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그때 그 양반아
별다방에서 신메뉴가 나왔다.
"크리스마스 차이 티 라떼"
이름부터 벌써 알싸함이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기존에도 있었고 다른 커피전문점에서도 판매하는 메뉴지만,
유독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크리스마스"라는 글자를 달고 나와서 일까.
한 해의 마지막 달력만 남은 요즘,
한 줌의 온기가 소중해지는 걸 보며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걸 실감하고 있던지라
단어가 주는 의미가 새삼 크다.
차이 티 라떼.
이름부터 생소한 이 음료는 각종 향신료가 어우러진 라떼다.
달달하지만 상당히 스파이시해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료.
대충 찾아보니 그린 카다멈, 생강, 계피, 육두구, 정향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향신료 이것저것 취향껏 넣으면 되는 듯.
계피도 안 좋아하고 수정과도 별로인 평소 취향대로라면 차이 티 라떼도 분명 싫어해야 하지만-
나는 차이 티 라떼를 좋아한다
미각세포 하나하나에 꼭 들어맞아서가 아니다.
단지 기억 속 누군가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5년 전 뉴욕,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처음 차이 티 라떼를 만났다.
뉴욕 커피 맛집 중 한 곳인 조커피의 차이 라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름부터 조'커피'인데 티 라떼라니....
뭔가 모순적이어서 더 잊혀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현지인이 가는 맛집과 카페를 잘 알았다.
밥집에 갈 여유는 없어도 커피 한 잔의 사치는 누리고 싶었던 22살의 나는
학교가 끝나면 그 사람을 졸라 새로운 카페를 갔고, 그중 하나가 조커피였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동네, 첼시.
날씨 좋은 날 자주 걷곤 했던 하이라인 파크.
그 근처에 있는 조커피에서 그는 차이 티 라떼를 추천했고,
난 그게 맘에 들었었고, 그래서 몇 달간 계속 마셨다.
솔직히 맛은 아리송했다.
근데 남들이 잘 모를 듯한 이미지와 그 사람 추천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냥 그땐 - 그 사람이 고른 건 뭐든 좋았던 것 같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참 많이 힘들어했다.
모두가 놀랄 정도로 망가져버린 몸과 정신을 지탱하기 버거웠고 매일 눈물이 났다.
SNS를 통해 그 사람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더더욱 아팠지만,
어찌어찌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었구나.'라고 생각할 줄도 알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차이 티 라떼를 사 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달큰하면서도 맵싸한 복합적인 맛의 음료.
시럽 양을 조절하지 않으면 혀가 아플 정도로 알싸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차이 티 라떼를 마시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한껏 음미해본다.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지난 나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이렇게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용기를 냈다는 기특함.
5일 뒤면 처음 뉴욕 땅을 밟은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7년 째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서 그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 지내고 있어?
혹시라도 우리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좀 더 달콤한 음료를 추천해줘.
한 모금만 마셔도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질 것 같은, 그런 거.
과거에 묶여 사는 나는 아마 그걸로 몇 년을 또 살아갈 테니까.'
+ 느닷없는 레시피 추천.
차이 시럽은 한 펌프만 넣고 나머지는 바닐라 시럽으로 채우면 견딜만해요.
별, 프리퀀시가 필요 없다면 커피빈이 조금 더 맛있는 듯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