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삭제하려고 했습니다만... 아들이 감기에 걸려 고열로 아파하면서 다시 독감 주사, 예방 주사에 대한 이야기로 안해님과 다시 다투게 되면서 발행취소글을 꺼냅니다.
가족이야기라 부끄럽기도 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해님은 의료 쪽 전공은 아니지만 유방암으로 고생한 장모의 영향을 받았는지 백신, 약, 주사, 환경호르몬, 방부제, 탄산음료, 맵고 짠 거, 기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경계합니다. 코로나 백신, 예방주사, 독감주사,...어디서 무슨 글을 읽었는지 의료계통의 지인으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의료사고를 걱정하는 건지...
그래서 그런지 뭐든지 자연과 건강과 연관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요.그나마 심하게 아프면 해열제를 먹이고 어느 정도 참다가 그래도 자가치유가 안 되면 병원에 데려갑니다.
저도 한 때 청년부 회장도 하고 워쉽댄싱 팀장도 하고 대학교도 신학교에 있는 영어 교육 전공을 할 정도로 교회에 미쳐봤기에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딸과 아들이 국가에서 지정한 예방접종 중에 1가지인지 2가지 주사만 접종하고 나머지를 모두 거부하자 동사무소 직원 두 명이 저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아이들이 학대를 받고 영양실조로 고생하지 않는지 점검을 온 것이었습니다.
이전 직장 선배들에게 이만저만해서 이런 이야기를 살짝 했더니 무슨 아나키스트 느낌이 난다고도 하고 무슨 사이비 종교에서 들은 이야기 같다고도 하고...
사실 논산 훈련소에서 실제로 종교적 이유로 총을 거부하고 사격 훈련을 거부한 사람 두 명을 봤습니다.저와 저희 가족은 거기까지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요.
그동안 결혼 생활 13년(장거리 교회 출석 13년)을 돌아보니, 금성교회 담임목사님이 안해님에게 사무원을 하라고 전화했을 때부터 뭔가 꼬였습니다. 월요일만 쉬는 종교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굉장히 민감했습니다.
저는 그냥 안해님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군포에서 김포공항까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은 부천 유치원 출퇴근보다 힘들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안해님은 담임목사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5년 정도를 평일에는 회사에서 토요일에는 각종 이벤트, 경조사로 주일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처가댁 근처의 교회에서 보냈습니다.
30대 중반의 저에게는 체력의 한계가 왔습니다. 중간중간에 교회를 옮기고 사무원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지만 안해님은 담임목사님께서 허락을 안 하신다고 하면서 미루고 미뤘습니다. 그러나 5년 정도가 지나서는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꽃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사무원은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저에게 결혼 전에 분명히 교회를 잘 선택하기로 했는데 등록해 놓고 이제 와서 바꾸려고 하냐고 뭐라고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회사 야유회나 단합대회에 참여하려고 해도 저는 일요일에 교회를 가야 해서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회사 사람들은 제가 군포 산본에서 강서구 공항동으로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교회를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종 근처 교회로 옮기라고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금성교회에서는 강서구 쪽으로 이사를 오면 안 되냐는 이야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회사가 경기도 안산시 공단이었는데요.
안해님은 화훼분야로 경력도 쌓고 직업도 구하기 위해서 수업도 많이 듣고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자가용으로 새벽이나 밤에 짐을 옮기거나 안해님을 데리러 가곤 했습니다.
돌아보면 서커스 곡예 줄타기 같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옮기기, 보험 가입 다시 하기, 영업할 때 술 안 마시기, 기타 등등으로 말다툼을 할 때마다 안해님으로부터 황혼이혼 이야기도 듣고, 결혼을 일종의 경기나 스포츠라 생각하기에 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듣고, 시어머니 부양을 마친 장모의 다양한 여행계획에 협조하기도 하고요.
돌아보면 이미 장인장모와 제주여행, 미국 시애틀여행, 국내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하지만 장모는 아직 여행에 배고픕니다.
지지난주에 처가댁에서 처음으로 김장을 한다고 해서 오후에 군포에서 김포공항까지 오랜만에 갔습니다. 허나 김장은 아침에 교회 권사들이랑 장모가 이미 마친 상태였고, 처남 부부는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느낌은 왔지만 결국 장모는 가족과의 따뜻한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엄격하고 무서웠던 장인은 농담도 걸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녀서 그 모습이 너무 싫은데 제가 샤워 후에 그런 모습을 보이면 저에게 너무 싫다고 본인 아빠가 그랬다고...
어쨌든 12월 말에 장인의 생신으로 다시 한번 모이기로 했으나 장모는 김치를 깜빡했다는 이유로 지난 금요일 밤에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은 밤 10시에 장모를 모시러 총 출동했습니다. 장모님은 감기에 걸린 상태였고... 안타깝지만 타이밍이 절묘하게 딸과 아들의 감기가 다 나를랑 말랑한 시기였는데 오늘 아침 딸은 콧물에 기침이 엄청 심해졌습니다. 아들은 밤새도록 코가 막혀서 울고 숨쉬기 힘들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힘들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근처로 옮길 거라고 말씀하신 우리 엄마, 그 말씀이 맞기는 했지만 첫째가 5살, 둘째가 3살이 되고 안해님이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면서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은퇴를 해서 교회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장모의 멘트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주일마다 자네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로 예배드리러 오는 건 어떤가?"
신기하게도 그 시기에 안해님이 차를 카니발처럼 큰 차로 바꾸는 거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중하게 답변했습니다.
"두 분 모두 일을 하셔서 오시기 힘드세요"
이후에제 생일에 고기와 과일을 받으러 부모님 댁에 갔다가 요즘도 처가로 멀리 교회 다니냐는 질문에 집 근처로 옮겼다고 얘기하면서 저도 모르게 위 이야기를 드렸더니 딱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염병"
그리고 제가 두 번째 직장에서 본의 아니게 여성 회계 직원과 카플로 출근을 했습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것으로 보여 안해님에게는 비밀로 했습니다. 그러나 체취와 머리카락, 기타 등등을 느낀 안해님은 다른 여성이 이 자리에 앉는 것이 불편하고 싫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카플 하는 것을 숨긴 것에 화가 난 것이지 카플 하는 것 자체에는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안해님은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남성 선생님 한 분 혹은 두 분과 퇴근을 함께 합니다. 최근에 구입한 빨간색 캠리를 타고요. 올해 초에 회사에서 일찍 끝나서 어린이집으로 바로 퇴근해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차 보조석에서 그 남성 선생님이 내리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같은 방향이고 대야미 쪽에서 자가용 없이 금정역 쪽의 어린이집까지 시간을 맞춰서 오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다. 어차피 딸아이의 친구이니 괜찮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뭔가 찜찜했습니다.
다른 남성 직원과 함께 카플을 하면서 3명이 되긴 했지만... 그 순간 두 번째 직장에서 여성 직원과 카플을 할 때 안해님이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간색 캠리를 팔아버리고 다시 베이지색 모닝을 타고 다니라고 할까 하다가 교통사고 시 딸과 아들이 위험하기 때문에 참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