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지역사회의 문화지체

by 레마

시대의 변화와 발전의 속도를 사람의 인식과 정신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괴리를 '문화 지체'라 표현한다. 그리고 때때로 지역사회의 문화 지체를 느낀다. 지역에서 지낸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 넘다 보니 지역사회의 특수성과 폐쇄성이 살갗에 와닿는 때가 많다.


이러한 특성은 지역사회가 좁다는 이유로 원칙과 규칙을 등한시하게 한다. 인정이든 의리든 인간관계든 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만, 엄연한 법치주의 국가에서 특수성과 폐쇄성을 앞세워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불합리함을 '인간적'이라거나 '사람 냄새'로 포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크게 호감을 갖지 않는 나도 인간관계와 인정의 중요성은 깊이 느낀다. 그러나 인정으로 해결할 일과 원칙으로 해결할 일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법과 원칙에 어긋난 것도 인정과 관계의 영역에서는 통용될 수 있으나, 그것이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면 공공선을 위해 서로 단호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 내 인정과 관계를 앞세워 원칙을 흐리고 짬짬이 알음알음 진행되는 수많은 일들의 조각을 보면 신물이 올라온다. 물론 사람인 이상 매 순간 명명백백 원칙을 칼같이 지키며 살기는 어렵겠으나, 그러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것과 '사람과 관계'가 먼저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원칙의 선을 넘나드는 것은 다르다.


원칙은 있으나 원칙을 무시하는 구조가 기능하기 시작하면,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문화가 자리잡는다. 그러니 '문제삼아지지 않기 위해' 원칙이 아닌 관계에 복무하게 된다. 이미 과정상 원칙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기에 그것의 공론화를 피하기 위해 개인의 영향력이나 권력자의 인정에 전전긍긍한다.


지역만의 특수성과 폐쇄성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무작정 열어놓고 개방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지역만의 문화적 자원을 개발한다거나, 지역이라 돈의 규칙에서 조금 멀어져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유연함을 살려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앞세워 규범의 공통성을 손쉽게 저해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늘 문제로 꼽히는 지방자치단체의 외유성 출장, 전례와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시정 가능함에도 손쉽게 무시되는 각종 규범들, 그러면서 동시에 지역에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탁상공론이 오간다.


지역사회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수성이나 가능성이 거대 자본의 칼날에 무력하게 썰려나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경험과 식견이 일천하여 당장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마땅히 바로세울 것을 방치한 채 앞날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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