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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통역사 김윤정 Jul 02. 2019

상실로 슬퍼하는 그대에게..

상실을 극복하는 애도의 방법 1

'리나를 추모하며'라는 글자를 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작은 종이에 '리나'라고 쓰고 종이 양쪽 윗면에 검은색 선을 그은 뒤 그 종이를 가슴에 품고 소녀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엉엉 울었다. 8 살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글을 쓰지 못했던 내가 '리나'라는 글자를 쓴 것을 보면 아마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8살 때인 것 같다. 그때는 TV 프로그램에서 만화영화를 지금처럼 흔하게 하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말 아침 짧게 하는 만화영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TV를 보던 일요일 아침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AFKN이라는 미국방송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에 만화영화를 했었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림으로 어느 정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은 참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늘 보던 프로그램들이 순서대로 방영되고 마지막 만화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아쉬워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냥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와는 달리 또 다른 만화영화가 시작하는 거였다. 나중에 보면 그것도 아주아주 긴 장편영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영화는 '인어공주'였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지만 흑백이긴 했었도 만화는 만화여서 재미있게 몰입해서 보는 중에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장면에선 어린 나는 폭풍오열을 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같이 다니던 물고기가 바닷물 수면으로 솟구쳐 튀어 오르며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이름을 부르며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 물고기의 목소리가 석양과 함께 메아리쳐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어린 내 마음은 채널을 돌릴 수도 TV를 끌 수도 없을 만큼 슬픔에 빠져버렸다.

그때 친구 물고기가 부르던 인어공주의 이름을 나는 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인어공주 동화책을 보니 엘레나였던 것 같은데 당시의 나의 청취 수준은 그녀의 이름이 리나로 들렸다. 엘리 나면 어떻고 리나 면 어떤가. 나는 몹시 슬펐고 그녀를 추모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작은 종이에 그녀의 이름을 적고 어디선가 본 듯한 죽은 사람의 사진에 두른 검은띠를 상징하는 검은 선 두 개를 종이에 그리고 그 종이를 가슴에 품고 이불속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말없이 자신의 생명을 버린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가족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하며 걱정스레 나를 지켜보았다. 몇 시간을 울고도 울음이 멈추지 않은 나를 보며 우는 이유가 만화영화를 보고 슬퍼서라는 걸 알게 된 우리 가족들은 어린 나의 마음을 위로나 공감해주진 않았다. 조금 많이 유별난 아이로 취급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20살이 되어 극장판 인어공주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 볼 때까지 인어공주 동화책은 펼쳐보지도 못할 만큼 깊이 슬펐다.


어떤 이유로든 상실은 인생의 일부다. 그 상실의 내용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든, 아끼던 물건이 망가지는 것이든, 기대했던 삶이 전혀 예상치 않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든 그 내용과 무게는 다를지 모르지만 상실은 엄연히 우리 삶의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실에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상실해 슬픈 마음을 애도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냥 빨리 잊으라고만 한다. 그까짓 일로 뭘 그리 유난 떠느냐고 한다. 힘나지 않는데 힘내라고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용서하는 상담을 할 때가 있다. 그 용서의 과정에는 화나고 슬픈 마음을 비롯해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이 포함된다. 일명 애도상담이라고 내가 일컫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미움뿐 아니라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도 많이 표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을 오롯이 안고 그 사람과의 시간을 추억으로 떠나보낸다. 외도를 한 배우자를 용서하고 다시 결혼 관계를 회복한 사람도, 죽은 남편으로 삶이 무너졌던 아내도, 한없이 미웠던 아버지를 용서한 딸도, 오래 애착을 느끼던 강아지를 떠나보내 허전한 사람도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시간만 흐른다고 상실이 치유되거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은 치료의 좋은 약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뭔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 애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다음 편 상실을 극복하는 법>


[공감 통역사 김윤정]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었으나 영어를 포기하고 자기 이해가 부족한 바람에 오랜 방황으로 20대를 보냈음 결혼과 함께 시작된 30대 멘붕으로 상담전문가의 길에 어쩔 수 없이(?) 접어들었음   상담과 심리치료를 공부하던 중 비폭력대화를 만나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구를 통역해내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함 특히 남자 내담자와 참여자들을 어쩌다 보니 80% 이상 많이 만나다 보니 남자를 진짜 이해하게 되면서 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통의 어려움을 공감 통역으로 풀어냄EBS라디오행복한교육세상, YTN 당신의 전성기 오늘에서 상담을 하던 방송인

공감 통역사 김윤정의 유튜브 상담실을 운영하는 유튜버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그대에게를 2019년 출간할 작가 감정에 대해 감정이 많은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를 외치는 감정 전문가 PREPARE/ENRICH-CV 커플 상담전문가, 심리극과 액션 메서드 전문 가도 아들과 강아지 딸 엄마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기를 원하는 알고 보면 허당 마음 따뜻한 철들어가는 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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