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어떤 투정, 부모님의 어떤 위로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생활을 한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직접 밥을 지어먹고 때론 술로, 빵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며 40번의 계절을 보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기에 밥을 챙겨 먹는 일이 어렵진 않았지만, 대체 일복을 얼마나 타고난 것인지 회사에 들어간 이래로 퇴근 후 집밥은 내겐 사치와도 같았다.
어쩌다 여유가 생겨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땐, 날짜 지난 식재료를 버리느라 또다시 배달 음식을 먹었다. 또 어쩌다 한 번씩 생선구이, 잡채 등 자그마한 자취방 부엌에서 만들기엔 무리가 있는 메뉴들이 입가에 맴돌 때면 무언가 마음이 텅 빈 느낌이 들어 맥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밥도 굶은 채 야근하는 날이면 허전한 마음은 더 컸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는데 왜 나는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지 못한 건지. 굶으며 일한다 한들 그 누가 알아주는 건지. 그렇게 서러움을 안고 회사를 나올 때면 괜히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덜컹이는 지하철 한쪽 기둥에 기대어 멍한 표정 혹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힘들었던 하루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쏙 뺀 채 먹고 싶은 음식을 채팅창에 적었다.
어떤 날은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에 빨간 두부조림, 어떤 날은 도톰한 무우가 살캉하게 씹힐 정도로 푹 지져 낸 고등어조림. 또 어떤 날은 중국 당면을 듬뿍 넣은 국물 자작한 소불고기.
'꼬리 바로 윗 토막을 먹을 거야'
'두부조림에는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갔으면 좋겠어'
먹고 싶은 생선 부위까지 정해가며 매일 바뀌는 메뉴가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엄마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알았어”라고 답해주었다.
망설임 없는 엄마의 답장을 받으면 순식간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자세히, 더 구체적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써 보냈다. 당장 본가에 갈 수 없어 한 달 뒤에나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었음에도, 막상 그 날이 되면 다른 게 생각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나는 하소연 대신 음식 설명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괜찮아졌다. 진짜 고팠던 건 배가 아니라 마음이었다는 듯.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본가에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신이 났다. 그 사이 또 비어버린 마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쏟아지는 업무에도 지칠 줄 몰랐고, 엄마 아빠를 위한 간식, 와인 등 자그마한 선물을 사기 위해 점심을 거르고 백화점에 달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강릉에 도착하면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볼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느낌이었다. 숨만 쉬어도 살이 붙을 것 같은 맛있는 공기와 생명력 넘치는 바다 짠내. 그렇게 거대 도시를 떠났다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현관문을 열면, 따스하게 나를 맞아주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저녁 밥상에는 언젠가 지나가듯 말했던 소불고기가 메인으로 준비되어 있었고(심지어 낙지까지 추가된 버전으로) 일이 늦어 새벽에 도착한 날이면, 조금이라도 먹고 자라며 저녁 내 푸욱- 끓여 놓은 김치찜 속 돼지고기를 건져먹고 잤다.
계속되는 외식으로 집밥 먹을 기회를 놓치기라도 했을 때면, 서울로 돌아가는 날 아침 밥상이 두 배로 푸짐했다. 미역국, 두부조림, 부대찌개에 생선구이까지- 모든 음식들이 한자리에 올라 매번 뭐부터 먹어야 하는지 행복한 고민을 했으니 정말 사치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해보면 ‘이거 먹고 싶어’라고 말한 건 열흘도 더 된 일이었다. 열흘이면 그 날의 감정을 잊기 충분한 시간이라 사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원했었는가는 그리 중요치 않았는데도 엄마는 꼬박꼬박 채팅창에 등장했던 음식들로 밥상을 차려주었다. 무값이 폭등해도,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대구가 잡히지 않았더라도 엄마는 아빠를 달달 볶아 비슷한 재료라도 구해오게 했고, 내가 원했던 걸 최대한 비슷하게 준비해 줬다. 그러다 계절적 한계로 도저히 재료를 구하지 못했을 때면 ‘못 먹고 가서 어떡하니’라며 엄마가 더 아쉬워했다.
그렇게 마주한 밥상이 맛없을 리가 없었다. 맨날 샐러드, 술안주 혹은 한 그릇 음식 위주로 먹다 만난 4찬 이상의 밥상인데. 봄에는 산나물이, 여름에는 아빠가 직접 기른 옥수수와 토마토가, 가을엔 작은 딸이 가장 좋아하는 새우를, 그리고 겨울엔 하나하나 껍질을 깐 꼬막까지 사이드로 준비된 밥상인데. 조미료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 자연의 맛을 살린, 혀 끝이 먼저 기억하는 엄마의 맛을 내가 부족하다 느낄 리 없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나?
국 한술, 반찬 한 젓가락을 집을 때마다 감탄하는 나에게 엄마는 어렵지 않다며 레시피를 줄줄 읊어주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산모용 미역을 썼는지, 황태를 들기름에 볶았는지가 아니었다. 한 달 내내 메뉴를 기억했을 엄마의 마음과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하나로 마트며 식자재 마트를 열심히 돌아다녔을 아빠의 노고. 그 안에 담긴 부모님의 사랑에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맛있어'만 반복했던 거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고 섭섭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또 올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떠날 시간에 맞춰 지어주신 뜨끈한 쌀밥과 각종 반찬으로 배는 물론 마음까지 든든히 채웠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든 걸 다 말할 수 없었던 딸의 어떤 투정, 아마도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을 부모님의 어떤 위로가 담겨 있는 ’오늘의 메뉴'.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그 밥상을 떠올리며 이번 주도 야근을 했다. 9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