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새까만 밤에 파도가 짖어댄다. 나는 신발 뒤축에 담뱃불을 지진다. 불똥이 별무리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더운 바람이 분다. 모래를 쥐어 보지만, 잘 잡히지 않는다. 주변이 웅웅거리고 비가 온다. 시야가 뿌옇다. 열린 문 안쪽으로 사람들이 모여 잔을 부딪친다. 브루흐의「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테라스 곳곳을 파고든다. 박차고 나가고 싶다. 벽지에 돌개바람이 굳은 듯한 소용돌이 문양이 얽히고설켜 있다.
어느새 날이 개어 나는 걷고 있다. 온화한 바다 위로 파도의 날개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가슴에 자꾸만 무언가 얹힌다. 휴대폰에는 연락이 여럿 찍혀 있다. 설아에게 보낸 것 같다. 짧은 답장이 와 있지만, 무어라 적혀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모래 먼지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고인다. 눈을 비비며 쏟아지는 햇살에 몸을 맡긴다. 물결에 두 짝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저 멀리서 나를 알아본 소녀가 다가온다. 새파란 니트에 흰 치마가 하늘하늘하다. 내가 알던 그대로의 얼굴이 아니다. 마치 그동안 스쳐보낸, 혹은 넘겨보낸 무수한 인연의 가능성까지 합쳐진 것처럼, 그 누구보다 내게 아름다운 사람이 곁으로 온다. 말없이 함께 걷는다. 말하지 않아도 갑갑하지 않다. 우린 현재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만을 사랑한다고. 문득 혼란스럽다. 나는 그간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다. 내가 알 수 없던 순간들이 적(敵)으로 남았다. 그렇게 유설아를 잃었다.
그녀는 맑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내게 무언가 물으려 한다. 희미하다.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다. 말하고 싶다. 말하지 않는 건 아무래도 바보같다. 맘껏 웃어젖히고 싶다. 내 입은 감각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설아, 여름, 겨울, 다시 봄, 가을. 찻잔의 맑은 울림, 모래를 짚는 사뿐한 걸음, 편안한 정적, 그 미소. 난 이 모든 걸 기억한다. 좋다. 머물 수 없지만. 지나치고 싶지 않다. 나는 네가 그리웠다. 너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나의 마음을 읽어 주길 바랐다. 치기 어리고 볼품없는 내가 괴로웠다. 그런데 넌 지금 내 곁에 있다. 모든 걸 안다는 듯이 곁으로 와 주었다. 너보다 나를 더 이해하려 한다. 네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행복하다.
별안간 글자들이 떠온다. 변하지 않은, 그래서 달라진 설아의 모습에 비수가 꽂힌다. 나는 파고든다. 일순간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그녀를 구해야 한다. 태풍이 이는 것처럼 주위가 아득해지고, 붙잡기도 전에 사라져간다. 나는 헤엄치기 시작한다. 내 버둥에는 동작도, 분노도 없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언젠가 한 번은 느꼈던 상실의 표징이다. 몹시 두려워진다. 별들이 자취를 감춘 곳, 태풍이 지나간 백야가 떠오른다. 그곳은 늘 아스라했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난 누굴 그렇게 간절하게 찾았던 걸까. 망각의 늪 너머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익숙한 음악이 저 멀리서부터 떠내려온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다음 문장을 알 수 있다.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눈을 떴다. 알람을 멈추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에서 소금 냄새가 났다. 꿈 속에서, 파도는 햇살에 가득히 젖어 있었다.
Jean Cocteau, Mon oreille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모처럼 아침도 먹었다. 엄마는 군대 가더니 일찍 일어난다며 좋아하셨다. 활기차게 웃고 떠들었다. 간밤의 꿈은 으레 그렇듯 설아에 관한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그녀의 사연을 들은 후로 더 자주 꿈에 설아가 나왔다. 이젠 익숙하다. 난 그녀를 잊지 못했다. 잊는 것보다 잃는 것이 늘 더 쉬웠다.
날이 맑고 하늘은 구김없었다. 막다른 정류장에서 순환버스를 탔다. 버스는 느릿한 소음을 뿜으며 서울로 향했다. 나는 왼쪽 구석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며 「패터슨」의 버스 기사 주인공을 생각했다. 그는 오늘도 에스컬레이터처럼 흘러오는 오후의 탑승객들을 안내할 것이다. 그들의 소곤거림에 귀 기울일 것이다. 막막함을 덜어내려 되뇔 것이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휴가 나온 군인은 한량없이 투박하다. 사회에 특별함을 느낄수록 군인 티가 난다. 지난 휴가에는 친구들을 내리 만나며 술을 마셨다. 그 전에는 전시회에 가거나, 영화관에 매일 출석하는 등 안 하던 짓을 했다. 즐거웠지만, 그래봐야 매여 있는 신세라는 게 맘에 걸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군대식 반문(反問)이나 모자의 챙을 구부리는 버릇에도 진력이 났다. 브후밀 흐라발의 변증법을 빌려, 나의 욕망은 "미래로의 전진(progressus ad futurum)"과 "근원으로의 후퇴(regressus ad originem)"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휴가, 그전의 휴가들로 움직인 욕망의 좌표를 찾아내 원점으로 돌려놓을 때다.
11시 35분, 예상보다 일찍 터미널에 도착했다. 매표소 근처에 전투모를 눌러쓴 신참들이 도열해 있었다. 첫 휴가를 받은 모양이었다. 오묘한 기분으로 표를 끊고, 승차장 앞의 먼지 쌓인 의자에 앉았다. 11시 55분, 동서울발 속초행 시외버스였다. 효성이에게 전화가 왔다. 말년 휴가는 즐겁게 보내고 있냐며, 그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말했다. 녀석은 일찌감치 전역해서 4학년이 되어 있었다. 소심한 듯 보이면서도 종종 번뜩이는 재치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룸메이트 손효성을 나는 아낀다. 그는 내게 계획을 물었다.
- 낭만을 찾아 떠난다.
- 오, 어디로?
- 동해 바다로.
- 자고 오냐?
- 아니, 밤에 다시 와야지. 돈 없어.
- 그렇구만. 잘 다녀와라.
그는 무엇이든 자세히 묻는 법이 없었다. 그 무관심은 역설적이게도 효성이를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출발 시각이 되어 전화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교량을 넘어 서둘러 도심을 벗어났다. 야트막한 산촌이 그려진 창밖을 바라봤다. 버스는 한계령을 넘고 삼척을 지나 속초에 닿았다.
7월의 어느 평범한 화요일 오후,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나처럼 기분을 좇아 불쑥 떠나온 사람도 있을까? 그렇담 웬만한 각오 없이는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팽팽한 속초의 여름은 서울의 여느 거리보다 훨씬 덥다. 나는 그 화통(火筒)이 아찔했다. 곧장 택시를 타고 시장으로 길을 잡았다. 시원한 곳에서 국수라도 한 그릇 먹으면 계획이 서지 싶었다. 주차장 옆길에 내려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방학이라 그런지 바캉스 차림의 젊은이들이 보였다. 나는 속초에 오면 늘상 찾던 닭강정 골목 입구의 분식집에 주저앉았다.
- 이모, 여기 국수 한 그릇에 어묵 3개 사발로 주세요.
속초 중앙시장에 간다면 닭강정, 호떡, 홍게어묵, 그리고 아바이 순대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 양양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 덕에 내겐 그 음식들이 익숙하다. 시장통의 분주한 네온사인과 수런거리는 말소리도 골목마다 훤하다. 말린 멸치 냄새, 갖가지 젓갈 냄새, 먹물빵 냄새와 비릿한 오징어 냄새가 정겨웠다. 새로움이란 때로는 추억의 향수인지도 모른다며, 나는 어묵을 한가득 입에 물고 생각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하시던 것처럼 돌아갈 때 먹거리를 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닭강정도, 형과 동생이 좋아하는 호떡도, 도무지 내 입맛엔 맞지 않던 아바이 순대도. 순대를 까며 오랜만에 부자간에 막걸리나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배도 불러왔다. 계산하려는데 분식집 아주머니가 말을 거셨다.
- 총각 여기 처음 아니지.
- 네, 몇 번 왔죠. 어떻게 기억하세요?
- 목소리가, 기억을 할 수밖에 없어. 저번에는 누구랑 같이 왔던 것 같은데. 머리 많이 짧아졌네. 군인 같어.
- 아, 네, 곧 제대해요. 말년 휴가 나와서 찾아왔습니다.
- 고생했네. 재밌게 놀아. 그 나이 땐 노는 게 최고여. 오뎅은 싸비스.
- 우와,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시작이 좋다. 하무뭇한 마음으로 시장을 가로질러 다방 건물이 있는 네거리로 나왔다. 오후 4시가 지나 해는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이어령은 정오가 죽음을 생각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했다. 하지만 7월 말의 어느 날 내가 죽는다면, 난 낙조가 아름다운 7시의 저녁이나, 못해도 오후 4시는 넘겨 숨을 다하면 좋겠다. 벅차게 흔들리던 시간에 기대 삶이라는 긴 여로를 마치고 싶다.
몸을 털고 노곤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쪽으로 꺾으면 바다가 보인다. 언젠가 갯배를 타고 강둑을 건너 다다른 해변. 모래사장 뒤에 테라스가 딸린 카페가 있다. 저녁에는 바를 운영한다고도 들었다. 그곳에 머물다 별이 뜨면 돌아가기로 했다.
싱그러운 햇살에 바람결은 섧고 부드러웠다. 「러빙 빈센트」의 장면들이 되어, 짐짓 홀린 듯 걸었다.
여름 바다의 저녁은 여인의 볼을 닮아 따뜻하고 발그레했다. 빛은 연어의 비늘처럼 다채로웠고, 구름은 석양에 붉게 벼려졌다. 테라스 끝, 등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웠다. 바랜 모래사장 너머로 조개껍질이 달그락거리며 쓸리고, 밀물이 들이치고, 갈매기가 상냥하게 울었다. 뱃고동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기억 속으로 부서질 아름다운 순간을 맞닥뜨렸다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결국 가려지겠지만, 마침내는 잊히겠지만, 최대한 길게 간직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경삼림」의 첫 번째 주인공은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다. 기억 또한 유통기한이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진열하고 송증을 적듯 낱낱이 상태와 기한을 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 슬픈 과거는 버리고, 눈부신 순간들만 삶의 끝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멘보샤와 베네토 와인을 주문했다. 수평선이 타들어가는 모습, 포말이 모래를 감아올리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와인 한 병을 비울 즈음에야 해는 건너편 바다로 떠내려갔다. 저 멀리 고기잡이배들이 도깨비불처럼 가물거렸다. 내 위로도 엷게 아세틸렌 등이 켜졌다. 밝은 테라스는 바다를 음기(陰氣)를 밀어냈다. 파도 소리도, 바다의 짙은 향기도 아스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올라오는 술기운에 무거워진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 나를 사연 깊은 사람으로 여기고 동정하는 건 아닐까. 테라스에는 여름 휴가를 나온 가족이 하나, 체크무늬 베레모와 볼캡을 쓴 노년의 남자가 둘, 그리고 가벼운 복장의 연인들이 몇 쌍 있었다. 제각기 서로의 이야기에 분주해 보였다.
- 그래, 오히려 아주 예술가다운 사람으로 보았을 수도 있지.
취기가 덜해 민망함이 드는 것도 같았다.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밤이 내려앉은 바다는 깊고 고즈넉했다. 간간이 불꽃놀이의 환호가 들렸다. 눈을 감고 콧노래를 불렀다. 언젠가 황원 형이 알려준 노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좋은데 듣고 나면 좀 우울해지는 노래. '나무 아래에서'다.
전언호, 나무 아래에서
탁자에 병 놓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웬걸, 한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물론 웨이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