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그러나 지금 쪽문을 나서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추억으로 변하면서 현실적인 의미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두 해가 지나면 이 모든 다정한 모습들은 마치 환상의 산물이기나 했다는 듯이 그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내가 속한 가정을 멀리하던 시절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멀었던 아버지와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나 엄마를 멀리하던 약 2년을 아빠는 틈만 나면 나를 만나러 내가 살던 회사 기숙사에 오셨다. 그때의 대화들로 인해 이러한 나의 몽상과 고뇌의 발단이 아빠의 DNA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웃음)
어느날은 인간 속성의 '적정 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線)'이라 함은 사실 점들의 연결이 아니라, 즉 1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지점과 다른 지점과의 사이 '구간(區間)'이다. 이는 2차원적일 수도, 3차원적일 수도 있다. 인간의 어떤 속성이든지 타인 또는 체계가 '인정하는 구간'이 있다. 그 구간 안에서 평안하게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히 사는 사람이 있고, 위로든 아래로든 (옆으로든) 그 경계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넘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또 어느날은 '각자의 삶을 카테고리한다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도달한 문장은 '쉽지 않다'였다. 철학적인 질문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 쉽지 않은 복잡한 인생. ≪체호프 단편선≫은 이를 쉽게, 또 친밀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거부하고 분투하고, 멀어짐 속에 가까워짐을 느끼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나와 비슷한, '구간 안에서의' 삶. 체호프는 의사 자격증을 딸 때까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의학 공부를 하는 틈틈이 싸구려 잡지나 신문에 콩트와 유머 단편들을 기고하여 그 시절의 고달픈 풍경을 해학적으로 공유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애달프기보다는 신문 네컷만화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아빠와의 마냥 진지하지만은 않아 웃음이 섞여 있는 그 대화가 떠올랐달까.
2021.06.15.
(새벽 언니와의 1박을 위해 전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