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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Jun 17. 2021

지구온난화

인생에는 다음이란 없다

-Don't fall asleep

-I'm not sleeping. I'm 'contemplating'

-'contemplating'... hahaha. about what?

-about the earth.

-...(that's ridiculous)

-have you heard about such a thing that's called     
   global warming?



취한 나는 종종 안 취한 내가 기억해내지 못할 말들을 술김에 하곤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영어로 말할때 취한 내 자아는 지구온난화에 집착하는가 보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날 새벽 어스름 계단에 나란히 앉아 택시를 기다리는데 취해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나는 잠들기 직전이었고 잠들지 말라는 말에 난 자는게 아니라 명상하는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는게 아니구 '명상'하고 있어..지구에 대해. '지구온난화'라는 현상이란 거 들어본 적 있어?


아주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선 아직도 회자되는 에피소드다. 시끄러운 음악이 들려오는 거리에 즐비한 술집과 술 취해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풍경속에서 지구온난화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난데없는 등장은 참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한번은 투발루라는 아주 작은 섬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가라앉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데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린 일도 있다. 왜 갑자기 투발루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유는 알수 없으나 그 투정부린 정서만큼은 참 친숙하다. 내 어렸을 때의 자아가 부조리에 저항했던 방식이 취한 김에 튀어나온 거다.


아주 어린 시절, 주말 저녁이면 부모님과 함께 지역회관에서 1000원에 상영하는 철지난 영화를 보곤 했다. 7살 때였을까? 나치의 횡포 속에서 죽어가는 유태인 부자의 비극을 그린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역작을 본 일이 있다.

 그날 나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나버린 스크린 앞에서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화가 나서 울면서 왜 저렇게 끝나야 하느냐고 엄마한테 지겹도록 징징댔고 엄마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서 야단치며 했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저건 원래 저렇게 끝나는 영화야'


원래 저렇게 끝나기 때문에 저렇게 끝나야 한다니. 더 화가 나서 앞 좌석을 발로 차면서 울어버렸던 창피한 어린 시절의 삽화로 남아있지만 그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해 어린 내가 나름대로 택한 방식이었던 거다.



아주 작은 섬나라인 투발루는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50년 뒤면 지구에서 영원히 종적을 감춘다고 한다. 영토를 포기하고 국민 모두가 국제 난민으로 등록하면 다른 나라로 이민하여 살 수 있으리란 희망에 그들은 모두 영토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 난민'이 아닌, 세계 최초로 탄생한 '기후재해에 의한 난민'이다. 기후재해에 의한 난민에 대한 내용은 국제법상 아직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호주에서는 이미 이들이 이민하여 오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선언했다. 결국 50년 뒤 투발루는 영원히 이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던가. 삶의 터전이 모두 물 속으로 사라진다니.


지도에서 한 국가가 종적을 감춘다는 그 개념 자체?

사람들이 몸담고 살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현재 투발루의 모습과, 50년뒤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저 광활한 바다만 남아있을 '모든 것이 끝난 뒤'의 미래의 투발루의 모습을 분리해서 각각 따로 생각해보면 상상이 될듯도 했다.


하지만 그 두개의 극단적인 현상들을 연결해 줄 50년이라는 세월의 '과정'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50년 동안의 그 가라앉는 과정은 어떠할 것인가. 사람들은 태어나고 또 죽어갈텐데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의 영토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 땅에도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 아이들에게도 모두 투정부릴 부모님이 있을 터인데. 그들이 부모님에게 왜 우리 땅은 가라앉고 있느냐고, 왜 우리의 일상은 가라앉는 물과 투쟁하는 것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왜 우리 나라는 몇년 내에 사라져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부모님들은 뭐라고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원래 가라앉아 사라져야 하는 나라야'



독도는 우리나라 영토임에도 상당히 가기 힘들다고 한다. 독도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나는, 인생에 '다음'이란 없다는 걸 이제야 아는 나는, 투발루에 함께 가자고 말할 것이다.

 미래의 어느 한 순간. 너무 익숙해져서 마땅히 느껴야 할 더러움도 느끼지 못하게 된 음주와 유흥의 신촌 거리 위에서. 계단에 나란히 앉아 택시를 기다리면서, 새벽의 찬 공기를 함께 맞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정신을 차리니 마치 당연한 일이듯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면.


투발루에 함께 가자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난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투발루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투발루가 영원히 우주에서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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