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마냥 어른이고 싶었다. 젊어서 죽고 싶은 만큼. 그땐 어른이면 누구나 삶의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동생이 있다. 대학생 때부터 십 년을 알아온 사이다. 그녀가 최근 집을 옮겨 선물을 사들고 집들이를 갔다. 월세 원룸방에서 반전세 투룸으로의 이사였다.
집은 정리가 다 안됐을 뿐이지 깔끔했고 혼자 살기에 충분히 넓어 보였다. 벽지나 문간, 타일은 모두 새것처럼 광이 났다. 드럼세탁기도 있고 냉장고는 내 키만 했으며 가스레인지 화구도 세 개나 됐다. 네 사람이 앉아 도란도란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은 탐이날 정도였다. 식탁 위에 놓인 맥북도 윤이 났다. 이 정도면 성공했네, 하고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녀는 다 빌린 돈으로 산거라며 웃었다. 곧 초밥과 맥주를 사이에 두고 근황을 얘기했다. 주식과 비트코인 얘기를 한참 했다. 그녀가 언제 퇴사하는 게 좋을지 함께 고민했다.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된 고향 친구들 얘기도 했다. 이제는 남보다 못한 그런 사람들이 꼭 결혼식만 되면 그녀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우리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씹었다. 시간이 금방 갔다.
초밥을 다 먹자 땅콩이며 과일이며 새로운 안주거리를 차려주는 그녀를 보며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도 언젠가는 나를 대견해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게 우린 서로의 철없던 시절을 잘 알았다. 한 번은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취한 그녀를 부축해 대학교 기숙사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뭘 보냐고 시비를 걸때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잘못을 대신 사과해야 했다. 그녀도 나의 취한 모습을 몇 번 봤는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얘기다. 어느 날 같이 술을 먹다 말고 화장실에 간 내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찾았더니, 화장실 변기에 앉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했더란다. 우린 질리지도 않고 몇 년째 이런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비웃고 있다. 그녀는 이런 말도 곧잘 했다. 난 그때 오빠가 참 어른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어. 이제 그녀가 돈을 벌게 된 지도 수년이 됐다. 그간 그녀가 직장일 때문에 힘들어해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 쓰인 날이 많았다. 특히 그녀가 여성으로서 직장에서 겪는 일은 내가 겪어보지 않아 쉽게 공감하기 어렵고 조언도 해줄 수 없어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기도 했던 내가 곁에 없어도 그녀는 잘 지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린 한강을 가로지르는 동작대교와 교통이 혼잡한 사당역을 지나쳤다. 동작대교를 지날 땐 이 근처가 내가 자주 조깅을 하는 곳이며 사당역을 지날 땐 근처에 직장이 있어 회식을 자주 하는 곳이라고 나는 말했다. 너도 이제 다 컸구나,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다 커서 재테크도 하고 회사 사람들과 언성도 높이고 한때 멋모르고 가깝게 지냈던 이들에게 등을 돌릴 줄도 아는구나 싶었다. 나보다 먼저 알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을 늘려간다는 걸 말이다. 어른이 별게 아니다. 어쩌면 그녀나 나나 자신의 기억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적어도 그래서 나는 마냥 어른이 되고 싶다가도, 젊어서 죽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스물아홉, 서른둘. 부모에게 빌린 돈을 더해 혼자 지낼 작은 집을 구하고 한 밤에 함께 동작대교를 건널 친구가 필요한 나이. 노란 조명 아래 긴 다리를 지나면서 그녀와 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면 아이도 어른도 되길 바라지 않는 시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