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취향을 공부하는 아빠

딸 바보와 예비 아빠 바보

by 일훈이



결혼 계획은 없지만, 결혼식을 상상하면 아빠가 가장 걱정이다. 쿨한 엄마는 눈물 한 방을 흘리지 않겠지만, 딸 바보로 소문난 아빠는 대성통곡을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참 다정한 아빠를 두었다. 일곱 살 때는 어린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은 저녁에도 보조바퀴를 막 뗀 자전거를 잡고 아파트 한 바퀴를 돌아 주셨고,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울 때면 곰탕이나 카레만 주구장창 먹는다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빠표 애호박찌개나 고춧가루 듬뿍 들어간 빨간 된장찌개를 먹었다. 머리를 말리고 있으면 홍삼가루 넣은 토마토 주스가 쓱 - 등장한 덕에 중2병을 크게 앓지도 않았으며, 고3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침잠 많은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차려 주던 든든한 아침밥상 덕분이었다.



어렸을 땐 당연했던 그 모든 것들이 참 대단한 일이었다는 걸 요즘에서야 많이 느낀다.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아빠와 나의 거리는 많이 멀어졌다. 하지만 평소 애주가인 아빠와 그의 딸 답게 우리 부녀는 술잔을 자주 부딪혔고, 심리적으로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소중한 시간들. 그렇지만 일 년에 얼굴 마주하는 날이 한정적인데 비해 다양한 주제가 오가는 편이어서, 아빠와 나의 마찰이 잦아진 것도 사실이다. 늘 같았던 우리의 정치관이 다른 노선을 달리는가 하면, 살짝 보수적인 아빠와 페미니스트까진 아니어도 그 가치를 존중하는 나의 생각이 충돌할 때도 있고 자식의 결혼이 부모의 마지막 도리라 믿는 아빠와 결혼은 희생이라 믿는 아직 어린 마음의 내가 부딪히니까.










가치관뿐만이 아니다. 경험하는 세계가 달라지며 생활 방식에도 차이가 생겼다. 긴 연휴 혹은 명절이 되면 종종 우리 가족은 요리 배틀 하듯 음식을 만드는데, 부녀의 취향이 너무 다른지라 재밌는 한 상이 탄생한다. 추억의 고추장찌개와 발사믹 식초 + 아보카도를 곁들인 가지 샐러드가 한 상에 올라가는가 하면, 아빠표 닭냉채와 내가 만든 타코가 함께 차려지기도 한다. 미식가이자 극단적 한식파인 아빠의 입맛에 그 어색한 밥상이 만족스러울 리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딸바보 아빠는 나의 정성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던 중 내게 큰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매년 아빠와 엄마는 해외여행을 떠나시는데, 사랑꾼인 아빠는 늘 딸들의 선물을 고민하다 본인 것은 사지도 못하고 돌아오신다. 더 웃긴 건, 그렇다고 나나 언니의 선물을 캐리어 가득 들고 오시는 것도 아니다. ‘딸들이 이거 좋아할까?’라고 물으면 세기의 살림꾼인 엄마가 ‘애들 취향 아니야.’라고 딱 자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여행 후 건네는 선물은 큰 한방이 아닌, 에코백, 팔찌, 면세점에서 괜히 한 번 사 본 유명 브랜드의 마스카라 등 소소한 물건의 향연이다. 물건은 크지 않지만 그 아이들을 데려올 때까지의 여정이 참으로 긴 것이어서 나는 새벽 두 시까지 잠 못 이루고 엄마 아빠의 고민담을 듣곤 했다.

그러한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딸들은 대체 뭘 좋아해? 아빠 오늘부터 공부해야겠어.




공부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창조주가 나에 대해 공부한다니. 그 신선한 관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는데 이후 진짜로 나의 취향을 공부하는 아빠를 보며 또 한 번 놀랐다. 아빠는 내게 관심 있는 식재료를 물었고 핑크색이 어울리는지 민트색이 어울리는지 감이 안 올 땐 무채색이 답이라는 걸 알았으며,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무언가에 열광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12년 된 발사믹 식초와 질 좋은 올리브 오일을 들고 와 나를 감동시켰고 에스토니아 재래시장에서는 귀여운 에코백을 사다 주셨다. 태국에서 산 유니크한 파우치로는 친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으며, 캐리어에 이고 지고 온 폴란드 맥주는 나의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나날이 좋아지는 아빠의 눈썰미를 보며 나는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의자에 앉았다.



평생을 그래 왔듯, 아빠는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려 노력하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 받고만 있었구나.

평생을 그래 왔듯, 스무 살 보단 서른 살이 더 가까워진 이 시점에도.








사실 그동안 가치관, 취향, 생각의 격차를 느끼며 ‘아빠도 이렇게 나이를 먹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이 때문에 아빠의 생각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새로운 것보다 익숙함을 선호한다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래서 당연한 거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 이제는 안다. 받는 게 익숙한 나머지 나는 아빠에게 무언가 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아빠와 나의 차이를 이해하거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하기보단 "나이 듦"이라는 편리한 핑계에 숨어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었다는 걸.








오늘은 사랑하는 아빠가 태어난 지 61번째 되는 날이다. 아빠의 여행을 간직할 수 있는 카메라, 내가 꼭 입혀주고 싶은 바버 재킷, 뭐든 살 수 있는 상품권 등 몇 날 며칠 고민해도 선물이 정해지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이제 그 문제도 해결된 것 같다.


물질적인 걸 건네기 전에 아빠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양식 중에서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서울에 오면 어딜 가고 싶은지, 아빠가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지혜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 가다 보면 충돌은 줄고 이해는 늘겠지. 그런 시간들이 모여 내가 아빠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건네는 순간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아빠 생신 축하해요. 아빠가 나를 위하는 것만큼 내가 아빠를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해요.

내가 많이 노력할게.




매거진의 이전글차이 티와 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