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통장 잔고보다 든든한 '사람'이라는 밑천
우리는 종종 타인의 평온한 삶을 '운이 좋다'는 말 한 마디로 정리하곤 한다.
"저 사람은 아내 복이 참 많네."
"자식 복이 저 정도는 돼야지."
나 역시 한때는 그렇게 믿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의 삶에 깃든 평화가 부러울 때마다 그 비결을 타고난 '복(福)'에서 찾았다. 그것이 타인의 평온을 시샘 없이 설명해낼 수 있는 가장 쉽고 명쾌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굽이를 몇 번 넘고 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편리한 오해였는지 알게 되었다. 세월의 켜가 쌓인 이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결이 고와지고 형편이 나아지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복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가꾸어 온 사람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불타는 열정이나 개인의 능력, 혹은 예기치 못한 행운이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하지만 60이라는 고개를 넘어서면 인생의 문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누가 더 품격 있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삶을 유지하는가는 의외로 단순한 차이에서 갈린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는 문법이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갈수록 형편이 좋아지는 이들은 대체로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물들인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없고, 상대의 서툰 진심도 끝까지 정성껏 들어주는 넉넉함이 있다. 자신의 과거를 훈장처럼 내세우며 상대를 가르치려 들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나직한 말로 상대의 마음을 먼저 보듬는다.
이런 사람 곁에는 억지로 온기를 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이 모인다. 고난의 파도가 덮쳐올 때, 굳이 손을 내밀지 않아도 기꺼이 곁을 지켜주는 인연들이 나타난다. '사람'이라는 가장 귀한 자산이 그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능력은 출중하나 시간이 갈수록 삶이 고단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원인은 대개 경제적 결핍보다는 '관계의 파산'에 있었다. 말이 거칠어지고 자존심만 앞세우며 타인의 목소리를 밀어내는 순간, 사람은 고립의 섬에 갇히고 만다. 그 고립은 곧 삶의 기회가 끊어지는 단절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경찰관으로 보낸 33년의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인생의 명암을 목격했다. 제복을 벗고 돌아본 인생의 뒤안길에서 가장 든든한 밑천은 통장의 잔고도, 화려했던 직위도 아닌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힘으로 붙들어둘 수 없다. 평소 내가 심고 가꾼 사소한 태도들이 거름이 되어, 내 인생의 숲에 어떤 나무들이 뿌리를 내릴 지 결정하는 법이다. 요즘 나는 거울 앞에 서듯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는 과연 타인에게 편안한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인가.
누군가 다시 차 한잔 나누고 싶어 할 만큼 따스한 사람인가.'
인생 2막의 설계는 거창한 준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마주치는 이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는 것, 상대의 말을 단 1분만 더 묵묵히 들어주는 것. 그 사소한 다정함이 결국 내 노년의 형편을 바꾸는 가장 확실하고도 위대한 투자가 된다.
#인생2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