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인생 처음이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이었다.
불안감과 허망함에 술을 찾는 날이 잦아진 나는
어김없이 너와 마주 앉아 술을 마셨고,
기억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늘 그랬듯이 난 또 술에 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꽁꽁 감춰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다른 때처럼 꾹 눌러 담았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너에게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나의 말을 들은 너는 당황한 기색도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고 무덤덤하니 무표정을 유지했던 것 같다.
고백만 하지 않았을 뿐. 몇 차례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나는 계속 떼를 썼고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떼쓴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어린양을 부렸을까.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큰소리쳐놓고,
왜 취하지 않고서는 네게 말할 자신이 없었던 걸까.
상황은 타인에 의해 종료되었고
다음날 펼쳐진 일기장엔 삐뚤빼뚤한, 해석할 수 없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잘은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종종 새벽녘에 올라오는 감정이 스스로 버거울 때가 있는데, 그 날이 딱 그런 날이었던 거다.
차고 넘쳐흘러 버린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일기장에라도 담아두어야 하는 그런 날.
그로부터 이틀이 흘렀고 내일 드디어 너를 만나러 간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나의 마음은 2년째 가지고 온 것인데.
여름철 설익은 풋사과가 아니라
충분히 익은 새빨간 가을 사과 같은 것인데.
너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수없이 많은 밤을 뒤척였었다.
다정함을 되새기며 잠들었던 시간이 짧지 않고,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이 모래성을 지었다 부쉈다했는지 셀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너에게 말하게 될까.
아니면 실수였다는 듯 웃으며 ‘우리 그래도 친구지?’라고 묻게 될까.
너와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말을 거는,
긴 가을밤이다.
/어휴 스무살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