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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최양 Feb 20. 2023

비전공자가 말하는 미술의 이해 #2

그리스 로마와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틴 제국

내가 다시 꺼내보기 위해 적어보는 <비전공자가 말하는 미술의 이해> 두 번째 시간이다. 지난번 시간에는 선사시대의 벽화부터 시작해서 이집트 미술의 정면성 법칙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생동감이 더해졌으며 사실적이지만 과도하게 아름답고 현실적이지는 않은 그리스 미술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로써 도식의 의미만을 담은 예술에서 벗어나 창작자에게 예술 의지와 표현의 욕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추가로, 조각 예술이 성행하던 그리스의 콘트라포스트 자세까지 알아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로마의 미술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틴 제국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로마 미술그리스 미술의 복제라고 생각하면 쉽다. 회화보다는 토목 공학이 발전한 시기다.

판테온(산타 마리아 로톤다) (출처: 조선일보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로마는 아치와 돔 천장, 시멘트를 사용하여 실용적이고 실내가 넓은 새로운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고 이는 후대에 길이 남는 건축물이 되었다. 판테온은 당시 지어진 로마의 신전으로, 이후에는 기독교 교회로 전용된다.

18세기의 판테온의 실내(18세기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 작)


부유한 로마인들은 바닥을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건축물 바닥에 음식을 표현해 넉넉함을 나타내고 싶었던 걸까? 심미적이기 보단 과시용으로 보인다.

폼페이 2세기 지저분한 바닥(출처: 동아일보)


로마가 고대 그리스를 장악한 후 그리스 미술은 수집의 대상이자 복제할 목표가 되었다. 또한, 호화롭던 시절에 맞게 개인을 위한 미술이 생겨나 부유한 시민들은 자신의 초상을 주문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승인했고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공표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초기 기독교 미술이 발전했다. 예수는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을 불러 모았지만, 이후 기독교의 제1세대는 고대의 다신교를 신봉하는 로마인이나 로마 제국 전지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타종교인과도 접촉했고 페르시아의 빛의 신인 미트라스 신앙도 로마로 전파되었다.

이 당시, 앞서 살펴보았던 로마의 원형 신전인 판테온은 기독교 교회로 바뀐다. 그리고 바질리카(basilica)라는 새로운 건축 양식이 등장한다. 바질리카 건축물은 직사각형 모양에 천장이 높아 내부가 넓고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시기부터 건축물에 기독교적 도화를 남기기 시작했으며, 건축물의  모자이크에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성서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은 가장 오래된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로마에 있지만, 현재는 라테란 조약의 채결과 함께 치외법권 상태로 바티칸 시국에 속한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당시 건축물에 남아있는 도화를 보면 인물이 모두 비슷하다 느낄 것이다. 표정도 비슷하고 인체의 비율도 이상하다. 공간감은 없고 평면적이며 아기도 성인의 모습이다. 즉 공간이나 형태 표현이 묘하다. 이는 대상을 보이는 대로 나타내지 않고 도식화했기 때문이다.

도화는 예술로써의 '창작물'이 아닌 성서 인물 중 누구를 표현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단순히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즉, 도화의 인물은 특정한 상징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기호일 뿐이다.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었던 이집트 미술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신성과 상징만 남은 미술은 창작자의 자유도를 빼앗았고, 이에 따라 예술 의지낮아졌다.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출처: 카톨릭신문)

창작자의 사회적 위치 또한 이집트와 비슷해졌다. 누가 그렸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결과물이 특정 대상을 잘 상징하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미술이 종교와 관련이 깊어지며 창작자의 사회적 위치와 예술 의지는 낮아졌지만, 때문에 작품의 성스러움은 배가 된다.

초기 기독교 시대는 감상의 초점이 작품의 형태보다도 빛과 색으로 옮겨진 시대다. 그렇다면, 그리스와 비교했을 때 '형'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라고 말해야 할까? 예술에 대한 판단은 다른 시대가 기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빛과 색이 감상의 초점이었던 기독교 미술을 '고전주의적이지 않다'고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비잔틴 미술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탈리아의 라벤나를 정복하고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을 모자이크로 장식한다. 또한,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궁전을 증축해서 화려하게 장식한다. 주변의 성당은 허물고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지었는데, 이때 고대 건물이나 초기 기독교의 바질리카 양식을 피하여 새로운 형태인 돔 바질리카 양식으로 구현한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출처: BBC News 코리아)


비잔틴의 회화로는 성인을 그린 목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이집트의 미라 초상화의 영향을 받은 이콘화로 목판위에 밀랍 안료로 그리스도, 마리아 그리고 여러 성인을 재현했다.

그리스도 이콘화(출처: 카톨릭신문)


비잔틴 미술은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자 러시아에서 특히 이콘화의 형태로 뿌리를 내리면서 좀더 부드럽고 따뜻한 형태로 발전한다.

블라디미르의 성모(출처: 카톨릭신문)



오늘은 여기까지....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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