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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록 Jul 07. 2023

낯선 땅이 아닌 낯선 나였다(1)

 미지의 땅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상상이 현실이 된 동유럽 여행 


  아마도 이번 동유럽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여행다운 여행은 처음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가고 싶은 땅으로 함께 떠나니 설렘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패키지여행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물론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은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그야말로 가족 여행이다. 그동안 여행을 떠나지 못해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자리했었다.   


  출국 수속을 위해 새벽 미명에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내 생각을 편하게 표현을 해본다. '가라고 가랑비가 온다.' 갑작스러운 폭우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도 평소보다 더 멀리 유지했다. 가끔 옆 차량에서 물폭탄처럼 튄 물이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려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이미 낯선 땅으로 떠난 듯 쿵쾅 거린다. 


  미팅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여 담당 가이드를 만났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투어에 필요한 수신기를 받아 들고 몇 가지 안내를 받았다. 트렁크를 먼저 보내고 공항 2층 식당가를 찾았다. 장거리 여행인 만큼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출국 수속을 밟으며 휴대품 검사를 받던 중 손가방에 넣어 둔 화장품이 기내 반입 금지 물품이라 부득이 제한 조치가 되었다. 면도기와 같이 넣으면서 생각을 제대로 못한 나의 불찰이지만 아까운 마음이다.  


  나는 몰랐다. 마일리지 좌석승급이 있겠지만 패키지 여행객은 좌석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다는 사실이다. 체크인을 하면서 우리 가족 4명은 이미 뿔뿔이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것도 창 쪽도 복도 쪽도 아닌 대부분 감금석(?)이다. 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승무원에게 애원하다시피 했다. 해외 가족 여행은 처음이니 같이 앉아 갈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결국 따로 앉아 14시간 정도를 가게 되었다. 일견 항공사의 사정도 이해가 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 그렇게 7박 9일의 가족 여행은 시작되었다. 


7박 9일의 여정이 시작되다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는 13시간 50분이 소요되는 아주 긴 시간이었다. 기내식은 쌈밥 등이 제공되어 나름 맛있게 먹은 기억이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은 후 한 곳에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투숙할 호텔이 있는 체코 소콜로프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함께 여행할 일행은 총 25명으로 가족, 친구, 회사동료 등이었다. 그중 남자는 나를 포함해서 6, 여자는 19명이다.  버스 기사는 폴란드인으로 몸집이 엄청 컸지만 성실하고 친절해 보인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버스로 여러 나라를 투어 하게 된다. 시차는 7시간이다.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다. 독일에서 체코까지 이동하는 차창 밖 농촌은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밀이나 보리, 유채, 감자 등 각종 곡식과 야채들을 번갈아 경작하고, 방목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울창한 숲과 강을 끼고 있는 전원풍경이 즐비하다. 군데군데 대형 바람개비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바로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재생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태양광 패널에 반짝이는 주택의 지붕들도 가끔 보인다. 


  처음엔 어색하고 이해가 안 되는 문화이지만 화장실은 대부분 유료이다. 1유로 아니면 0.5유로를 내야 한다. 그러나 식당, 카페 등 매장을 이용하면 물론 무료이다. 유럽의 화장실은 대부분 유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몇 가지 꿀팁을 적어본다. 투어 출발 전 호텔 화장실을 꼭 다녀오고, 카페나 식당을 이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50센트 동전을 갖고 있으면 좋다. 이 대목에서 화장실이 무료인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저절로 말이 나온다. 단, 유료 화장실의 장점으로는 청결하고 비품이 비치되어 사용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풍력발전기와 휴게소 화장실 영수증

  

  독일에서 국경을 넘어 체코를 넘어갔지만 출입국 심사 등 아무런 절차가 없다. 바로 '솅겐협약' 때문이다. 유럽지역 27개 국가들이 여행과 통행의 편의를 위해 체결한 협약으로서, 솅겐협약 가입국을 여행할 때는 마치 국경이 없는 한 국가를 여행하는 것처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다. 이번 여행국에 포함된 크로아티아도 올 3월에 가입을 한 신생 국가이다.  


  버스로 4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체코 소콜로프 파크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403호에 여장을 풀었다. 화장실에는 욕조가 없고 변기에는 비데가 없다. 화장실 바닥에 물이 빠지는 하수구가 보이지 않는다. 소콜로프 시내의 밤풍경을 느끼지도 못한 채 샤워를 하자마자 쓰러져 잠들기에 바빴다.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첫날밤을 보냈다.    

                


중세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체코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에 잠이 깼다. 호텔에서 빵과 과일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후 호텔 주변 공원을 산책을 했다. 오늘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다.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이다. 수신기를 차고 현지 관광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했다. 맨 먼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는 관문인 '화약탑'에 올랐다. 전체높이는 65m로 프라하 성의 성문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일행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 품앗이를 하면서 점점 낯이 익어갔다. 이제 프라하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낭만의 '카를교'를 즐길 차례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소문난 카를교를 직접 걷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프라하 시내를 흐르는 블타바강에 만들어진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와 성 도미니크 아퀴나스' 석상, '십자가와 갈보리' 석상 등 30개의 바로크 양식의 석상들이 마치 "카를교는 처음이지?" 하면서 반기는 듯하다. 청동으로 만든 소원동상은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악사들의 버스킹 공연과 거리의 화가들도 빠질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레논 벽'도 투어를 했다. 연혁으로는 비틀스의 존 레넌이 암살당했을 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화가와 음악인들이 프라하에 있는 벽에 초상화와 그의 노래 가사와 존 레넌, 평화, 정치투쟁 등과 관련된 그림들로 장식되어 민주화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민주화가 된 이후로 레논 벽은 사회주의 관련 낙서는 없어지고 존 레넌과 비틀스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내용으로 다시 도배되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사진을 찍는데도 혼잡할 정도이다.


  카를교를 되돌아오니 배꼽시계가 대책 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점심은 시내 식당가에서 푹 삶은 쇠고기 안심요리인 '스비치코바'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처음 가보는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볼거리도 흥미롭지만 음식이 입에 맞고 맛있으면 여행도 훨씬 즐겁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현지 음식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은 없다. 여행의 꽃인 먹거리, 설령 입맛에 맞지 않아도 새롭게 경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음식도 여행이니까.


  점심식사 후 도로 위에 깔린 레일 위를 주행하는 노면전차인 '트램'을 타고 이동을 했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체코역사의 중심지 바츨라프 광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프라하 성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물인 '성 비투스 대성당'을 투어 했다. 웅장한 건축양식에 놀라고 창문유리에 그림을 그린 스테인글라스 등 귀한 역사와 예술작품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다음은 매시 정각에 12 사도의 인형이 나와 움직이다 사라지는 천문시계탑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바라보며 운집해 있다. 현지 가이드는 사람이 운집하는 장소일수록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정각이 되자 시계탑 두개의 창이 열리며 사도들이 지나간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사진을 찍는 장관을 연출한다. 그리고 개별 자유시간이 주어져 야누스동상 광장 주변 상가에서 쇼핑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유럽의 3대 야경은 파리, 프라하, 부다페스트라고 한다. 낮보다 밤이 더 매력적인 프라하의 야경 투어는 비가 내리고 기온이 많이 내려가 사진 촬영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빛나는 역사와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프라하의 투어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 묵을 호텔은 'TOP호텔'이다. 규모면에서 어제보다는 크다. 제 229호에 짐을 풀고 몸과 마음도 풀었다.

 카를교와 천문시계탑


동화 속 풍경 같은 아름다움에 젖다.

  3일 차 아침이다. 호텔에서 조식 후 3시간 이동하여 중세시대 느낌이 살아 있는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다. 블타바강 상류 절벽 위에 그림같이 솟아 있는 성, 일명 망토다리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3층으로 된 아치모양의 다리는 무거운 돌기둥으로 버티고 있다. 보헤미안의 진주라는 별명처럼 붉은색 지붕과 유려한 S자의 강물은 체스키크룸로프를 더욱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마을 전체가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스보르노스티 광장으로 향했다. 네모반듯한 광장 주변은 중세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세워진 각양각색의 건물이 정겹게 둘러싸고 있다. 주변 구 시가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과 카페가 가득해 우리 일행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체스키 크룸로프 투어를 마치고 입구 식당가에서 닭고기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후식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데 다른 일행의 한국사람들이 왁자지껄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 옆자리와 뒷자리에 앉았다. 식당 종업원이 착각을 해서 우리에게 또다시 수프를 내어 주다가 '이미 먹었다'는 말을 듣고 웃으며 되가져 간다. 관광지 어딜 가나 한국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값진 추억을 위해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체스키크룸로프


미지의 땅에서 느끼는 새로운 경험에 사뭇 생각도 바뀌는 듯하다. 다만, 짧은 필력으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게 한이다.    

   

다음 일정은 음악의 도시이자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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