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 Piazzolla, Invierno Porteño
마지막 당직 근무를 서던 소서(小暑)의 밤, 불을 끄러 나온 복도에 청개구리가 나타났다. 허리를 굽혀 손을 건네보았다. 그림자의 반대편으로 개구리는 뛰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진화한 지 얼마 안 된 개구리는 제 몸을 신기해하기도 전에 낙법부터 익혔으리라. 아주 멀리 뛰면 인공의 빛과 신기루 같은 대리석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나는 돌아서서 종이컵을 들고 나왔다. 그새 그 조그만 생명은 몇 번을 뛰어, 내 걸음 하나만큼을 멀어져갔다. 배가 쓸리지 않게 컵을 뉘여 담았다. 먼지를 잔뜩 덮어쓴 채로, 개구리는 좁아지고 높아진 세상에 숨을 죽였다. 기다리는 듯했다. 그곳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인지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이 청개구리가 거미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샬롯처럼 착한 거미도 먹을거리는 필요하니까. 세상은 그 누구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 없을 욕심으로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컵 구석에 웅크린 이 어린 녀석이 시련을 헤치고 어엿하게 자라길 바랐다. 언젠가 잘 커서 거미를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겠지. 알고 있다. 상처를 준다는 걸 몰라서 그의 편을 드는 게 아니다. 단지 녀석을 좋아해서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때론 비겁하게 도망도 쳤다.
종이컵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쪽빛 주단이 깔린 길 위로 풀벌레 소리가 고왔다. 서풍을 따라 걸었다. 철조망 너머로 간간히 고라니 울음이 들렸다. 논밭이 펼쳐진 바깥은 저녁나절의 벼락같은 소나기로 부드러웠다. 여름이 가면 기진한 날도, 적적한 날도 추억이겠지. 이 순간을 더 사랑할 수 있길 바랐다. 단 한 번이라도 여름을 우러러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갈라지는 햇살에 덩달아 메말랐었다. 두둥실 펼쳐진 하늘에 대고 그것은 가을처럼 높지도, 겨울처럼 맑지도 않다며 조소했다. 하지만 내가 두 발 딛은 골짜기에서 여름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할미꽃이 죽은 자리에는 달맞이꽃이 웃자랐고, 울창한 플라타너스에 기대어 쉬면 꾀꼬리가 가지에서 놀다 갔다. 나는 아껴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 장난을 치고, 예고 없는 장대비에 웅덩이를 구르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논은 햇살이 따가워도 소나기의 추억을 잊지 않는다. 추억을 잊지 않으면 쉽사리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살며시 여름에 말을 걸었다.
- 여름 씨, 올해는 내가 심신이 미약해서 너를 예뻐하기 어려운가 보다. 우리 올해만 서로한테 말 걸지 말기로 하자. 말없는 대신 훌쩍 자라서 내년에는 꼭 너를 커다랗게 좋아할게.
아늑한 기분으로 언덕을 올라 벤치에 앉았다. 개구리는 미동도 없이 전방을 주시했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녀석은 이내 떠날 것이다. 풀이 우거지고 흙이 질펀한 곳에서 이슬처럼 아침을 맞을 거다.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여덟쯤 세었을까, 아직은 있겠지 싶어 다시 가보았다. 빈 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가지고 돌아갔다.
사무실에 도착해 사관님께 배턴을 넘겼다. 조심스레 문 닫히는 소리를 곁눈질하며 오디오의 전원을 켰다. 이즈음이면 늘 비슷한 시나리오를 읊는 새벽마을이라는 라디오가 나온다. 이상우의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이 흐르고 있었다.
이상우,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조그만 바에서 공연하며, 아버지 모시고 노래방에서, 작업이 끝난 새벽녘의 귀로에서 듣고 부르던 곡이다. 등받이가 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기대했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그 기대를 내년의 나에게로 길어올린다. 주홍의 필라멘트와 짙은 습기로 어둑한 보헤미안 선술집에서 밤을 지새는 이방인처럼 우수에 잠겨 다리를 포갰다.
곡이 끝나고 가벼운 톤의 성우가 신청자에게 위로를 건넸다. 난 당직사관이 들어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볼륨을 낮추고, 다음 신청곡을 기다렸다. 성우는 숨을 고르며 사연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새벽지기님, 안녕하세요. 늘 듣기만 하다가, 용기내어 글을 적어보네요. 날이 많이 덥죠. 한여름이에요. 정신없이 보내면 지나가겠지 싶으면서도, 여름이 가면 한 해의 끝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섭섭해요. 여름은 더딘 듯 무심하게 가네요. 지금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데, 조금 지쳤나 봐요. 마음이 자꾸 멈추라고 해요. 누구나 저처럼 흔들리는 순간이 있겠죠? 다 나름대로 붙들고 달래며 사는 거겠죠.
오늘은 도서관이 쉰다는 핑계로 집에서 뒹굴고 있어요. 도서관이 쉬는 날이면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어요. 한때 사계를 함께한 사람. "초록이 드리워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의 편지에 든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알고 있겠죠. 우리는 끝을 맺어야 해요. 하지만 제 마음이 공허해지는 밤마다 늘 그 사람을 생각해요. 설혹 그게 한밤의 장난이래도, 다음날 아침의 냉소를 두려워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전 일기장의 귀퉁이를 오려서 여기 보내요. 여름이 좋아지려면 당신이 있어야 해요.
'새벽마을' 덕분에 제 마음을 잠시 두었다 가네요. 감사드려요. 모든 청취자 분들의 어리숙한 밤을 응원하며, 브레드의 「If」를 신청합니다. 이 글은 삽시도에서, 다섯과 이분의 일의 소녀가 보내요.
2023. 7. 6. 91.8 FM 새벽마을 밤산책
Bread, If
난 너무 놀라 한참을 휘둥그레 멎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해질녘의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찰나를 기다리는 사진작가가 떠오른다며, 나는 이 곡을 그녀에게 소개했었다. 나 역시도 널 그려낼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린 양화(陽畵)처럼 각색되지 않는 추억만 남기자고 이야기했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고, 운명이라 믿었던 사람. 수줍음 많고 차분한 삽시도의 스물넷 소녀. 난 그 소녀를 5년 전에 처음 만났고, 만나서부터 사랑했으며, 비록 헤어졌지만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귓전에서 혈맥의 고동이 울리고, 마음이 착잡하면서도 설레진다. 유설아였다.
- 한밤에 라디오? 니 눈 안 붙여도 되나.
바로 옆에 당직사관님이 서 계셨다.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 죄송합니다. 끄겠습니다.
- 아이다. 듣고 싶음 들으래이. 내 화장실 갔다오께.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홀로 되는 동안, 음악은 끝이 났다. 급하게 방송 좌표와 시간을 기록했다. 사연의 주인공이 설아라는 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헤어지고 나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 심지어 그녀가 받았다는 편지에 적힌 글은 자작곡 '할미꽃'의 가사를 차용했는데, 난 그 노래를 설아와 헤어지고 만들었을뿐더러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원문과 다르다. 내 가사가 원문이라면, '우리 다시 만나게 될까, 초록이 드리우면'이어야 한다. 글쎄, 그새 설아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고, 공교롭게 그 사람의 글이 나와 겹치는 부분이 생긴 건가? 하필? 하지만 그럴 수 있다. 내게 이별은 무척 길고 어려웠지만, 그녀에겐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난 매일 그녀를 온전히 보내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실패했다. 내게 이별이란 늘 공세(攻勢)였으니, 나의 수세(守勢)는 빈약했다. 설아라면 빈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그녀는 내게 헤어짐의 소회를 담은 소포를 보냈다. 그 안에는 내가 라일락 그늘에 둔 테이프와 그녀의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설아는 그것으로 나와의 인연을 매듭짓고, 더는 이별의 공세에 당하지 않고,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기막힌 우연으로 그 사람이 생각해낸 두 줄이 나와 같았다면. 내가 그랬듯 낭만적인 문장들로 설아의 마음을 얻었다면. 그래, 화는 나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더는 그녀와 관련이 없다. 이별이란 이제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다 다른 끝을 맞이하자는 슬픈 합의를 인정하는 일이고, 성숙이란 그 합의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날, 밤이 너무 길어 난 잠들기를 잊어버렸다.
*"3. 여름이 좋아지려면 당신이 있어야 해요(부제: 그늘을 조용히)"는 "2. 낭만적 작가주의"에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2. 낭만적 작가주의 https://brunch.co.kr/brunchbook/romanauteuri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