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키우기 놀이
“엄마, 우리집은 다 누나들 뿐이에요. 저도 남동생 하나 만들어 주세요?”
“형아 있잖아. 형아는 남자잖아.”
“아니, 엄마. 형아는 저랑 놀아주지도 않잖아요.”
“맨날 심부름만 시킨단 말이에요.”
“물 좀 떠와라, 시끄럽게 놀지 말아라, 형아 양말 빨래통에 넣어라, 빨리 자라.”
“잔소리가 엄마보다 더 심하다니까요.”
“빨리 개학해서 기숙사 가버렸으면 좋겠어요.”
누나들만 가득찬 집 막내아들은 사는게 힘들다. 겨우 하나 있는 여동생은 얼마나 기가 센지 같이 놀기가 어렵다.
나이가 한참 많은 형아가 있긴 하지만 놀아주기 보다 야단치는 일이 더 많다. 귀찮게 굴면 바로 들어오는 잔소리는 거의 아빠에 가깝다.
혼자 노는 일에 지치고 무료함이 넘치면 독고 소년은 막대기를 하나 든다.
엄마의 놀이터 텃밭을 향해 심통을 부리는 건지 반항을 하는건지 작살이 시작된다.
밭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감나무가 아들의 막대폭력에 뼈대만 남았다. 그 옆 사과나무도 비켜가지 못하고 추풍낙엽 우수수 떨어지고 그늘 없는 사막 신세다.
동네 분들과 함께 조경수로 심어놓은 남천은 온데간데 없고 옆집 권사님의 귀한 쪽파는 뿌리만 남겨진 채 처참하다.
닭장으로 쓰고 있는 비닐하우스는 군데군데 찢겨 비가 오면 안으로 물이 들어와 닭들이 젖는다.
와~~.
이런 상황이면 엄마는 두손두발 다 들어야 할 판이다.
“여보. 재준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커가는 과정이지 뭐. 남자들은 다 저렇게 커.”
“나는 더 심했어.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면 괜찮아진다니까 너무 걱정마소.”
아니 이 일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놔둘 문제인가 말이야. 남편의 태평한 소리에 한숨이 더 는다.
걱정이 늙어갈 무렵 엄마는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아이의 심심한 시간을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거창한 표현으로 [동물치유] 프로그램이다.
학교에서 준 금붕어를 3년이상 죽이지 않고 키워온 아이다. 또한 고양이 밥이며, 개 밥을 싫다 안하고 잘 준다. 혹 고양이가 다쳐오는 날이면 엄마를 불러 치료해 주어야 한다고 불쌍한 마음도 갖고 있는 아이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거기에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쓴다면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을 메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우리집 정원도 제자리를 찾겠지.
남편을 졸랐다.
“불갑 산속에서 흑염소 키우시는 분 있죠. 그분께 흑염소를 하나 사서 재준이보고 키워보라 합시다.”
“흑염소 아빠가 되게 해주자구요. 그러다 보면 텃밭을 작살내는 일도 줄고 놀이도 되고 흑염소와 교감도 나누고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시작된 재준이의 흑염소 두마리 일지 쓰기 시작. 숫컷은 이름을 검돌이라 지었고 암컷은 검순이라고 지어 주었다.
“재준아. 암컷은 털이 약간 갈색인데 갈순이 어때?”
“아니에요. 엄마. 돌림자 써야 해요. 검돌이 검순이가 좋아요.”
이름까지 지어준 염소 아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나면 바로 흑염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새끼 흑염소 두 마리에게 사료를 주고 물도 갈아준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풀을 뜯어주고 돌봐준다.
흑염소가 집을 뛰쳐나와 돌아다니는 날이면 사료로 유인해서 우리로 들여보내는 일 등 혼자서 제법 아빠노릇을 한다.
옆에서 구경만 하던 여동생.
“엄마, 저도 흑염소 밥 주고 싶어요.”
“그래, 그럼 오빠랑 같이 키울래? 나중에 흑염소가 새끼 나고 많아지면 부자되는데….”
부자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딸은 곧바로 흑염소 풀을 뜯는다.
두 아이는 바로 흑염소 아빠 엄마가 되어 버렸다.
사료를 주고 풀을 뜯어주고 물을 갈아주고, 주말이면 언덕에 풀어놓고 풀을 뜯게 해준다.
잠들기 전 하루도 빼지 않고 흑염소 일지도 쓰며 흑염소의 성장과정을 기록한다.
덕분에 마당 앞 텃밭 채소들이, 나무들이 살았다. 검순이 검돌이가 엄마의 텃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물론 아이는 더없이 만족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