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4년차,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해우소'

by 이점록

퇴직 후 어느덧 4년 차, 나는 매일 '퇴직 일기'를 쓰고 있다. 이 문장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내게 일기 쓰기는 자기계발이나,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아니다. 그것은 하루를 정리하고 삶을 다시 세우는 가장 확실한 의식이다.


책상 앞에 앉아 단정한 몇 줄을 적고 나면, 마음 속에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휘발되지만, 종이 위에 안착한 기억은 비로소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된다. 글쓰기가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학술적 설명보다 더 분명한 증거는 내 하루의 상태다. 글을 쓴 날과 쓰지 않은 날의 마음은 분명히 다르다.


마음의 '해우소'


지난 3년간 '문학으로 삶을 읽다'라는 주제로 인생나눔교실 멘토링을 진행해 왔다.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일기를 '해우소(解憂所)'라고 불렀다. 몸에 쌓인 노폐물을 비우듯, 일기는 감정과 정신에 쌓인 묵은 때를 씻어내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일기는 하루의 사건을 정리하는 기록이 아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 삼키고 넘긴 생각, 애써 외면했던 마음을 내려놓는 자리다. 그렇게 비워내고 나면, 삶은 다시 숨 쉴 여백을 얻는다. 누구나 기적을 꿈꾼다. 그러나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계기는 의외로 소박하다. 베스트셀러도, 문학 수업도 아니다. 그저 하루 몇 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꾸준히 써 내려간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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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쓰는 습관. ⓒ hannaholinger on Unsplash관련사진보기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습관은 어떻게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을까. 심리학자 제임스 페네베이커(텍사스대)는 '표현적 글쓰기' 연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글을 쓰는 순간, 불안은 감정에 구조와 의미를 부여한다. 불안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대상이 된다."


막연한 감정은 우리를 압도하지만, 문장이 된 감정은 다룰 수 있다.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글쓰기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현재의 불안과 결핍을 숨김없이 적는다. 둘째, 미래를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면으로, 현재형 문장으로 쓴다. 셋째, 성취 자체보다 그때 느낄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이다.


꾹꾹 눌러쓴 문장의 힘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썼다. 조회수는 많지 않지만, 내 마음은 한결 단단해졌다."


글쓰기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정교한 도면이 된다. 우리는 흔히 기적을 거창한 사건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글쓰기가 가져오는 변화는 조용하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았다고 느끼던 어느 날, 뒤돌아보면 삶의 방향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비장한 결심보다 힘이 센 것은 매일 같은 질문에 답하며 보낸 5분의 기록이었다. 그 작고 꾸준한 시간이 어느덧 삶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오늘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 대신 미래를 정중히 초대한다. 소망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종이 위에 먼저 내려앉아, 시간을 건너 현실이 된다. 기적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스스로 기적을 써 내려가는 시대다. 오늘 당신이 꾹꾹 눌러쓴 한 줄의 문장이, 당신이 꿈꾸던 내일의 문을 여는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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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일기 #인생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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