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슬퍼하기보다 시작을 응원하는 모습... 침묵 대신 기쁨으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이 노래를 부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1975년 2월, 눈물과 엄숙함이 졸업의 표정이던 시절을 기억하는 내게 2026년 한 중학교의 졸업식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울음 대신 웃음이, 작별 대신 축제가 자리한 이날의 졸업식은 '졸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했다.
1975년 졸업식과 2026년 졸업식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인근 용인 영문중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퇴직 후 지역 사회를 위해 학교운영위원으로 봉사한 지도 어느덧 3년째다. 하지만 올해 졸업식은 유독 마음에 깊이 남는다. 김영신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축사에 이어, 나는 '아름다운 매듭과 눈부신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의 앞날을 응원했다.
단상을 내려와 마주한 풍경은 환갑을 넘긴 내게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후배 댄스팀이 무대에 오르자 강당의 공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아이돌 못지않게 정교하고 절도 있는 동작, 조명 아래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엄숙했던 식장의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어 놓았다. 합을 맞춘 발소리가 강당 바닥을 울릴 때마다 학생들은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보냈고, 무대 위와 아래는 이미 하나의 축제가 되어 있었다.
▲이별의 그늘 대신, 아름다운 매듭으로. ⓒ dendrolago89 on Unsplash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무대를 즐기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이제 졸업은 억지로 눈물을 삼켜야 하는 '슬픈 이별'의 의식이 아니라, 성장을 증명하고 만끽하는 '자유로운 축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졸업생들의 눈빛에는 이별의 그늘 대신, 스스로 완성한 '아름다운 매듭'에 대한 자부심이 당당히 빛나고 있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졸업식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졸업식 노래'가 아니었다. 1990년대 대중가요인 015B의 <이젠 안녕>이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리듬을 타며 '떼창'을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에너지에 이끌려 가사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 순간, 51년 전, 나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졸업식이 떠올랐다. 1975년 2월 10일, 코끝이 얼얼하던 추위 속에서 졸업식장은 엄숙함으로 가득했다. 당시 우리에게 졸업식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재학생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며 1절을 부르면, 졸업생인 우리는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라고 2절로 화답했다. 2절 중반쯤 가면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목이 메어 노래가 이어지지 않았고, 검정 고무신이나 투박한 운동화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노라 다짐하던 그 시절,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가슴에 품었다. 그것은 기약 없는 이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애틋한 맹세였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한 지금.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라는 가사는 아이들에게 박물관 속 문장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유행가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웃으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향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다.
슬픔의 자리는 축하로, 침묵의 자리는 기쁨으로
학부모들의 축하 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채우자 강당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슬픔의 자리는 축하로, 침묵의 자리는 기쁨으로 채워졌다. 이별을 슬퍼하기보다 새로운 시작을 요란하게 응원하는 모습. 이것이 오늘의 아이들이 삶의 한 단계를 매듭짓는 방식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 다정한 졸업식 노래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서운함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곡조는 바뀌었지만, '매듭'과 '시작'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5년의 뜨거운 눈물이나, 2026년의 활기찬 '떼창'이나, 결국 정든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바다로 나가는 설렘과 두려움의 변주곡일 뿐이다.
강당을 나서는 아이들의 등 뒤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이 포근히 쏟아졌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라는 애틋한 가사는 들리지 않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에 오늘의 환희를 담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졸업식 노래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섞여, 새로운 시대의 합창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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