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 찾아온다는 전설의 3,6,9 고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3/6/9 고비가 있다고 한다.
3개월, 6개월, 9개월 혹은 3년, 6년, 9년 주기로 찾아온다는 위기.
신입의 경우에는 일에 어느 정도 적응함에 따라 처음 가졌던 패기나 열정을 잃는다는 거고,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문 베테랑 직원들은
일에 대한 권태감과 짜증, 분노, 우울 나아가 무력감 등을 느끼며 퇴사를 꿈꾸게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한동안은 3/6/9 고비에 대해 잊고 살았는데, 진짜 존재하는 건가 싶다.
물론 나는 입사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입이니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얼마 전, 그러니까 8개월에서 9개월로 넘어가던 시기-
사수님께 좋지 못한 피드백을 받았다.
업무적 퍼포먼스와 태도, 두 가지 모두 아쉽다는 이야기였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막상 귀를 타고 들어오는 그 말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시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업무,
설득 한 번 해 볼 수 없는 나의 위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하는 답답함에 위가 아팠고
"그런 일"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 있었다.
워낙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이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수님이 눈치 못 챘을 리 없었고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몇 차례 불꽃이 튀기도 했었다.
(이 날은 나 스스로도 놀라긴 했다.)
사수님도 참다 참다 꺼낸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나는 신입이고 막내이고 뭐든 배워야 하는 시기니까.
그래서 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끄집어내어 다시 하고, 한번 더 확인하고, 될 때까지 하고-
일 - 밥 - 일 - 밥 - 일 - 잠이 삶의 전부가 되며 3주 내내 야근을 했다.
힘들어 죽을 거 같았는데 오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어찌어찌 결과물이 나오고 있고, 사수님께 '요즘 변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상해졌다.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나면 죄책감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 컨트롤을 하지 못해 아예 전화하기를 포기했다.
그 피곤함에도 허구한 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평일엔 아무것도 안 먹고 싶다가 주말에 좋아하는 것들 혹은 술을 몰아 먹는다.
살 용기도 없으면서 명품 가방, 스카프, 신발을 매일 같이 들여다본다.
무엇을 위한 변화였고 누구를 위한 노력이었을까.
매달 말일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주는 행복감은 3일밖에 안 가던데.
모처럼 서울에 온 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홀로 돌아오던 길은 그렇게도 외롭던데.
'요즘 변했다'라는 피드백이 주는 뿌듯함은 하루도 못 가던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만 참기로 했다.
입 밖으로 꺼내면 실행에 옮길 것 같아 아무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가을이니까,
유독 가을에 약한 나니까 그런 거겠지.
9개월에서 10개월로 넘어가면 괜찮아지겠지.
잠이 오지 않는 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내 마음도 나아지겠지.
지금은 이렇게 믿는 거 이외엔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원래는 일 하면서 느낀 것들, 좋은 것들, 뿌듯했던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는데
하필 이런 시기에 브런치를 시작해서 불평이 많은 글이 되어 버렸다.
속상한데 -
내일이 월요일이고,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 게 더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