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잠깐 시도를 하다 그만뒀던 일인데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블로그는 누구나 쉽게 운영할 수 있고 나는 수익창출이라든지 일일 방문자수 1000명 달성과 같은 거창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저 이번에는 꾸준히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전에 블로그를 운영하다 그만둔 이유는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땐 나의 글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읽도록 했다가, 금세 그러고 싶지 않아 졌다. 처음엔 그들의 관심을 받고 싶고 소통을 하고 싶어 했다가, 금방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실은 나란 사람은 블로그에 글을 올릴 생각만 했지 다른 사람들의 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소통의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아도 나는 혼자서 잘만 글을 쓸 수 있다’, ‘어차피 글은 혼자 쓰는 건데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신경 쓰기보다 글쓰기에 집중하자’, 최근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글쓰기와 소통에 대해 생각을 좀 달리 한다. 글은 혼자 쓰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없이도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다. 다만 ‘더 좋은 글’을 ‘더 오래 쓰기’ 위해선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이 어떻게 더 좋은 글을 쓰게 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흔히 혼자 글을 쓰는 것보다 자신의 글을 여러 사람한테 보여 피드백을 받고 잘못된 것을 고쳐가면서 작문 실력을 키운다. 최근에서야 내가 깨달은 건 소통이 글을 더 오래 쓰기 위해서도 필요하단 것이다. 한 웹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웹툰에서는 여러 학생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유도를 하는 여학생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그 여학생은 어려서부터 유도에 재미를 느껴 꾸준히 운동에 매진하고 진로로 유도선수를 꿈꿀 정도로 진지하게 임한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여성이 운동을 직업으로 갖는 것에 관한 불안감을 끊임없이 학생에게 얘기한다. 여학생은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 ‘나에 대한 확신이 전부 의심으로 바뀐다’라며 힘들어하다 결국 반년 정도 유도를 그만두고 입시 공부에만 몰두하다 이후 정말로 원하는 유도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한 친구의 애정 어린 응원과 지지가 부모를 대신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확신을 심어줬다고 여학생은 말한다. ‘너 진짜 잘한다’, ‘대단하다’, ‘네가 제일 열심히 한다’, ‘너라면 반드시 해낸다’. 친구의 이런 말이 여학생에게 꿈을 향해 나아갈 힘이 되었다. 그리고 여학생은 한때 연극을 했다 그만둔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나는 개인의 끈기도 열정도 믿지 않아. 그런 것에 기대어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건 결국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야.”
생각해보면 나도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글을 잘 읽었다’, ‘좋은 글이다’, ‘다른 글이 궁금하다’라는 말도 듣기에 좋았다. ‘나도 거기에 있었어’. 이 말은 나의 글을 읽은 사람에게 들었던 말 중 특히 좋았던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인도네시아인 친구이다. 그녀는 한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말해줬다. 네가 느낀 걸 나도 느꼈고, 네가 있었던 곳에 나도 있었다고. 그와 비슷한 말을 이전에는 들은 적이 없었을까? 내가 쓴 글을 통해 실제로 타인과 공감을 이룰 수 있고, 연대할 수 있음을 그때 체감했었다. 그 말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됐다. 지금 돌아보니 한동안 그 말을 잊고 지냈나 싶다. 처음 블로그를 운영하던 때에 글에 관한 소통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 것도 그 말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제라도 다시 떠올린 건 지금의 내가 글쓰기를 지속할 힘을 계속 잃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내가 소통할 준비가 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글을 읽은 인도네시아 친구가 그랬듯, 나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나도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게 됐고, 그들에게 글이 참 좋으니 계속 써달라고 말하게 됐기 때문일지도.
블로그를 새롭게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써온 글도 다시 한번 살펴보고 게재하고 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부정확한 표현이 보이거나 유치하고 사적인 내용이 과한 글은 빼거나 비밀글로 해놓고 있다. 써놓고 까맣게 잊고 있다 발견한 글 중엔 이거 괜찮은데 싶은 글도 있었다. 블로그에 이런저런 글을 올려 정리하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은 그간 글에 방향성을 두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이나 기억, 경험을 토대로 썼단 점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앞으로는 한 권의 책으로 엮을 만한 글을 써보자, 다른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도 작가 등록을 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러려면 일관된 주제 아래 글을 써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민을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더 좋은 글을 더 오래 쓰기 위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많다. 그중에 하나로 블로그를 시작하니 들뜨기도 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든다. 그와 동시에 이제야 내가 좀 성장했다는 마음이 드는 건, 나란 사람도 글을 쓰고 꿈을 좇기 위해 타인의 관심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걸 깨끗이 인정하게 됐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