 그녀에게 맡겼다. 뜻한 대로 되지 않아 인상을 쓰고 있는 그녀를 자기자신처럼 여겼다. 자꾸만 도망가 평범한 일을 그르쳐버리는 품 안의 그녀를 인정했다. 다른 부분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다름을 즐겼다. 그 속에서 닮음을 찾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드디어 찾은 감각을 받는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순간은 오직 그녀의 모습에서 본인과의 화합을 찾았을 때뿐이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문학동네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p.114
그녀는 불안해 보였다. 그녀는 센 강이 낯선 두 도시를 갈라놓는 경계선. 일종의 철의 장막인 양 '리브 고슈'라는 단어를 썼다.
같은 책, p.125
나는 우리가 똑같은 방식으로 그 책들을 읽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거기서 삶의 어떤 의미를 찾기를 기대했고, 나를 사로잡은 것은 단어들의 울림과 문장들의 음악성이었다.
같은 책, p.128
하지만
그녀는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영화 ≪버드맨≫에서 리건 톰슨의 무대와 현실, 그리고 몽상의 경계가 완전히 부서졌을 때처럼, 백인 행세를 하던 ≪패싱≫의 클레어의 마지막 그 순간처럼. 그것이 본인의 의지와 동떨어져 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