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젊은최양 Mar 02. 2023

이상향을 향한 집착에 대하여

≪암흑의 핵심≫, ≪위대한 개츠비≫, ≪패싱≫

선물받은 넬라 라슨의 ≪패싱≫을 읽고, 이상향을 향한 집착을 보여주는 세 작품 ≪암흑의 핵심≫, ≪위대한 개츠비≫, ≪패싱≫을 비교해보기 위해 글을 쓴다. 이번 글을 위해 가장 오래 전 읽었던 ≪암흑의 핵심≫을 다시 완독했다.



세 책은 모두 저자의 자서전적인 이야기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


1. ≪암흑의 핵심≫ (조셉 콘레드, 1899)

콘래드는 어린 시절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각별한 꿈을 꾼 적이 있으며, 실제로 1890년에 아프리카의 콩고 강에서 기선의 선장이었다. 저자인 콘래드가 자신의 체험담을 이 책의 화자인 말로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2.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1925)

예술혼을 불태우는 진지한 작가는 아니었던 피츠제럴드는 사랑과 젊음, 재산과 여유로운 삶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그 시절 파티를 즐겼던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의 언뜻 볼 수 있는데, 삶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이 책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통해 그대로 나타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스틸컷


3. ≪패싱≫ (넬라 라슨, 1929)

넬라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일찍 인종 차별에 눈을 떴다. 성장한 후에도 환경이 열악해지며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는데, 그 시절 자신을 이 책 속 인물들에 투영해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된다.


1. ≪암흑의 핵심≫

선장으로 취직한 말로가 아프리카 콩고 강 상류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재원 커츠를 찾아 나선다. 식민지를 경영하는 백인들을 관찰하며 커츠가 어떤 사람일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또 결국 직접 만나며 삶의 본질에 대해 깊게 사색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겪는다.


2. ≪위대한 개츠비≫

매일 인싸들을 불러모으는 웨스트에그의 파티광 제이 개츠비를 옆집 남자 닉 캐러웨이가 우정을 쌓으며 관찰한다. 사심없이 순수한 선의로 개츠비를 대하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관찰자 닉 캐러웨이다. 나무위키를 보니 게이설이 있던데 생각치도 못한 의심에 깜짝...ㅎ


넷플릭스 영화 ≪패싱≫ 포스터

3. ≪패싱≫

아이린 레드필드가 클레어 켄드리의 편지를 받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향만으로는 흑인의 피를 물려받았음을 알 수 없어 남편에게조차 백인 행세(white passing)하는 클레어 켄드리를 고향 친구 아이린 레드필드가 불안과 왜인지 모를 질투로 바라본다.


넷플릭스에 영화로도 나왔더라. 참고로 흑백영화다.












관찰 대상 인물은 특정 이상향에 대한 과한 집착을 보인다.


1. ≪암흑의 핵심≫

진정한 죽음 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깨우친다. 커츠는 고통 속에서도 더 많은 상아를 원한다.


나를 구원하겠다구? 상아를 구해 내자는 뜻이겠지. 말 말라구! 나를 구원하겠다니! 내가 당신들을 구원해야만 했는걸. 당신들은 지금 내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거라구. 내가 아프지 않느냐구! 아프다니!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프지 않다구. 그러니 걱정 말라구요. 나는 아직도 내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니까. 그러므로 돌아올 거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거란 말이오. 당신들은 하찮은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나에게 방해가 될밖에. 나는 돌아올 거요.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140



≪암흑의 핵심≫에서는 종종 먼 시야에서의 관찰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최근 엄마와 함께 다시 보았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망원경을 집 쪽으로 향해 보았어.(중략) 그 모든 것들이 망원경을 통해 내 손에 닿을 듯이 가깝게 보였지. 그때 내가 몸을 휙 돌리자 가로장이 없어진 채 남아있던 울타리의 기둥들 중의 하나가 내 망원경 시야 속으로 껑충 들어오더군.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130







2.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랑, 어쩌면 옛 추억 그 자체에 대해 뒤틀린 집착을 보인다. 파티광의 파티는 알고 보니 이스트에그의 화려한 부부, 그중에서도 톰 뷰캐년의 아내이자 어린 아이의 엄마인 데이지 뷰캐년을 위한 통통한 미끼였던 것이다. 개츠비에게 데이지 뷰캐년은 사랑과 추억일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이루지 못한 부와 권세였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3. ≪패싱≫

클레어 켄드리는 스스로 혈통을 거부했음에도 활기 있는 할렘 문화에의 소속감을 갈망한다.


"정말 가고 싶어, 르네. 그것만큼 내가 하고 싶은 게 어디 있겠니.(중략) 초대해 줘서 고마워. 내가 가면 너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네가 여전히 그런 일들에 신경 쓰인다면 말이야."

민음사의 《패싱》 p.45


이에 아이린 레드필드와 그의 남편은 거부감보다 앞서는 동질감에 그녀를 이해하지만, 엮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도 충돌을 못 이겨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건 언제나 두려울 거요. 하지만 그 행동을 멈출 만큼 두렵지는 않은 거지. 그래, 누군들 알겠소."

"그래요, 클레어는 그냥 날 가만 두는 게 낫겠어요. 난 클레어랑 그녀의 더 가난하고 더 검은 형제들의 연결다리가 돼 줄 마음은 없으니까요."

민음사의 《패싱》 p.109




그들의 비이성적인 집착은 시대적 현상이 낳은 결과다. 문학은 이를 담담하게 말한다.


1. ≪암흑의 핵심≫

원주민의 개화라든가 기독교의 전파 같은 것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당시 성행하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대속하려 하던 시대다. 시대 상황에 잠식된 커츠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상아를 찾았고, 그런 모습을 상아에 빚댄 표현이 인상 깊었다.


그건 마치 낡은 상아로 빚어낸 죽음의 조상이 생명력을 얻은 후에 검은 빛의 번쩍이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부동자세의 군중을 향해 위협적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지. 나는 그가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건 마치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공기, 모든 땅, 모든 사람들을 삼키고 싶어하는 듯한 으시시할 정도로 탐욕스런 모습이었어.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136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앏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일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158


2. ≪위대한 개츠비≫

재즈의 시대이자 할렘 르네상스의 시대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사치와 향락이 난무하던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적어도 이 주에 한 번씩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수백미터의 야회용 천막과 갖가지 색깔의 전구를 가져와서 개츠비의 거대한 정원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장식했다. 뷔페 테이블에는 화려한 전채 요리와 양념을 해서 구운 햄, 알록달록한 샐러드, 밀가루를 발라 튀긴 돼지고기, 거무스름한 금빛으로 구운 칠면조 등이 즐비하게 차려져 있었다. 중앙 홀에는 진짜 청동 레일로 장식한 바를 설치해 놓았고, 그 위에는 진과 각종 독주와 코디얼이 가득했다. 코디얼은 워낙 오랫동안 잊혔던 술이라 나이 어린 여자 손님들은 제대로 구별할 수도 없었다.

민음사의 《위대한 개츠비 p.67


흑인들 또한 자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지만, 아직 성숙한 시민의식이 적립되지 않은 시기다.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이라는 책을 읽어 봤나?(중략) 다들 읽어 봐야 할 책이라고. 그 내용인 즉, 만일 우리 백인종이 경계하지 않으면 끝장, 완전히 끝장나버리고 만다는 거야. 모두 과학적인 얘기들이야. 다 증명됐으니까."

민음사의 《위대한 개츠비 p.32


3. ≪패싱≫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시대다. 할렘 지역을 중심으로는 흑인들의 시와 소설, 음악 등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네가 하는 댄스파티에 온다고?"

왜 안 되느냐고 아이린이 물었다.

"그런 남자가 흑인 파티에 가다니 좀 신기한데."

여기는 1927년 뉴욕이고, 수백 명의 휴 웬트워스 같은 백인들이 점점 더 많이 할렘의 행사를 찾고 있다고 아이린이 설명했다.

민음사의 《패싱 p.138



정리해보자면 ≪암흑의 핵심≫, ≪위대한 개츠비≫, ≪패싱≫ 세 작품은 작가의 자서전적 발단을 시작으로 관찰자 시점의 전개, 이상향을 향한 주인공의 집착, 그리고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사회 현상 비판 의식을 공통점으로 말할 수 있다.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심리적 거리는 ≪위대한 개츠비≫의 닉 캐러웨이와 제이 개츠비가 가장 가까운 듯 하고, ≪암흑의 핵심≫의 말로와 커츠가 그다음이다. ≪패싱≫에서의 관찰자 아이린 레드필드는 오히려 클레어 켄드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계하며, 최소한의 공감으로 어떨 때는 애틋하게도 여기나 결국 그녀를 향한 증오심은 결말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이 점이 앞 두 작품과 ≪패싱≫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번역 또한 오래되어서 인지 ≪암흑의 핵심≫이 가장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고전의 묘미는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이기에, 이를 누리기에는 ≪암흑의 핵심≫이 가장 좋았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인생관에 대하여 콘래드의 그것과 같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하니, ≪위대한 개츠비≫를 재밌게 읽었거나 삶의 비극적인 의미와 구원의 환상에 대해 묵상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이 불미로운 행위를 대속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요.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무었이거든.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16



옮길 수 없고말고, 그걸 옮기기는 불가능해. 우리의 일생에서 그 어떤 특정한 시기의 삶에 대한 지각을 옮길 수는 없다구. 그 삶의 진실, 그 의미 그리고 그 오묘하고 꿰뚫는 본질을 구성하는 것 말이네. 그걸 전달하기는 불가능해. 우리는 꿈을 꾸듯이 살고 있으며, 그것도 혼자서.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62



그는 자기 자신의 참된 자질을 가지고서, 즉 자기 자신의 타고난 힘을 가지고서 그 진실을 대면해야 해. 원칙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구? 원칙만으로는 안 되지. 원칙이란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 몸에 걸친 옷이라든가 예쁜 천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몸을 세차게 흔들기만 해도 그 천은 떨어져나가게 되지. 그래서 그런 걸로는 안 되고 사려 깊은 믿음이 필요하게 돼.

민음사의 《암흑의 핵심》 p.83


매거진의 이전글 비전공자가 말하는 미술의 이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