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책은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명랑한 환상에 가미된 우울 한 스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트라우마의 치유, ‘보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책. 2009년 독학재수생 시절, 도서관에서 앞뒤가 같은 7 to 23의 매일을 보낼 때부터 좋아했던 책이다. 아직도 나는 그 책을 졸업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책을 펼치면 기분 좋게 울적해진다는 점이 그 근거다. 졸업이란 아무쪼록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감정이 옅어진 뒤에야 선언할 수 있는게 아닌가.
그 책에는 자신이 어른 답지 못해버리는 순간마다 그만 모자가 되어 버리는 아버지도, 등 뒤에 문이 달려 있어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잠깐씩 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도, 지빠귀가 되어 맘에 안 드는 사람을 콱 물어버리고 싶어하지만 결국 오뚜기적인 광택을 가진 오뚜기로 변해 침묵 속으로 빠져 버리는 무도라는 여성도 등장한다. ‘기조’, ‘무도’와 같은 이상한 이름을 가진 무성별적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책. ‘파씨’라는 이름을 가진 애완동물을 키우다 결국 애완동물에게 키워짐을 당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운명도.
이 책을 발견하게 된 순간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여느 때와 같이 독학 재수생으로서의 자아에 충실하던 어느 날, 무료하고 짜증스러웠던 나는 도서관 열람실을 뛰쳐나와 소설 칸을 무작정 뒤적였다. 목적은 단 하나, 여주인공에 대한 ‘외모적 묘사’가 없는 소설을 찾는 거였고 거의 2시간동안 헤맨 끝에 찾은 게 이 책이었다. 그 뒤로 이 책을 들고 다니며 거의 외울 정도로 책 속에 수록된 모든 단편을 다 헤집듯 읽었던 시절을 지나왔다. 제일 좋아하는 책과 그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황정은을 말하면 ‘황정음이요?’ 라는 질문을 되받던 때였는데, 그 뒤로 세월이 흐르며 그는 나의 은밀한 취향이라고는 도무지 말할 수 없을 만큼 유명하고 대단한 소설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계속해서 나오는 신작에 외모 묘사는 없다. 그 이유때문만은 아니지만 여전히, 좋다.
내가 좋아하는 향은 생화 향, 뿌리는 순간 뽀송함이 콧잔등에 앉을 만큼 파우더리한 클린 소프 향, 그리고 매캐함이 덜한 머스크 향. 이 세 가지 향을 가진 페브릭퍼퓸을 사서 코트나 이너에 뿌린 뒤 옷장에 넣는다. 최근에는 베르가못과 샌달우드의 조화도 좋아졌다. 코가 싸해질만큼 숲스러운 향이다. 희녹 룸 스프레이, 그리고 인센스를 피우면 나는 절간 향기.
전형적인 장미향도 좋아한다. 장미향 같은 것이 내 몸을 늘 감싸고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샤워코롱이나 바디워시는 로즈향이 나는 것으로 고르고, 몸에는 향긋하고 달달한 수지샐몬을 뿌린다. 좋아하는 향수는 그랑핸즈의 수지샐몬, 구찌 블룸과 뱀부, 웬만하면 플라워리한 것들이다. 요새는 손목과 귀 뒤에 엑스니힐로의 러스트 인 파라다이스를 뿌린다.
손에서는 우디향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 논픽션의 젠틀나잇 핸드워시로 손을 씻고 탬버린즈의 누드에이치앤드크림을 바른다. 향에 대한 취향이 있는 사람이 좋고, 나와 다른 취향으로 좋은 향을 풍기는 사람이 좋다. 체향을 맡는 것도 좋아하고, 건조기에는 섬유유연제를 풍부하게 넣는다.
깨끗한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를 좋아하고, 골목길을 지나갈 때 맡았던 한약 냄새를 좋아한다. 엄마가 팔팔 끓여주는 닭죽 냄새, 가을에서 갑자기 겨울로 넘어갔을 때 출근길에 맡는 첫 겨울 향기도 좋아한다. 밤이 되면 더 잔잔하게 멀리까지 풍기는 라일락 냄새.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 나는 향기. 영등포구청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할 때 나는 동그란 번의 향기. 그리고 바닷가를 달릴 때 들이마시는, 소금기 가득한 버석하게 짠 향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격은 다정하지만 무던한, 하지만 좋아하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기꺼이 행동하는 성격. 좋아하는 일을 부러 찾아서 하는 성격. 좋아하는 일에 대해 호들갑을 떨 줄 아는 성격. 그렇기에 화끈하지만, 자신과 상대가 타 버릴 만큼 불길이 세졌을 때는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줄 아는 성격을 좋아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성격, 넓어질 구석이 많이 있는 큰 그릇의 성격.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숫자는 33. 천계영의 ‘DVD’라는 만화책에서 땀이가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세레니티와 로즈쿼츠, 또는 분홍이 되기 시작하는 때의 하늘 색깔. 이 두 색깔은 2016년의 팬톤 컬러였고 아직도 그 때 컬러칩을 대 보면서 바라본 저녁 하늘을 기억한다. 하늘색의 끝과 분홍색의 끝이 완벽하게 이어진 하늘. 어쩔 수 없이 노을이 질 때면 항상 폰 카메라를 켜게 되고 이것은 나이를 더 먹어서도 계속될 것이다. 노을은 매일같이 오는 것이지만 매일 색깔이 미묘하게 다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민할 때, 한 노부부가 해변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뭔가를 깨닫는 장면이 있다.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고 할머니가 말하자, 할아버지가 조금 더 있자고, 이제 곧 노을 질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You and your pink sky’라고,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난하게 사랑스러워 해온 데서 오는 표정이었다. 주는 것 없지만 그저 좋은 것, 그것을 못 말리게 좋아할 줄 아는 것. 그리고 매일같이 그 일상을 반복해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것. 하루에 노을 지는 시간은 딱 한 순간이고 그 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노을 색깔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인트로부터 느껴지는 음악. 보통은 듣는 순간 느낌이 온다, ‘틀림없이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라는 예감이. 90프로는 비트가 감각적이거나 그루브가 있는 노래이고 나머지 10프로는 멜로디의 진행이 독특하거나 키보드톤이 예쁜 노래다. 장르로 따지면 가장 좋아하는 건 일렉트로니카, 그 다음이 시티팝, 그리고 재즈/얼터너티브 재즈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은 다프트펑크, 인생 노래는 something about us와 comet blue의 spaceship. 후자를 발견했을 때에는 이 노래를 찾기 위해 살아 있었나봐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 노래는 음악적인 부분 뿐 아니라 가사까지 내 취향에 완전하게 부합했기 때문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의 전자음과 심장 박동처럼 강렬한 그루브를 좋아한다. Something about us는 단조, Spaceship은 장조로 된 노래인데 둘 중에서는 단조를 더 좋아한다. 장조의 음악은 좋아하는 것을 향해 희망의 감성으로 환호하는 느낌이라면, 단조의 음악에는 ‘어찌할 줄 모르는데 하릴없이 빠져드는’ 절벽의 기운이 있다. 후자의 느낌에서 오는 절절함이 좋다.
온 몸으로 듣는 음악을 좋아한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귓속으로 음악을 집중해서 협소하게 흘려 넣는 기분이 드는데, LP바나 합주실, 차 안에서 심장박동과 비트가 헷갈릴 만큼 크게 음악을 들으면 사방에서 반사된 음표들이 몸 전체에 빈틈없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특히 합주실 또는 무대 위에서 공연하면서 듣는 음악은 중독적이다. 음악은 감각을 끝단까지 가져가기 위해 향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물 속에서 음악을 듣게 된 것은 내 음악 향유 라이프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음악 취향이 맞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일렉트로니카와 시티팝일 뿐이지 나는 장르에 대해 대식하는 편이다.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듣는가 하면 갑자기 바흐의 평균율을 듣기도 하고, 80년대 미국 디스코에 빠져있기도 하면서 재즈힙합을 듣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실 취향이 맞기는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만큼 호들갑스럽게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