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일 Jun 17. 2021

잔술

아무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맑은 국물의 짬뽕탕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귀 언저리보다 다리가 먼저 시려올 무렵이 되면 잔술을 데워 마시는 일이 그렇게 좋았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알콜 향기를 맡고 있자면 캘리포니아 닥와일러 해변의 가을밤 캠프파이어도 떠오르고, 성탄 무렵 벽난로를 쬐며 덮었던 극세사 담요도 떠올랐다. 목소리도 눈빛도 정서도 온통 다정했다.


사람이 사람을 끝내 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우주에서 나 혼자만이 아는 그 사람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허허로운 믿음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그 날의 정서가 그랬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그 이야기에까지 가 닿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의 병환으로 인해 태어나 처음 가져본 꿈을 저버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리듬체조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선천적인 혹은 아무도 알지 못할 이유로 걸린 병 때문에 그만 두어야만 했다고. 의사 선생님은 그 알지 못할 이유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어쩜 어릴 때부터 배운 리듬체조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했을 것이다. 동정받기 위한 이야기로 사용하기에는 이 레퍼토리를 이미 많이 써먹었으니까. 병환의 발견이라는 불운에서 시작해서 꿈의 좌절, 불가피했던 수술과 그것의 극복에 이르는 이야기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삶에서 터닝포인트로 의미부여하기 좋은 일화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불운을 백일장 장원, 짧은 동기부여 스피치 등의 재료로 전환시킬 만큼 영악했다. 그러므로 아무렇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마음도 아니고, 그냥 수백 번 우려낸 사골국을 대하는 숟가락처럼 밋밋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상했다. L의 눈에서 안쓰러움의 정서가 스쳐간 순간 발끈해버리고 말았다. 안쓰러워 할 필요 없다고, 나는 괜찮으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싫었다, 누군가 나를 안쓰러이 여기는 것이. 왜 그랬을까.


-


대학교 때도 겨울이 오면 의례적으로 늘 데운 잔술을 마셨다. 반지하의 오뎅바나, 마주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보아야만 하는 이자카야에서. 사락사락 눈 내리는 창밖 추위를 응시하며 양손에 따뜻한 술잔의 온기를 느끼는 감성이 좋았다. 향기만으로도 녹아내리며 취기가 오르는 노곤함이, 필요했다.


문득 기억나는 건 마지막 학기의 송년회였다. 그날따라 늘 모이던 인원이 아닌 이상한 조합으로, 이 그룹에서 몇명 저 그룹에서 몇명 하는 식으로 모였던 것 같다.

살짝 얼어있던 입들은 잔술과 함께 금세 녹아내렸다.


모두에게 힘든 겨울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대부분의 우리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이란 노래 속 가사를 살아내곤 했으니.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날 서로의 불운과 불행을 자랑처럼 꺼내놓을 수 있었다. 한 친구는 가세가 기울어 오래 준비하던 고시를 중단하고 구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취직에서 계속 낙방해 온 다른 친구는 취업 시장에서 우리 전공이 갖는 입지에 대해 자조적인 평가를 내렸다.


끝나버린 연애에 대해, 폭력적이었던 과거 관계에 대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상실의 경험에 대해 돌아가며 털어놓았다. 서로의 서사에 대해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잔술을 한 잔 마시고 각자의 서사를 꺼내 보여주었다.


기묘하게도 불행을 자랑하는 대회같은 자리가 되었지만 그 날만큼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했던 자리는 그 뒤로 없었다. 타인의 불운한 고백을 들어버린 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추기 위한 자기고백도, 동정심이든 감동이든 특정한 감정을 불러내기 위한 경험의 위악적 서사화도 아니었다. 바깥의 추위를 보며 한 잔만큼 데워진 온기를 짠, 하고 마시는 정도의, 거리를 둔 다정함. 우리는 서로에게 적당히 따뜻하고 서로로부터 적당히 멀리 있었다.


그렇게 되길 바랐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그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지 않았나.



잘 아는 타인들의 눈빛이 일시적으로 다정해지는 순간은 나를 쉽게 헐게 만든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쉽게 울지 않을 수 있다.


잔술을 한 잔 하고 털어놓을 것이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을 때까지. 딱 그 만큼의 다정함으로.



우주에 둘만 남았다는 허허로운 하룻밤짜리 믿음을 유일한 것처럼 믿으며

사락사락 눈 덮이는 소리가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온난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