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아야 해."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다. 착한 딸, 착한 학생, 착한 며느리, 착한 엄마.
착하다는 말은 좋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 속에는 무서운 명령이 숨어 있었다.
생각하지 마라.
순종하는 것. 말 잘 듣는 것. 불평하지 않는 것.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의문을 품지 않는 것.
"왜요?"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버릇없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여자로 태어났다면, 며느리라는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생각하지 말고, 순종하라. 질문하지 말고, 따르라.
나는 그렇게 살았다. 생각 없이, 아니 생각하지 못한 채로.
생각하지 않는 삶은 편했다. 어떤 면에서는.
남들이 정해준 길을 가면 되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면 되니까.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 편함의 대가는 무거웠다.
나는 사라졌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조차 몰랐다. 아니, 묻지 않았다. 묻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시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남편이 기대하는 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변화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찾아왔다.
기도할 때, 나는 처음으로 물었다.
"하나님, 나에 대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이 질문조차 조심스러웠다. 내가 감히 하나님께 질문을 던져도 되는 걸까? 그냥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놀랍게도, 질문은 답을 불러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질문은 생각을 불러왔다.
질문하는 순간,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순간,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철학책, 인문학책, 사유에 관한 책들.
그리고 계속 질문했다.
"이것이 맞는 생각인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이 질문들이 내 생각을 바꿨고, 생각이 바뀌자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주변의 흔들림이 적어졌다.
예전에는 누군가 뭐라고 하면 쉽게 흔들렸다.
시어머니의 한마디, 남편의 표정 하나에 내 하루가 망가지곤 했다.
하지만 생각의 힘을 알게 된 후로는 달라졌다. 타인의 말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기대가 내 삶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왜 내가 힘들었는지, 왜 내가 지쳤는지, 왜 내가 나를 잃어버렸는지.
그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생각하지 못하게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매일 훈련한다.
무의식적으로 따르려고 할 때마다 멈춰 선다. 그리고 묻는다.
"이것이 정말 맞는 생각인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꼭 그래야만 하는가?"
이 질문들이 나를 깨운다.
착하게 살라는 말에 자동으로 고개 끄덕이려다가, 멈춘다. 누군가의 기대에 무조건 맞춰주려다가, 생각한다. 그냥 참고 살려다가, 질문한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산다.
"나는 며느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며느리로만 살게 된다.
"나는 참아야 해"라고 생각하면, 평생 참으며 살게 된다. "나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나는 나만의 특별함을 가진 존재다." "나는 질문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로 살아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혹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순종이 미덕이라는 말에 속아, 당신의 생각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이 바로 질문할 때다.
"이것이 맞는 생각인가?" "그래야만 하는가?" "나는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가?"
질문하라. 그리고 생각하라.
생각은 당신을 깨우고, 당신을 자유롭게 하고, 당신을 당신답게 만들 것이다.
착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순종하며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질문하며 사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