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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Sep 14.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시작


28살의 여름도 갔다.

작년 말 인턴으로 일을 시작해 직원 전환이 된 후로 두 번째 월급을 받았으니,

이제 일한지 8개월 차가 된 거다.



인턴 기간을 제외하면 나는 28.5살에 신입사원이 되었다.

누군가는 감사하게도 '그렇게 나이 많은 건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자 나이 28은 마냥 어린 편이 아닐 뿐더러,

취업시장에선 '대기업은 포기해라'가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27살에 참가했던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에서 나는 여자 왕고였고

짧은 인턴 기간 동안 만났던 팀원들은 나보다 어리거나 동갑이 많았으며

나의 베프는 현재 대리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입사 전부터 나는 '나이 많은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오랜 시간 취업 준비를 했다.

23살 부터 하나 둘 이력서를 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온 거니까, 근 5년이 걸린 셈이다.

누군가는 가진게 없어서 그런것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토익 900 이상에 오픽 AL, 봉사활동 100시간 이상, 한국사 1급을 비롯한 자격증 몇 개,

해외 연수 경험이 있는 나의 스펙이 너무 낮은 것이라면-

대한민국 취업준비생들이 너무 불쌍해질 것 같다.




원래는 가장 가고 싶었던 대기업 하나와 공기업 하나가 있었다.

하지만 눈이 높았던 건지 벽이 높았던 건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이를 먹었고, 잔재주와 짧은 인턴 근무로 삶을 이어가긴 했으나

나는 '직장'이 필요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엄마 아빠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꼭 취업을 하고 싶었다.



시간과 함께 조건을 하나씩 지우고 나니 남은 선택지는 7개.

1. 공무원 시험

2. 나를 받아줄 아무 중소기업

3. 스타트업

4. 외국계 기업

5. 워킹홀리데이

6. 프리터족 혹은 자영업자


그 중 2번과 3번에 집중 했지만 그 역시 쉽진 않았다.

나이 많은 신입이어도 조건은 중요했고 기다려 온 시간이 긴 만큼 나는 내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게 따 놓은 오픽 성적이 만료되기 일주일 전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우연히 본 외국계 채용공고에 이력서를 냈고, 지금 일하는 곳에 몸담게 되었다.



인턴에서 직원이, 이방인에서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고 느낀 것들이 참 많다.

어쩔 수 없는 것들.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내가 맞춰야만 하는 것들.

내가 고쳐야 하는 것들.



최근 달라진 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보며 그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매일 글을 쓸 순 없는 매우 바쁜 곳이지만, 틈틈히 마음과 생각을 다듬어 보고 싶다.




세상 어딘가에서 오늘도 고군분투 했을 나이 먹은 신입사원들을 위해서.

기록하고 생각하며 그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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