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쌀밥 위에 올라간 그것은.

아빠의 사랑과 딸의 투정

by 일훈이


따끈한 밥 위에, 노릇하게 구운 햄 한 조각.
하얀 쌀밥에 새빨간 김치 한 조각.



상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장면이라고들 말하지만, 나에겐 상상만으로도 몸서리 쳐지는 장면이다

흰쌀밥이 다른 반찬으로 물들다니. 내 사전엔 허락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자기 의지를 가지고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밥에 반찬을 올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김치 양념이 묻고, 잘 구운 생선의 비늘이 남고. 나물 양념으로 밥알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그 행동들이 나는 유독 거슬렸고, 내키지 않았다. 밥이 더럽혀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하얀 쌀밥의 색이 변하는 게 싫어 늘 밥과 반찬을 따로 먹었고, 국에 말아먹거나 비벼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매 끼니마다 앞접시를 준비해 주거나 반찬을 한쪽에 덜어 주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빠는 내가 서른 살이 넘은 지금도 생선 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려주곤 했고, 그때마다 나는 심술 섞인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하지 말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자꾸만 내 밥에 반찬을 올려주는 아빠.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늘 궁금했는데 지난 일요일, 순댓국과 소주를 사이에 두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드디어 그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아빠가 사랑꾼이어서, 다정한 사람이어서가 아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 아빠는 많이 아팠다고 했다.

한쪽 청력을 잃어 갈 정도로 위중했으나 병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집 안에서 요양하는 게 전부였단다. 매일 고열에 시달리며 땀에 젖어 깨고 잠들고를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아빠의 엄마', 즉 나의 할머니는 늦은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셔서 땀을 다 닦아주고, 배고픈 아들을 위해 불을 때어 국수를 끓여 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때면 힘없는 아들에게 밥을 뜨게 한 후, 꼬막 살을 발라 한 점씩 얹어주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다고 했다. 그걸 받아먹으며 아빠는 "사랑"을 느꼈고, 결과적으로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 밥에 반찬을 올려줄 때마다 아빠는 그때 그 감정을 떠올린다고 했다. 맛있으니까. 어릴 적 아빠처럼 맛있게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으니까. 아기 때부터 유독 잔병치레가 잦았던 작은 딸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눈앞에 있는 순댓국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듣던 나는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아빠가 내 밥 위에 올려준 건 단순한 반찬이 아니었구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내리사랑. 아빠의 따뜻한 '마음 그 자체'였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든 나는 아빠의 속도 모르고 투정만 부렸던 것 같아 부끄러웠고, 나의 투정이 혹시 아빠에게 상처가 된 것은 아닐지, 거절로 느껴진 건 아니었을지 몹시 죄송스러웠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아빠가 올려주는 반찬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게 되었다.



라는 전개면 참 좋으련만.

습관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밥에 김치 양념이 묻으면 움찔하게 되고 미간이 먼저 찌푸려진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게 다 아빠의 사랑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움찔할지언정 티는 내지 않으려 하고, 미간이 찌푸려진 걸 알아챈 즉시 화제를 돌려 다른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밥상에 앉을 때마다 마음가짐을 바꾸려 애쓰며 다짐한다.


‘아빠가 반찬을 올려준다면 밀어내지 말고 받아 봐야지. 수저에 밥을 크게 한 술 뜨고, 아빠 앞에 내밀며 "어디, 올려줘 봐!"를 먼저 외쳐 봐야지.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제일 보드랍고 맛있는 생선 부위를 발라내어 아빠의 밥 위에도 얹어줘 봐야지.'


밥상에서 나의 투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 서로를 향한 아빠와 나의 애정만이 식탁에 가득 남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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