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뚱뚱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벗어나보겠습니다.
저는 뚱뚱합니다. 초등학생 때 과체중을 거쳐 지금의 고도비만까지 쭉 뚱뚱했습니다. 놀랍게도 소아비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키도 큽니다. 학창 시절 뒷자리는 저의 고정석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은 담임 선생님이 매번 키 큰 사람만 뒷자리로 가는 것이 부당하다 생각하였는지, 앞에 앉힌 적도 있었습니다. 뒷자리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다시 뒤로 뒤로 제자리로 돌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투포환 경기에 나가게 된 적도 있습니다. 2등을 하긴 했습니다.
교복이 제일 싫었습니다. 학원 원장선생님은 저를 코끼리 다리라고 불렀고 남학생들은 제 옆에 슬쩍 서며 덩치를 비교하며 웃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 다른 학교 학생들이 저를 보고 '야, 저기 다리 봐'라며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날, 친구는 저에게 고무줄 바지를 빌려주면서도 '늘어나지 않게 조심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럴 거면 빌려주지나 말지, 속으로 삼키며
'하하' 웃었습니다.
다이어트?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한약, 양약, 원푸드, 단식, 지방흡입, 무작정 걷기, 등산, 헬스 등 살이 빠진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해봤습니다.
한약으로 한 달 만에 15킬로를 뺐지만 일반식을 하니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방흡입은 의외로 몸무게가 줄지 않습니다. 그리고 뚱뚱하면 티도 잘 안 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등산할 때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안 가도 되니까.
네, 먹는 것 좋아합니다. 성인이 된 후 술에 눈을 떴고 주변에서 술을 잘 마신다 칭찬하며 추켜세워주니 더 신이 나서 마셨습니다. 대학생 엠티 가서 밤새 술 마셨던 사람 바로 저입니다. 본체는 아싸인데 술 마시면 간이 부어 인싸가 되곤 했습니다. 한 선배가 자기를 만나러 올 땐 술 한 병 마시고 오라 했을 정도입니다.
먹다 안 먹다 운동을 하다 말다, 폭음과 폭식의 반복. 그렇게 몸은 계속 망가져갔습니다.
이 세상 오로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음식과 술이라고 믿었습니다.
삼겹살을 먹으러 가면 소주를 시키고
치킨을 먹게 되면 맥주를 마셔야 하는 것이 무슨무슨 법으로 정해진 것처럼 모범 생활을 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과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면 내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고 길을 걸어도 사람들이 뚱뚱하다며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상한 습관도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며 건물에 반사되는 제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나의 모습을 보고 매번 평가를 했습니다. 엉덩이가 너무 튀어나왔고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발목이 두껍고 팔이 어쩌고 저쩌고. 다른 사람도 평가했습니다. 저 언니는 너무 말랐고 쟤는 나랑 비슷하고, 딱 저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거지 같은 생각들.
여름에 반바지를 못 입었고 옷장엔 검은색 옷밖에 없었습니다.
학생이나 어른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한 직장상사는 '저 팔뚝 봐.'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무거운 물건을 들을 때면 '오~역시! 이것도 들어주라!'
왜 뚱뚱하면 힘도 세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또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며 '확찐자'라는 말이 생길 때, 밥 먹으러 가는 저에게 '확찐자네?'라고 했으며 흰 옷을 입으면 백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너무 싫었지만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제 자신이 가장 싫었습니다.
홈트, 줄넘기, 마녀수프 등 또 유행하는 것들을 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체중은 줄지 않고
호르몬 기간이 다가오면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몰려와 폭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좁은 곳이 싫었고 막힌 공간에서는 답답함에 몸을 가만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기력함이 몰려왔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는 예쁘니깐 다른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거다,라는 생각을 했고
누구는 예쁘니까 결혼을 빨리 했지,라는 대답을 했고
누구는 예쁘니까 무얼 했고, 누구는 예쁜데 차라리 다른 걸 하지, 누구는 예쁘니까, 예뻐서, 예쁜데.
나는 못생겼네? 그러니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거야.
최악의 망상까지 생겼습니다.
당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