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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an 05. 2016

#3. 미디어에서 배우는 일상 대화 꿀팁

표창원의 인터뷰가 사이다인 두 가지 이유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

표창원 전 교수의 최근 행보 및 발언들 중

언론에서 크게 주목한 것은 세 가지 입니다.


1. 더불어민주당 입당의 변
2. 문재인 사무실 인질극에 대한 mbn과의 인터뷰
3. 반 사무총장의 위안부 협상 타결 지지를 규탄하는 발언


이 중, 입당의 변을 발표한 직후 라디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서 했던 인터뷰는 들으면서 다소 아쉬웠고,


mbn과의 인터뷰에서는 그야말로 속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반 총장에 대한 규탄발언은 인터뷰가 아닌데다 서로 정치적인 목적의 발언이라고 판단되어 그냥 기사를 읽고 넘어가는 것으로...



이 중 mbn 앵커와의 인터뷰 보셨는지요?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먼저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약 2분 40초 분량입니다. 안 바쁘시다면 잠깐 봐 주세요.

아니죠. 정정하겠습니다. '끌리신다면'으로.


          mbn 김형오 앵커와 표창원씨 인터뷰


스마트폰으로 하루 여러 시간을 보내면서도
필요해서 보는 것이 아닌, 조우한 영상들은 짧은 것조차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되더군요. 흘깃 길이를 보고, 영상이 주는 즐거움(재미,정보 등)과 그 사이 소비되는 내 시간을 순간적으로 저울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재생 수가 그 자체로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시간을 썼다'는 것은 영상물이 꽤 매력적일 가능성을 담보하니까.
여러분은 어떠세요? 쉽게 링크된 영상을 클릭하는 편이신가요?


자 이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이 날의 인터뷰는 '사이다 인터뷰', '표창원 사이다 영상' 등으로 회자되며 큰 주목을 받고 연관검색어를 양산해 냈습니다.

(*사이다:속이 시원해진다는 뜻을 가진 은어)


조금만 파고들어 봅시다. 인터뷰를 보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형식면에서는 :
'전형적인 뉴스 인터뷰와 판이한 대립구도에서 오는 신선함'을
내용면에서는 :
'즉각적인 반례를 통해 단숨에 유리한 프레임을 장악한 명료함'을


꼽겠습니다.





TV뉴스에서 인터뷰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뉴스 제작팀의 입장에서 꽤 괜찮은 방식이기 때문이죠. 카메라기자와 취재기자 등 최소 2인이 출장을 나가 '따 오는' 인터보다 사후 편집이 없어 여러 모로 일이 적고, 시청자 입장에서 생동감을 줍니다. 문장에서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 혹은 작은 따옴표와 큰 따옴표의 차이랄까요. 

대신 사전에 편히 삽입하면 되는 녹화물과 다르게 타이밍을 잘 맞춰야만 는, 자막과 참고영 삽입수고로움  돌발상황의 위험함은 기회 비용인데, 이번 인터뷰가 그 기회 비용을 톡톡이 치른 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만약 녹화 인터뷰였다면 우리가 본 것과 방송이 똑같이 나갔을까요?아마도 절대!)


뉴스에서의 인터뷰는, 크게

 전문가가 출연해 정보를 제공하고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인터뷰, 혹은 화제가 되는 사건의 당사자나 관계자가 나와 사건의 내막을 밝히고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인터뷰로 나누어 볼 수 있죠.


표창원의 인터뷰는 그 중 두 번째였습니다. 김형오 앵커(이하 김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 big5 제작진은 부산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한 당원의 인질극이 발생하자, 같은 날 오후 표창원씨를 스튜디오로 섭외해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두 사람이 한 인터뷰는 내용상 토론에 가깝습니다. 시작부터 앵커가 "야당을 비판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겠다." 고 전제했으니까요. 통상 인터뷰어와 날카로운 문답이 오고가는 식의 인터뷰에서,

출연자는 논란의 당사자이고, 진행자는

'논란을 파헤쳐보자,
시청자의 알 권리를 대리하자, 나아가 출연자에게 모순이나 허점이 있다면 공략해 보자'


는 목적으로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내죠. 그 유명한 '손석희의 시선 집중(2000~2013)'이나 mbn에서 방송 중인 '김주하의 진실(2014.7~ )' 등이 본보기입니다.

 

이와 같은 문답 싸움에서 시청자들은 앵커의 편에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앵커가 마치 우리들의 '똑똑한 대리인'으로서 대신 궁금점을 풀어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사이다 인터뷰의 대부격으로 꼽히는 손석희가 시선집중에서 했던 인터뷰들이 특히 인기있었고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허나 저널리즘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이 의심되는 여러 뉴스 프로그램을 목격한 바, 우리는  뉴스가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종종 회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언론의 공정성에 관해 보도한 설문조사 결과들 중, 한결같이 반대 색깔의 언론사를 비방하기 위한 용도에서 자유로운 것이 없더군요. 제 부족한 자료 찾는 능력을 탓하며, 대신 아래의 캡처 사진들을 첨부합니다.


그림 1.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이 검찰에 쫒기는 상황에서도 치킨을 선택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단독 보도한 채널A


 그림 2. 김무성 대표의 사위가 상습적인 마약 투약을 하고도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김무성 대표가 해명에 나섰던 당시의 상황을 보도한 mbn. 긴급했던 것은 당시 상황일까 김무성 대표의 마음일까?



 이 날의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으레 '앵커의 파고드는 질문, 출연자의 방어적인 대답이 이어지겠지' 라며 경험에 기반한 자동인식 기능을 작동시키지만, 앵커로 나선 그가 과연 보편적인 시청자를 대변하는 것인지 회의감을 떨칠 수 없는 상태에서 화면을 응시합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통념에 기대어 있던 나의 눈과 귀에 큰 자극이 들이닥칩니다.  갑자기 뜻밖의 문답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앵커가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앵커가 우물쭈물 할 말을 못찾는 사이 우리는 안타까움이 아닌, 통쾌함을 느낍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질문하는 앵커와, 어느 한 쪽 편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는 출연자로 구성된 전형적인 뉴스 인터뷰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연 파격적으로 보이는 인터뷰이기에 우리의 눈과 귀와 뇌는 새로움에서 오는 신선함을 느낍니다.

"뭐지? 이 새로운 구도의 인터뷰는?"



우리 귀와 뇌에서 감지한 이 신선함은 곧 속이 뻥 뚫리는 느낌으로 이어지지요.

여기서부터는 내용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우리는 명쾌하고 단순한 논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쟁점에 관하여 토론을 펼칠 때, 가장 선명하게 제 3자에게 각인되는 구도가 바로 일대일 대응 구도입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후보자들의 TV토론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깊게 각인된 장면은 무엇일까요?

저에게는 단연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저는 오늘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라던 한마디였습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을 의심할만큼 기본적인 예의를 벗어난 이와 같은 발언에는 도저히 호평을 하기 힘듭니다만, 말의 도발적인 수위를 차치하고 국민에게 이 발언이 유독 오래 인된 이유는, 발언을 통해 대선 후보 토론회라는 복합적인 자리단 두 사람의 비교 대결 구도로 치환되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 1퍼센트 미만의 지지율 속에 있었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릴 능력이 사실상 없었다고 평가받았으며, 결국 토론을 통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 말이 일으킨 각인효과만큼은 아주 강렬했죠.


표창원이 첫 질문을 받자마자 '정말 문재인 대표의 잘못과 관계가 있다고 보십니까?'라며 되물은 후 '박근혜의 피습'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키는 순간, 사람들은 이제 둘을 대등한 사건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비교가 일어나죠.

당시 쏟아진 테러범에 대한 비난(그는 살인미수죄로 검찰에 기소됐습니다.)과 비등했던 박근혜 당시 당 대표에 대한 동정여론, 이에 힘입은 당시 한나라당의 지지율 상승이 곧이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이내 이번 일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비정상이라는 그의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표창원의 뒤이은 발언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요.


그래서 그 하위의 쟁점들, 가령 박근혜 피습사건은 개인적 원한보다는 당시 가장 주목받는 존재였던  여당 대표에 대한 이유없는 테러에 가깝고, 문재인 사건은 적어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유가 분명한 분풀이에 가깝다는 등의 사실들은 대칭의 큰 구도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인터뷰에서 김 앵커는 시종일관 '그렇군요. 그렇다고 보시는 거군요.'라는 짧은 코멘트와 함께 다음 질문을 이어갈 뿐, 표창원의 발언 내용에 거의 반박하지 못한 채 인터뷰를 끝내고 맙니다.

역시 시청자로서는 속이 시원합니다만, 김 앵커의 입장도 자꾸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그가 만약 표창원이 제시한 '박근혜의 피습사건'과의 대칭구도를 쉽게 수긍하지 않고 반박하려 했다면,

앞서 밝힌대로 사건의 디테일로 대화를 끌고갔어야 했다고 봅니다.


표창원이 던진 박근혜 피습과의 비교 발언 직후, 앵커가 했다면 괜찮았을 법한 말로 저는 다음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1.

제가 보기에는 두 사건의 성격이 조금 다른데요. 이번 사건을 박근혜 피습 때와 같은 묻지마 테러로 보기 어려운 것이, 혹시 인질극 당사자가 사무실 습격의 이유라고 밝힌 의혹들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허나 다음 답변에서 무참히 깨지고 말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생각이 곧바로 이어지는군요. 다름 아닌,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이 보유한 200톤의 금괴를 국가가 환수하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인질극의 원인임을 앵커도 알았기에 이런 반박을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또 하나, 백 번 양보해 원인제공의 가능성이 인정된다 한들, 문재인 측이 인질극이라는 범죄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며 피해자는 위로의 대상이어야지 공개적으로 반성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를 들어, 수많은 데이트 폭력은 과연 피해자인 여성이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인가요?그렇지 않습니다.


2.

지금 인질극을 보도하는 매체들의 반응이 편향되었고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박근혜 피습사건 당시 일부 좌편향된 매체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려드리죠.


제 한계인가 봅니다. 적고 나니 역시 언 발에 오줌누기에 다르지 않습니다. 위 발언은 스스로 내 회사의 우편향을 '커밍아웃'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팩트에 입각해 뒷받침이 될 만한 당시 매체들의 태도를 소개했다면, 최소한의 논리적인 방어는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드는군요.



이제 결론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와 토론할 일은 통 없을 것 같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사는 우리가 이 인터뷰를 통해 배울 점은 없을까요?

(엉뚱함.뜬금없음 주의)


...두구두구두구


말을 잘 하는 사람에게 휘말리지 않으려면, 그가 제시하는 프레임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말고, 다른 프레임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해가며 버티세요.


짜잔!


"여보, 토요일인데 우리 외식할까? 지난 번에는 한식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스테이크좀 썰어 보자."


외식이 귀찮은 당신 혹은 메뉴가 맘에 안 드는 당신.


그런 나에게 단 두 마디로 외식을 기정사실화 하고 메뉴까지 한식과 양식의 단순 대결로 치환해버린

놀라운 능력의, 표창원 뺨 치는 나의 배우자.


이 때, 확 기분이 상해 이렇게 대꾸한 적은 없나요?


"아니, 넌 왜 매번 니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는데?"


( 쓰면서 한껏 몰입된 저는...다름아닌 사연의 당사자입니다. 신혼 초에 있었던 제 이야깁니다. 다툼이 잦았던 시절이었죠.ㅎㅎ)


이런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하면서

재빨리 탈출구를 찾아 봅시다.

다름 아닌, 상대에게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다른(내가 원하는)해결책을 제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요.



 - 지난 번과 이번은 경우가 다르잖아. 지난 번에는 덜 추웠으니까 나갔는데 오늘은 추우니까 집에서 시켜 먹자.

: 메뉴까지 나아간 이야기를 다시 소환해, 객관적 수치인 날씨를 근거로 외식이냐 집에서 먹느냐의 문제로 환원시켰죠. 이 때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더라도, 몸의 컨디션을 근거로 든다던지 할 수 있습니다. 사악한가요?ㅎㅎ


- 좋아. 그런데 외식하는 건 자기가 제안하고 내가 결정했으니까 메뉴는 내가 제안하고 자기가 결정하면 안될까?

: 외식에는 동의하되, 내가 메뉴를 제안하겠다는 말에는 거절이 힘듭니다. 최종 결정은 여전히 상대방의 몫으로 남으니까요.



살짝 빠져나가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제 나의 제안을 상대가 수용하느냐 마느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이 되었습니다.


다만 인터뷰 속 김 앵커와 같이, 내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상황, 즉 나에게 핸디캡이 있는 상황이라면(내가 배우자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나 할 때)

치솟는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김 앵커가 만약 표창원의 첫 대답을 듣자마자


듣고 보니 제 질문의 순서가 한참 틀렸군요. 현재 칼로 협박을 받았던 문 대표의 사무실 직원은 안정을 찾았나요? 괜찮은지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데 다른 질문이 앞섰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인터뷰가 큰 비난 없이 무난히 마무리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나 또는 내 회사의 권위가 무너질까 걱정되어 끝내 아무 말 못한 결과가 수많은 시청자의 비판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솔직담백함은 앵커석에 앉는 사람이든, 정치인의 명함을 가진 사람이든,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든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말을 끝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긴글 함께 호흡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남은하루 많이 웃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5. 참말과 거짓말의 경계? 그야말로 얇디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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