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예전처럼 밤을 새워도 끄떡없던 체력은 이제 슬그머니 신호를 보내고, 기억도 가끔은 엉뚱한 길로 빠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세월이 지나며 새로 생기는 능력도 있다. 젊을 때는 몰랐고,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능력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며 문득 깨닫는다.
"아, 이것이 있어야 사람이 편안해지는구나."
나이가 들수록 더 편안해지는 사람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첫째, 내려놓는 능력이다
젊을 때는 붙잡는 것이 능력이라고 믿었다. 성과도, 체면도, 관계도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인생은 붙잡을수록 무거워지고, 내려놓을수록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퇴직 후 한동안 마음이 분주했던 적이 있다. 무언가를 계속 이루어야 할 것 같고,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가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어쩌면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둘째, 듣는 능력이다
젊은 시절에는 말이 앞섰다.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야 했고, 옳고 그름을 가려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설득보다 경청에 더 열린다는 사실이다. 요즘 봉사활동을 하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특별한 해결책이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을 본다. 그때 깨닫는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말이 아니라 귀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회의를 진행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먼저 충분히 듣는 것이었다. 간혹 회의가 길어 길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이럴 때 일수록 나는 말을 아꼈다. 위원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끝까지 들은 뒤 정리를 하자, 흩어지던 방향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모였던 기억이 있다.
셋째, 감사하는 능력이다
젊을 때는 늘 부족한 것이 먼저 보였다. 더 올라가야 하고, 더 이루어야 하고, 더 가져야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조금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일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 그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참 귀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감사는 삶의 조건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마음을 바꾼다.
세월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간다. 하지만 동시에 세월만이 줄 수 있는 능력도 남겨 준다. 내려놓는 능력, 듣는 능력, 감사하는 능력 이 세 가지 능력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면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인생이 깊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많은 것이 줄어든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기억력도 가끔은 우리를 배신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은 우리를 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더 깊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인생의 진짜 능력은 젊을 때가 아니라 나이 들수록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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