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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모 Aug 11. 2023

여행 다녀왔습니다 - 이모

[이모저모세모] 2022년 08월호



여행 다녀왔습니다



[이모] 베트남 사파

2017.12.22-27



어떤 여행지가 가장 기억에 남아?


‘아름다운 여행지’의 검색 결과도, 여전히 ‘좋은 여행이었다’인 여행지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니?’라고 물으면 단연코 1위는 사파다.


힘든 여행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고 누가 그랬나. 그 사람, 맞는 말 했다고 상은 받았는지 모르겠다. 사파가 나의 기억에 남는 여행지 부문 1위에 이름 올린 이유도 바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분명 순위권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 사파가 기억에 남게 되었는지 차차 풀어보겠다.



엥? 사파가 어딘데?


기억을 풀어놓기 전에 사파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파는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라오까이 주의 고산지대(무려 해발 1,650m. 참고로 설악산이 해발 1,708m이다) 마을로, 베트남의 스위스라고 불린다. 이 지역의 깊은 산 속에는 12개의 소수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들은 자연의 지형 그대로 가파른 경사면에 계단식 논을 경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파가 고산지대다보니 산악을 트레킹하며 소수민족과 교류하고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여행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



생소한 여행지인데 어떻게 가게 됐어?


2017년 6월부터 tvN에서 방영된 신서유기4는 베트남에서 촬영했다. 그때 사파를 처음 알게 됐다. 신서유기 팀이 묵은 숙소는 늘 평화로운 뷰를 자랑했고 구름이 숙소 전체를 뒤덮으며 지나갈 때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마지막 미션을 하기 위해 갔던 곳은 말 그대로 구름 위에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아빠가 휴가로 갈 도시의 선택지에 사파를 포함시켰고 만장일치로 사파가 선택됐다. 그렇게 우린 신서유기가 방영된 그해 12월에 사파로 떠났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기억에 남았니?


가기 전 찾아본 사파에 대한 게시글에서 하나같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개고생’. 그런데도 야간 침대 열차나 영상에서 봤던 구름이 발밑에 있는 그 풍경이 보고 싶어서 갔다. 하지만 사람들 후기는 틀린 게 없었다. 힘들었고,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사파가 힘들었던 이유는 세 가지정도 들 수 있다.


사파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았다. 밤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붕 뜬 우리는 공항 한 켠의 작은 숙소(?)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보내는 하룻밤이었다. 하지만 잠만 잘 수 있는 곳이었고 씻는 건 근처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했다. 세면대에서 대충 씻고 머리는 떡진 채로 다녔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해외여행 중에 과제를 했다. 그렇게 힘든 과제는 아니었고 지금은 어떤 과제였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지만, 했던 기억만큼은 생생하고 기록에도 남아있다. 힘든 첫 경험들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체력 거지라는 문제점이었다. 사파는 트레킹이 유명했다. 우리가 트레킹을 한 건 아니었지만, 어딜 가든 등산로와 비슷한 길을 오래 걸어야 했다. 평소에도 등산을 잘 하지 않는 체력 거지인 내가 이런 경험이 기억에 안 남았을 리 없다.


세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내 기준이 관광지로 개발된 여행지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파는 트레킹만 유명했고 정보를 많이 찾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었다.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여행지에 맞춰진 내 기준 덕에 사파는 상대적으로 힘들게 느껴졌다.


그때 여행으로 확실하게 느꼈다. 사람들이 ‘관광’하러 가지 않는 여행지는 이유가 있다.



마냥 힘들기만 했다면 ‘힘든 여행이었다’로 기억에서 지워졌을 수도 있지만, 좋았던 기억도 많아서 사파를 생각하면 오히려 미소가 지어진다. (왜곡된 건가?)


여행 기간은 듣기만 해도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끼고 있었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였다. 앞서 말한 첫 경험과 다른 의미로 특별했다. 크리스마스라서 가는 곳곳마다 반짝반짝한 전구로 꾸며져 있었고 숙소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체크 아웃을 할 때 숙소 주인이 나무 아래에 있는 선물을 하나 집어 가라고 했다.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나는 신나서 선물을 뜯어 봤고 그 안에는 장갑이 들어 있었다. 그분 덕에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두 번째 기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압도되는 자연풍경을 본 것이다. (3,143m의 산) 판시판산은 고산병이 올 수도 있다는 후기가 있을 만큼 높은 산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높은 산에 올라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사진을 다시 봐도 그 감동이 밀려오는데 처음 직접 봤을 땐 풍경에 압도당했다. 압도당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영상을 통해 미리 본 풍경이었지만 직접 보는 건 예상보다 더 큰 감동이었다. 풍경 외에도 당시의 바람, 약간 쌀쌀했던 추위, 내딛던 곳곳마다 내뱉었던 감탄 등 모든 것이 뇌리에 박혔다.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런 높은 곳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는데 케이블카가 구름을 뚫고 갈 땐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역시 자연만큼 대단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기억은 첫 야간 침대 열차를 경험한 것이다. 사실 이때의 첫 야간 침대 열차는 신기했던 느낌과 마치 해리포터의 열차 같던 복도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이후에 유럽에 갔을 때 야간 침대 열차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친구들과 같이 경험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어서 좋았다. 야간 침대 열차보다 더 신기했던 건 야간 침대 버스였다. 침대라기엔 의자가 그냥 눕혀져 있는 좌석이었고, 금세 잠들어버려서 어떻게 도착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결국 힘든 기억뿐만 아니라 좋았던 기억까지 모두 사파에 대한 내 감정을 남다르게 만들어줬다. 힘들었든 좋았든 처음 경험한 것도 많아서인지 약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다.




해당 게시글은 2022년에 쓰인 글로,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게시글을 브런치에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2023년은 홀수 해를 맞이해 홀수달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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