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림을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전시회를 가는 게 취미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전시회를 가본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전시회가 좋더라, 하고 입맛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몇 차례 여러 전시회를 가봤다고, 이제 슬슬 고정 입맛이 생기는 중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 입맛은 점점 편협해지고 있는 중이다.
사실 '감상'이라고 할만한 전시회 관람을 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 이후의 일인 거 같다.
미술교육에서 감상 부문도 초등교육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미술 수업을 듣는 매 학기 1번은 전시회로 관람을 가야 했다.
시작은 과제였지만 그 이후 여러 전시회를 스스로 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시회를 가기 위해 한두 시간은 거뜬히 운전해 가는 열성적인 관람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림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편은 아니다.
또 깊은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편도 아니다.
작품을 보면서 오는 애매모호한 인상과 느낌을 느끼는 라이트 한 관람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한없이 가벼운 나라도 관람을 하다 보면 그림 앞에 멈춰서는 순간들이 온다.
어느 전시회든 말이다.
브르타뉴 어선의 귀환(Retour de pêche. Bretagne), 1947, oil on canvas, 60 x 73cm.
모리스 드 블라맹크는 워낙 강렬한 인상의 그림이 많아서, 전시회를 관람하는 내내 오.. 세구나.. 오.. 세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위의 작품을 보았을 때,
그림 속 세찬 바닷속에 내가 서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너무나도 상투적이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영화 속에서 나를 둘러싼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듯,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거친 파도 속 한가운데 있었다.
물론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인상을 온전히 전달받은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림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잠시 뒤 멋쩍게 나머지 관람을 마쳤고, 나와서 엽서 한 장을 샀다.
물론 이 그림으로.
그 뒤로 나에게 전시회는 강렬한 순간을 선사해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 오히려 마음을, 생각을 비우게 되었다.
그저 내 마음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과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내 관람 스타일이 정착해가는 걸 느꼈다.
그 뒤에도 여러 전시회를 갔지만, 브르타뉴 어선의 귀환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을 가게 되었다.
세계의, 세기의 명작들이 모인 바로 그 프라도 미술관,
한국인의 일반적인 자유 여행 일정이 그렇듯, 우리는 프라도 미술관에 하루 정도의 시간만 계획해 넣었다.
가기 전 먼저 다녀온 친구가 이틀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목표는 '일단 다 보기는 해 보자'가 되었다.
나는 혼자 즐기는 전시회를 더 선호했던 터라, 미술관에서 친구에게 우리 따로 가이드 빌려서 따로 관람을 하자 제안했고, 친구도 흔쾌히 받아들여 하루 종일 혼자 미술관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우리 여행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었던 부분 중 하나일 정도로 따로 다닌 것에 둘 다 만족했다.)
이 미술관에는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이 있었다.
벨라스케스, 보티첼리, 라파엘로, 루벤스, 히에로니무스 보스, 고야… 그리고 수많고 많은 작품을 남긴 거장들이 가득하다. 미술사를 대충 아는 나도 다 아는 이름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수많은 명작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준 작품은 단 하나였다.
The Holy Family with a Little Bird MURILLO, BARTOLOMÉ ESTEBAN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성 가정과 작은 새> 작품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성경 속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자마자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냥, 어디서,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이 이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어느 작품이든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작품은 없다. 분명히 다른 작품에서도 따스한 마음을 담아 그린 작품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독 이 작품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어? 왜 이런 느낌이 들지? 하고 생각 동안 오디오 가이드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인지, 따뜻한 성품인지가 묻어 나오는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이 그림에서 느끼고 있는 점을 오디오 가이드에서 딱 집어주자, 굉장한 공감을 받은 느낌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몇몇의 엽서와 기념품을 샀지만, 이 작품부터 제일 먼저 찾았다.
그렇게 몇 번의 강렬한 경험을 하고 나니, 전시회를 관람하는 게 더 즐거워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전시 관람을 다녀왔다.
한국 미술을 잘 모르는 나도 거의 다 아는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기 전부터 큰 기대를 안고 갔다. 오늘은 또 어떤 작품이 내게 큰 의미로 와닿을까 하고.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나는 대부분 한 작가의 작품이 큐레이팅 된 전시회나 박물관, 미술관을 주로 다녔기 때문에 사실 개인 컬렉션 전시회를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일반 대중인 내가 개인 컬렉션 전시회를 간다는 게 흔히 있는 기회도 아니기는 하다.)
이름만 듣고 볼 기회는 없었던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다른 명성 높은 화백들의 그림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궁금하기도 했다.
미술품을 모으는 데에는 개인의 취향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 미술사학적 가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결부되어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전시회를 위해 큐레이팅 한 분들의 시선인지, 수집가의 시선인지, 혹은 수집팀의 시선인지 전혀 가늠이 안되지만
신기하게도 실제로 본 전시회의 그림들에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을 담뿍 느끼고 왔다.
다른 그 어느 전시회에서 보다 말이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화가와 그런 감성이 담뿍 느껴지는 그림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시회는 처음이라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전시회를 나온 나의 감상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다.'였다.
(길게 길게 돌아서 드디어 제목이 나왔다.)
전시회를 보았을 때 위에서 소개한 그림들만큼 강렬한 감상을 받지는 못했다. 내가 그림들을 너무 익히 알고 있었을 탓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만큼의 임팩트 있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시회를 보고 나오니, 화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전시회를 보고 나와서 나와 작가의 시선이 달라 우울해지거나, 불쾌하기까지 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 (그 또한 미술 관람의 일부가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난 그래도 따듯한 사람들이 좋고, 따뜻한 시선이 좋다.
전시회를 관람했을 뿐인데, 내 생각이 이리 공고해져 간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편협해져 간다.
강렬함도 좋지만, 따듯한 시선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앞으로도 또 여러 전시회를 갈 예정이다.
기대된다. 또 어떤 시선을 만나게 될지. 또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말이다.
여하튼, 지금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