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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un 27. 2022

달콤함이 필요한 날, 치즈 케이크

실망도, 실패도 되살리는 마법

내게 치즈케이크는 미지의 달콤한 열망이었다. 처음 그 존재를 접한 건 이미지였다. 오래전 시트콤에서 치즈케이크에 열광하던 여자 주인공 앞에 놓인 노랗고 뽀얀, 정갈한 모습. 그리고 한 입을 베어 물면서 저 세상 행복을 경험한 듯한 주인공의 표정. 그 이미지들을 통해 맛을 상상했다. 폭신하면서도 사르르 녹아버릴 것 같은, 정반대의 질감들을 뒤섞었고, 눈치 없이 달지 않은 균형 잡힌 맛을 입혔다.


실제로 처음 치즈케이크를 맛보았을 땐, 상상 속 단아한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우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제품을 즐기지 않는 내게 치즈케이크는 최악의 케이크였다. 치즈 특유의 향이 울렁거렸고, 짠맛을 가리기 위해 한껏 올라온 단 맛이 거슬렸다. 하지만 나의 취향과 달리 치즈케이크의 위상은 점점 올라갔다. 제과점, 카페, 편의점 어디에서나 단골처럼 자리 잡았고, 아이스크림에도 박혔다. 그럴수록 나는 곤란해졌다. 친구들과 함께 디저트를 고를 때면 ‘치즈케이크만 빼고’를 속삭였다. 그럴 때면 그들은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치즈케이크에서 다른 대상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맛도 변했다. 여전히 농도 짙은 치즈케이크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치즈 맛이 강하지 않은 달달한 치즈케이크는 잘 먹게 되었다. 동료가 선물로 보낸 치즈케이크가 반가웠던 건 다행히 적응력이 뛰어난 입맛 덕이었다. 냉동 보관했다가 실온에서 살짝 해동한 뒤 먹는 치즈케이크는 아이스크림에 가까웠다. 적당히 달고 부드러웠으며 슬러시 같은 질감이었다. 입 안이 조금 텁텁해질 때쯤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몇 숟갈 움직였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때쯤이었다. 인터넷에서 치즈케이크 만들기를 본 건. 재료는 간단했다. 크림치즈와 생크림, 달걀, 설탕. 잘 섞어서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 돌리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당장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만들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설탕을 조금 넣어보겠다는 오기 탓에 짠맛이 좀 강하게 올라왔다. 결국 꿀을 뿌려 먹으며 두 번째 시도를 기약했다.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었다. 그 치즈케이크가 떠오른 건. 점심을 자리에서 해결하는 날이 많았다. 달거나 매운 것, 혹은 달고 매운 것이 필요했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크림치즈를 하나 샀다. 지난번 실패를 떠올리며 분량을 조절했다. 치즈의 맛을 선호하지 않기에 크림치즈의 비율을 줄였다. 방법은 달걀과 생크림을 분량을 늘리는 것. 재료를 섞으면서 느낌이 왔다. 이것은 지난번과 다르구나. 성공과 실패 언저리에 있던 것과 달랐다.


명확한 실패였다. 반죽이 질척거리다 못해 첨벙거렸다. 너무 묽었다. 농도를 만회하기 위해 당도 높은 찐 고구마를 으깨 넣었다. 반죽에 쉽게 섞이지 못하는 고구마를 휘저으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 폭망이구나. 그래도 버리고 싶진 않았다. 일단 구우면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 적당히 구워진 고구마 치즈케이크를 한 김 식혔다. 맛을 보지는 않았다. 달콤함을 위해 애쓴 나의 노력과 시간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속상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짜잔- 하고 자랑스럽게, 한껏 뽐내고 싶었지만 최대한 공손하고 수줍은 동작으로 꺼냈다. 아침에 살짝 맛봤을 때 의외로 먹을 만했지만 누군가에게 건네기는 한참 모자란 모양과 맛이었다. 설탕의 양을 줄이고 고구마의 단맛을 이용했다는 점을 설명하며 ‘건강’과 ‘새로움’을 강조했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난 베이킹엔 영 소질이 없었다. 정확한 계량이 미덕인 그 분야에서 조차 쓸데없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종종 복닥거리는 건 아마 이 달콤함 때문인 것 같다. 누가 시켜서,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는 노동에서 오는 달콤함. 하루 종일 종종대면서 바쁘지만 결국 쳇바퀴 돌 듯 똑같은 밋밋한 일상 속에서 자잘한 실패와 소박한 성공의 파장이 만들어내는 달콤함. 볼품없는 결과물을 나누면서 피어나는 달콤함.


볼품없는 치즈케이크 한 조각이 오늘 나를, 내 친구를 위로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나저나, 내일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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