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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Oct 17. 2017

나이 먹은 신입사원 일기 - 면접관이 되어본 날

막내가 막내를 뽑다니


온라인에서 면접 tip을 찾아보고 1분 자기소개를 달달 외워 다니던 때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면접관이 되어 보았다.

'함께 일할 인턴은 직접 뽑아라'라는 회사의 독특한 방침에

대리님의 휴가 일정이 겹치면서 막내인 나와 사수님이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하필 밥도 못 먹고 일만 했던 시기라 사전에 면접자의 이력서도 못 읽어 봤는데!

얼굴을 커녕 이름도 모르는데!!)



어쨌든 면접 10분 전 도착한 그녀에게 영업용 미소를 건네며 방을 안내해 주고,

이제 막 출력해서 따끈따끈한 이력서를 사수님께 전해드리고,

다 지워진 립스틱만 한번 슥- 바르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아무리 캐주얼하게 이뤄지는 면접이라 해도 내겐 너무 생소한 자리인 데다,

나의 질문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하니 마치 내가 면접을 보는 것처럼 떨렸다.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나와 사수님 그리고 그녀.

밥은 먹었는지, 오는 길은 멀지 않았는지 등 가벼운 대화로 대화를 시작했고

사수님의 질문으로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던 그녀는

나보다 조금 더 많이 떨린 듯했다.

입가에 이는 미세한 경련,

멋쩍은 웃음과 가끔씩 꼬이는 발음.

신기한 건 그런 서투름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소개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처음 이력서를 읽어본 것이었는데

스치는 눈길에도 질문 거리가 생각났고, 더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이 친구와 꼭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괜스레 응원해주고픈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사수님의 질문이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자의 입장에서 살아갈 땐 왜 스트레스 해소법을 묻는지,

주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묻는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

막상 면접관이 되고 나니 나 역시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으며 '이 친구는 이런 성향이겠구나. 우리 팀의 누구랑 닮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약 30분 간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를 배웅하며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면접비 하나 없이 돌아가던 길, 나는 뭘 했었더라...



교통비 조차 쥐어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그 생각도 잠시,

사수님과 나는 의견을 나눌 틈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몰아치는 모든 일을 끝낸 후 그제야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착할 것 같지만 똑 부러질지는 잘 모르겠다가 우리의 결론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면접자 몇 명을 더 만나보기로 했다.

일손이 부족하니 인터넷만 할 줄 알아도 뽑자라는 식의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취준도 그렇게 길었던 거였을까.

신기하면서도 미안하면서도 어쩐지 위안을 받은 그런 날이었다.




''이라는 표현이 가진 두루뭉술함에 답답한 사람도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별 거 아니어도 지원자의 매력이 드러나는 질문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을 잘 맞받아치는 것"

(베테랑 면접관님들의 생각은 전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계속된 면접으로 마음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5년 동안 공기업,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외국계까지

면접이란 면접은 다 경험했는데 결국은 '쿨해서' 뽑혔다는 나도 있으니까.



다음 면접장에선 대답 하나 하나에 매력을 담아낼 수 있는 질문만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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