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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씨 Jul 10. 2024

심리상담을 받고 난 후에

나는 '죽고 싶다'보다는 '사라지고 싶다'는 쪽이 맞다.

세상에 내 흔적이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지독하게 뭐라도 남기를 바랐다.

그것은 나의 휴지통이면서 나의 발버둥임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우습게도 건장한 체격과 반대로 내면은 한없이 약했다.

나는 눈치를 많이 봤다.

직장에서, 집에서, 심지어 길가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들처럼 보통의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으면서도 불신은 나를 괴롭혔다.

누구나 다 이정도는 겪잖아.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나의 치부를 내가 드러내는거잖아.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징징대는 것 같아.


불행한 생각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멈출줄 몰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알아서 미래가 바뀌기를 원했다.


충동으로 심리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고

예약 취소할 용기가 없어서 늪에 빠진 장화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화성에 있는 상담소까지 가는 길 

햇볕에 눈이 부시고 차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식상하게도 아름다웠다.

찰나의 순간에 온통 흑백이었던 나의 세상이

바다의 푸른색을 흡수했다.


나는 불행하게만 생각할까

왜 나는 우울한 생각으로 나를 괴롭힐까.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꼭 날아다니는 새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그 새들은 정말로 자유로울까.


상담소에 도착해 이름을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잔뜩 경계하고 말도 하는둥 마는둥

그런데 선생님의

'어머,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어요.'


감정이 요동쳤다.

나를 이해하는 걸까.

내가 이상하지는 않을까.

이정도는 모든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장기같은 것은 아닐까.


나는 또 다시 울었고

울음을 멈추기 위해 나를 재촉했다.

그만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부끄러워. 그만 멈춰.


그때도 선생님은 눈물을 멈추게 하지말라면서

계속 울게 자신을 그냥 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더 이상 울면 민폐야, 하는 마음과

정말 속시원하게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한시간의 상담을 마치고

나는 추가결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제일 많이 하게 되는 말이

그럴수도 있겠구나.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그럴수도 있지.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상처받은 어린 시절

잊지못할 사회 경험


아직도 나에게는 케케묵은 먼지같은 과거이지만

한 편으로 먼지털이가 왔다간듯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그 후로 나의 입버릇은

'그럴 수도 있지'


3달의 짧은 상담을 끝내고

'난 역시 우울해!'하는 마음과

'그래! 나와 너는 달라!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워킹런지로 털린 하체이지만,

마지막 걸음은 흔쾌히 내딛을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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