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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씨 May 28. 2024

웃긴다. 아무 노력도 안해서

현재 출판사에서 9개월째 일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4~5명씩 원고를 투고한다.

똑같은 원고를 3~4개 연달아 보내기도 하고

4달째 다른 제목으로 다른 원고를 똑같은 사람이 보내오기도 한다.

메일을 보내고도 뭐가 그리 불안한지, 전화로 잘 받았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간절한적이 있었는지


출판사 앞에 핀 장미가 길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는 먼지 쌓인 책들을 정리하며 

반품되어 버려지는 책들을 정리하며

계약만료되어 더이상 팔 수 없는 책들을 정리하며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같은 언어를 사용했음에도

저마다들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달랐다.


한 때는 누구든 나의 우울함을 알아주었음을 바랐고

한 때는 누구든 나의 유쾌함을 알아주었음을 바랐고

한 때는 누구든 내가 있음을 알아주었음을 바랐다.


팔리는 책들의 유형은 비슷했으나

팔리지 않은 책들은 시대의 흐름을 잘못탔거나 

한끗차이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소수의 사람이 즐기는 부류거나


그럼에도 그들은 똑같은 책의 형태로 찢기거나

낡아갔으며 색이 바랬다.


막연히 나의 이름을 단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떤 종이를 사용하여 인쇄를 하는지

서체를 사용하여 종이를 채우는지

하물며 면지는 무슨 색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보다 

더 쉽게 쓰여졌다. 나의 글은

감정이 주체를 못하고 날뛰어

술에 취한 것처럼 이리 저리 휘젓고

내키는 대로 울다가 웃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질을 했다.


창고에 쌓여 먼지 숨을 뱉는 책처럼

언젠가 나를 알아주겠지

창고의 악성 재고처럼

누군가 나를 찾겠지

안일한 생각으로 제자리에 머물렀다.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진심이라 생각했던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재능이라 생각했던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내가 잘했던 것은 그저 맥주 빨리 마시기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박수칠 때를 모르는 나는

박수 받아 본 적도 없었기에


오늘도 엽서시를 뒤적이며

나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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